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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
너무 지쳤다.
살아갈 기운이 없다.
이건 자연사다.
삼촌은 세 줄짜리 유서와 열세 장의 서류를 남기고 떠났다. 나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아버지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어머니는 까만 원피스 차림으로 조문객을 맞았다. 다른 친척은 오지 않았다. 동료 문인 몇이 찾아와 육개장을 비우고 돌아갔다. 먹먹함에 숨이 막혔다. 키 크고 마른 여자가 녹차 캔을 건넸다. “네가 도이니?” 나는 캔을 받아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자기보다 좋은 시인이 될 거라고, 항상 그러더라.” 나는 ‘항상’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녹차를 비웠다. 묵직한 덩어리가 목을 타고 내려갔다. 속이 메스꺼웠다.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녹차를 게워냈다.
“도이야. 삼촌, 보고 싶어지면…. 연락해”
여자는 내게 초록색 명함을 건넸다. 일렁이는 초록색이다.
사인은 익사, 삼촌은 강원도 작업실 정원 가운데 파놓은 인공연못에서 둥둥 뜬 채로 발견되었다. 언젠가 여름방학 종아리를 걷은 삼촌의 모습을 기억한다. 하얀 발이 물 아래로 어른거렸다. 나는 허리까지 오는 수심에 만족할 수 없어 수시로 자맥질을 하곤 했다. 그러니까, 성인 남자가 익사할만한 깊이가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매달려 부검이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흐느끼며 말했다.
“시간 낭비야.”
아버지의 말은 차가웠다.
다섯 시가 넘어 변호사가 찾아왔다. ‘유언집행자’라고 했다. 반 무테안경이 눈을 가려 마치 삭선을 그은 것처럼 보였다. 납작한 서류 가방에서 한 뭉치의 서류 가 나왔다. 변호사는 손을 내미는 아버지가 아닌, 내 앞에 서류를 두었다. 서류마다 삼촌의 날인이 찍혀있다. 변호사는 스마트폰을 꺼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삼촌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약 그전에 죽는다면, 성년 이후 10년 동안 지급해주세요. 위탁은 안 됩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들었을 때 재생이 끝났다. 변호사는 삼촌이 강원도 별장을 포함한 자산을 전부 현금화해 회사에 맡겼고 내가 성년이 되는 해에 지급될 것이라고 보충했다. 아버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갈했지만, 변호사는 잠시 안경을 추어올리더니 망자의 유언을 분명히 이행하는 것이 자신들이 할 일이라며 일축했다.
아버지는 삼촌을 ‘나약한 새끼’라고 말했다. ‘감상적 쓰레기’라거나, ‘약쟁이’ 같은 말도 서슴지 않았다. 어머니가 양복이라도 입으라고 권했음에도 마지막까지 군복을 벗지 않았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시봉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지시봉은 삼촌의 펜대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나는 삼촌의 유골함을 품에 안고 운구차 뒷좌석에 앉았다. 어릴 적 내가, 자주 이렇게 안기곤 했었는데. 눈물이 났다. 후사경으로 아버지의 시선이 느껴졌다. 울음을 그치고 더 깊게 단지를 끌어안았다. 도착한 곳은 경기도의 한 수목장원이다.
삼촌은 서류에 장례 절차부터 묻힐 곳까지 스스로 정해두었다. 잔디밭에 열을 맞춘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장이 끝난 자리에 향나무가 심겼다. 새파란 잎사귀가 선명했다. 날씨가 지독하게 맑았다. 나는 파란 잎사귀를 한 움큼 뜯어 붉게 드러난 흙 위에 털어냈다. 파란 부스러기가 붉게 드러난 흙을 감춘다. 치마에 묻은 향나무 잎사귀를 발견한 건, 차에 오르고 한참이 지난 후였다.
*
삼촌의 돈이 통장에 들어왔다. 나는 아버지의 바람과 거리가 멀었던 K대학교 문창과에 입학했다. 삼촌의 모교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 학기 만에 자퇴했다. 기말고사 즈음 처음으로 참여한 합 평에서 뛰쳐나온 이후로 도저히 강의를 들을 수 없었다.
“도이씨의 시는 명확한 주제가 없는 것 같아요. 소설이든 시든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는 주제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 딸이 공부는 좀 했잖아’라는 말이 딸려왔다. 나는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웅얼거렸다. 방문을 닫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책상에는 읽다 만 시집이 놓여있다. 삼촌의 유품이다. 노트북을 켜고 내키는 대로 시를 써 보기도 했다.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그동안 쓴 시를 갈무리해 두 개 신문사에 등기를 붙였다. D일보와 지방신문사인 G신문, 첫 신춘문예 투고였다. 부모님께는 말하지 않았다. 삼촌이 살아있었다면, 살아있었더라면.
