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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Feb 26. 2023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소설 0시를 향하여



아가사 크리스티의 0시를 향하여


추리소설은 잘 안 읽는 데다 독서력이 일본/한국 소설에 편중되어 있어서 러시아/영미 소설은 좀 익숙하지 않은 편입니다. 그렇다 보니 소설 초반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과 이름들에 혼란스러웠어요.


1인칭 일기체 또는 인물의 감정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사소설의 서사의 경우 헐겁게 읽어도 어느 정도 독서가 되는데(퍼스낼러티는 어느 정도 항상성이 있으니..), 굉장히 디테일하게 쓰인 추리소설은 집중력을 놓으면 곧장 맥락을 놓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 눈에는 탁월한 심리묘사와 현대적인 인물 구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의 100년 가까이 되었을 소설인데도 등장하는 인물 면면에 현대적인 모습이 엿보였어요.


유부남 주인공 스트레인지는 케이라는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이혼을 감행합니다. 시간이 지나 전 부인 오드리를 만난 스트레인지는 전 부인에게 미련을 가지게 되고 케이에게 '전 부인과 그냥 친구로 지내게 해달라'라고 생떼를 부려요. 그걸 본 나이 든 대모님은 '우리 땐 헤어지고 친구하는 건 없었는데... 요즘 젊은 것들은 사상이 맹랑하다'라는 식으로 한탄합니다. 요즘 이슈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참 재밌었어요. 


이집트 상형문자에 '요즘 젊은 것들을 싸가지가 없다'라고 쓰여있다던데, 어느 시대나 사람 사는 건 참 비슷하지 싶고.. 그럼 점점 더 싹수가 없어진다는 가정을 했을 때, '전 부인의 새 남편과 연인 선언을 하는 식으로.. 발전하려나'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농담이고 이런 게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이 소설의 특장점은 심리적인 부분보다도 치밀하게 깔아둔 복선과 반복-변주되는 논리적인 전개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인물이 워낙 많다 보니 정신없긴 해도 몇몇 반전이나 디테일한 전개 부분에 이 사람은 정말 천재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을 듣는데도 히어링과 리스닝이 있다고 해요. 히어링은 그냥 소리를 듣는 것 그 자체고, 리스닝은 주의를 기울여 경청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독서모임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이 소설을 히어링 한 것 같은데, 나중에 한 번 더 읽어볼 생각이에요. 더불어 아가사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들에도 관심이 갑니다. 소설가를 지향하면서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많이 함유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가사 크리스티는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를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뻔하게 보이는 사람이 범인이 아닐 줄만 알았지 반전에 반전을 줘서 결말을 뒤집어 놓을 것 까지는 예상할 수 없었어요. 오랜만에 독서욕을 자극하는 작가를 발견한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P.S.

좋았던 문장


"그랬구나. 나는 아무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


"나는 알아. 그래.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자. 하지만 내가 너에게 꼭 얘기해 주고 싶었던 건, 그게 끝났다는 거야. 다 지난 일이고 돌이킬 수 없다는 거야."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나가지 않는 일도 있어."


'오드리, 옛일을 기억하고 생각해 봐야 뭐 하니. 네가 지옥 같은 고통을 겪었다는 걸 나도 알아. 하지만 머릿속에서 한 가지 일을 두 가두고 기억하는 건 너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뒤에 연연하지 말고 앞을 보아야지. 너는 아직 젊잖니. 살아야 할 삶이 있고, 그 대 부분은 네 앞에 놓인 것이야. 어제가 아니라 내일을 생각해야지."


그녀는 커다란 눈동자로 흔들림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속 진정한 생각이 무엇인지 전혀 드러내지 않는 시선이었다.


'만일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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