*
날씨가 춥다. 나는 G신문 본심에 올랐다가 떨어졌다. 친구를 만나고 오는 길에 베이커리에 들렀다. 티라미수와 크림빵, 엄마가 좋아하는 단팥빵, 비싼 타르트까지 내키는 대로 집게를 뻗었다. 봉지가 제법 묵직했다. 빵이 뭉개지지 않게 조심하며 걸었다. 하늘은 짙은 푸른색이다. 눈조차 파랗게 내릴지 모르겠다. 몸 전체가 감색으로 물드는 상상에 잠길 즈음 푸른 대문에 닿았다. 문을 열자 아버지의 차가 눈에 들어왔다.
방문을 닫았다. 노트북으로 배경음악을 틀었다. 오아시스, 앨리엇 스미스 같은 브릿팝이 좋았다. 삼촌도 내킬 때면 기타를 잡고 ‘Between The Bars’를 부르곤 했었다. 톤 낮은 목소리가 다른 노래 같으면서도 어쩐지 잘 어울렸다. 비공개 블로그에 포스트 쓰기 버튼을 누르고 시 를 썼다. 한 줄 쓰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이야 나와서 이야기 좀 하자”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가 문틈을 파고들었다. 나는 헤드폰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 탁자에는 어머니가 내놓은 녹차가 김을 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차를 한 모금 하더니 늘 비슷한 내용의 정신교육을 시작했다. 나는 말이 끝나는 타이밍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올해는 뭐 생각해둔 게 있겠지?”
아버지가 말했다.
“그냥.... 이대로가 좋아요.”
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적막이 감돌았다. 아버지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는 실은 시를 쓰고 있으며 올해 등단은 못 했지만, 본심에는 올랐다고 고백했다. 살짝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아버지의 표정은 한층 더 험악해져 있었다. 심장이 떨렸다. 아버지는 손바닥을 올렸다가 차마 때리지 못하고 탁자를 내리쳤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굳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일어나고 큰방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찻잔을 치우곤 TV를 켠다. 과장된 성우의 목소리, 주춤주춤 몸을 일으켜 내 방으로 향했다. 문을 닫자 허기가 몰려왔다. 저녁에 사 온 타르트를 꺼내 물었다. 타라미수와 크림빵, 엄마 몫의 단팥빵까지 전부 먹고 나니 잠이 쏟아졌다.
2주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조차 이제는 지친 모양이었다. 온종일 비공개 블로그에 우울한 글을 끼적거렸다. 우울하고 비참했다. 더이상 이 집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미쳤을 때, 통장을 쥐고 코트를 챙겨 입었다. 문을 여는 데 용기가 필요했다. ‘던전 앤 드래곤’이 생각났다. 삼촌의 구형 엑스박스로 했던 게임, 삼촌은 칼과 방패를 든 전사를 나는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를 플레이하곤 했다. 같이 용을 잡았을 때, 그 희열을 기억한다. 이제는 전부 혼자 플레이해야 한다.
오백사십이만 원이 통장에 찍혔다. “오백사십이만원....” 주문서에 스펠을 읊듯 통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직방에 보증금 500만 원을 설정하고 주변을 검색했다. 월 20만 원부터 45만 원까지 월세방이 주르륵 잡혔다 ‘역세권*버세권 깔끔하고 반듯한 풀옵션 원룸’을 클릭하자 화장실 딸린 작은 방이 눈에 들어왔다.
방은 생각보다 좁았다. 사진 속 희고 깔끔한 벽지는 그사이 부식이라 된 것인지 누리끼리했다. 화장실엔 곰팡이가 끼어있다. 부동산 아저씨는 이런 조건이 없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햇빛이 잘 든다며 창문에 손을 대자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방은 마음에 드세요?”
“네? 네에....”
보증금과 월세가 빠져나가자 십 이 만원이 남았다. 나는 떡볶이 코트를 입은 채 방에 대짜로 누워 낯선 천장을 바라보았다. 움직일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한 손에는 껍데기만 남은 통장이, 다른 한 손에는 계약서가 담긴 봉투가 들려있다. 반쯤 열린 창문에서 눈이 새 들어왔다. 뱃속이 뻐근하게 아려왔다.
난방은 취약했다. 글을 쓰긴커녕 낙서조차 할 수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몸은 자꾸 말라갔다. 친구들은 소공녀니 공주 놀이니 하는 말로 속을 뒤집어 놓았다. 삼촌이, 삼촌이 너무 보고 싶었다.
평택으로 가는 버스 안, 떡볶이 코트에 헤드폰을 쓴 채 의자를 젖혔다. 앨리엇 스미스의 ‘Between The Bars’가 흘러나온다. ‘당신이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사람들, 압박하고 밀치고 당신 뜻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멈추게 할게요.’ 부드러운 목소리에 잠이 쏟아졌다.
계절은 변했지만 나는 고정되어 있었다. 마음속에서는 무언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었다. 눈만 무심하게 내리고 쌓여다. 발목이 시리다. 기억과 감각이 무채색으로 가라앉는다. 내리는 폭설에 한 치 앞도 보이지가 않았다.
수목원은 제설에 여념이 없었다. 상록수로 들어찬 공원은 부자연스러웠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차림을 한 모양이다. 삼촌의 정원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단번에 눈치챌 수 있는 부조화였다. 오래 앉은 탓인지 발걸음이 불안했다. 어릴 적 아버지는 안짱걸음으로 걷는 나를 고친 답치고 한동안 ‘큰 걸음’으로 걷게 했다. 팔을 구십도 까지 올리고 다리는 앞굽이 자세로 크게 걷는 걸음이다. 사소한 것부터 상처다. 최대한 발에 힘을 주고 걸었다. 한 발짝 한 발짝, 호흡이 희미하게 거칠어질 즈음 나는 삼촌의 나무에 닿았다. 삼촌의 기일이었다.
*
‘나무는 입이 땅에 박혀있고 다리가 거꾸로 서 있어.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면 뿌리 쪽에 귀를 대봐’ 나는 삼촌의 말에 몸을 웅크렸다. 땅에 귀를 대자 뺨이 간지러웠다.‘소리가 들려요.’ 시계 소리 같기도 하고 긁는 소리 같기도 했다. 삼촌은 내 뺨에 묻은 흙을 털며 웃어 보였다. 그런 날이 있었다. 그런 날도 있었다.
눈에 뒤덮인 향나무는 커다란 아이스크림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뿌리 부근에 귀를 기울였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릎이 시렸다. 미간에 눈물이 고여 떨어진다. ‘삼촌, 뭐라도 좋으니까 아무 말이나 해줘 봐요 좀.’ 그 순간 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소리에 집중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통증이 작렬했다. 눈에 꺾인 나뭇가지가 등을 친 모양이었다. 목덜미 안으로 눈이 끼쳐 들어왔다. 오랜만에 본 조카를 발로 찬 격이었다. 나는 그대로 웅크려 앉았다. 서 있을 기운도 없었다. 창피하고 무기력해서 그대로 땅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이제 더 기댈 곳은 없다.
“괜찮니?”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웅크린 자세 그대로 뒤를 돌아봤다. 키가 크고 마른 여자, 녹차를 건넸던 여자다. 부끄러움에 몸을 일으키고 코트에 묻은 눈을 털어냈다.
“거기서 뭐 하고 있었어?”
“절하고 있었는데요.”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피나, 목에”
여자는 뒷목을 쓸어 보였다. 머리카락이 걷히면서 하얀 그녀의 목이 드러났다. 내가 따라서 뒷목을 쓸자 빨갛게 피가 묻어났다. 나는 여자가 건넨 하얀 손수건을 받아 상처가 난 부분을 눌렀다. 통증이 몰려왔다.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곤 주차장 쪽을 향했다. 나는 허리를 틀어 향나무를 바라보았다.
“목 좀 보여줄래?”
여자는 대일밴드를 가져왔다. 목덜미에 닿는 손이 차다. 커다란 눈에 광대가 드러나 초췌해 보였다. 이십 대 후반? 나는 그녀를 ‘초체’라고 부르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초체는 삼촌의 향나무를 바라보았다. 눈이 맑았다. 폴라니트에 패딩까지 걸쳤는데도 마른 티가 났다.
“서울 살아? 갈 거면 터미널까지 태워다주고.”
강요는 아니라는 듯 손바닥을 내 쪽으로 펼쳐 보였다. 잠시 망설이다가 통장에 남은 금액을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평택을 뜨고 싶었다. 방에 대짜로 누워 천장을 바라볼 생각이다. 초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체는 잠실에 산다고 했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차 안은 따뜻했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초체가 삼촌의 애인, 그 이상의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삼촌의 지원금으론 집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그마저도 오래 일할 자신이 없었기에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당을 뛰었다. 봉고차를 타고 외곽 갈빗집에 홀 서빙을 하기도 하고 편의점 일을 대리로 뛰기도 했다.(인수인계가 맞지 않아 번 돈을 다 토해내야 했지만) 소개소에는 수능을 끝내고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한 아이들이 많이 찾아왔다. 일주일쯤 지나자 ‘일 못 하는 언니’라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이 느려서 설거지도 못 했다.
이 주쯤 지나자 통장에 웬만큼 돈이 쌓였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카페에 들렀다. 확실히 달랐다. 친구들은 화장부터 옷차림까지 태가 났다면, 나는 어느 고등학교에서 걸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아니, 요즘 고등학생도 이렇지는 않다. 친구들이 남자친구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나는 초체를 생각했다.
양손이 무거웠다. 통장은 또 껍데기만 남고 말았다. 감색 코트에 아이보리색 기모 블라우스, 까만 스커트, 굽 높은 부츠까지 일 주 일분 일당이 날아갔다. 세일을 한들 겨울옷은 비싸고 또 비쌌다. 2주 넘게 계류 중인 초체의 손수건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마침내 휴대폰을 들었다. 강남역, 초체는 4번 출구 할리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지하부터 2층 실내 테라스까지 개방된 구조였지만, 사람들로 꽉 차있어 답답하고 또 답답했다. 2층에 앉아있는 초체의 모습이 보였다. 긴 머리에 좁고 가는 어깨,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층계를 밟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맞은편 의자를 빼자 초체는 책을 덮고 나를 바라보았다. 뿔테안경, 전혀 다른 인상이다. 앞을 보고 앉아 있었다면 초체를 알아보지 못했을 테다.
“뭐 마실래?”
초체의 낮고 나른한 목소리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내가 산다는 말에 초체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날 그 꽃 언니가 둔 거예요?”
초체를 처음 만난 날, 삼촌의 향나무 아래는 하얀 작약 꽃이 놓여있었다. 초체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초체는 삼촌을 대학원에서 만났다고 했다. 내가 12살 무렵, 삼촌은 중국 유학을 간 적이 있었다. 삼촌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더 했지만, 초체의 불편한 표정에 말을 삼켰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삼촌이 칭화대에서 미대 석사과정을 밟았다는 것이다. 삼촌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넌 요즘 어떻게 지내니?”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초체에게 털어놓았다. 초체는 다시 손수건을 건넸다.
“네 글, 내가 좀 볼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주말이면 초체의 카페에 들렀다. 청록색 외벽에 테이블 다섯 개, 일인용 테이블이 두 개, 장식은 거의 없다. 커피도 팔지만, 보이차나 계피차가 더 좋았다. 나는 구석에 놓인 일인 석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드물게 손님이 많은 날이면 설거지를 도왔다. 가게가 한산할 때는 초체와 수다를 떨기도 했다. 5월에 문예지 공모가 있으니 넣어보라는 초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중에는 9시부터 7시까지 물류센터에서 책상, 책장, 전신 거울 같은 가구를 날랐다. 일급으로 7만 원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고 일이 익자 셔틀버스에 곯아떨어진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에 지치고 찌든 얼굴들, 매달 10일이면 삼촌의 돈이 들어왔다. 삼촌은 학비를 대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매달 그 돈이 월세로 나가고, 생활비 때문에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모습은 상상도 못 하겠지? 쓴웃음이 났다.
“음악 제가 틀어도 돼요?”
초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에 설거지를 돕다가 팔이 저려왔다. 어제 나른 4단 서랍이 문제였다. 초체는 잠시 나를 살피더니 작은방에서 파스를 몇 장 꺼내왔다. 초체의 손이 등에 닿았다. 파스의 촉감이 어깨로부터 차갑게 퍼지다가 이내 화끈하다. 밀도 높은 열기였다. 매무새를 정리하고 다시 전용석에서 책을 펼쳤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초체도 시를 썼다고 했다.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내 시를 봐줄 때만큼은 언제나 진지했다. 첨삭대로 퇴고를 거치고 나면 처음 쓴 게 부끄러울 정도로 좋아졌다. 내리쬐는 겨울이었다. 코트를 의자에 걸쳐놓고 안으로 쏟아지는 해를 맞았다.
노곤함에 눈이 감겼다. 정원은 우거져서 발조차 들일 수 없었다. 이럴 리가 없다. 삼촌은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주변과 어우러지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다른 곳에 옮겨심거나 아예 잘라내 버리곤 했다. 자라난 가지에 팔이 베였다. 짙은 방향에 정신이 혼미했다. 연못으로 향할수록 방향은 점점 진해져 갔다. 생채기마다 송진 같은 피가 흘렀다. 한여름 자동차 안 같은 답답함에 숨이 막혔다. 한발짝 한발짝 뗄 때마다 나무뿌리라도 되는 것처럼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연못 주변은 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렸을 적 삼촌은 그 꽃을 내게 보여준 적이 있다. 붉고 아름다웠다. ‘삼촌 그 꽃 이름이 뭐예요?’ ‘작약이란다.’ 삼촌은 웃으며 말했다. 하얀 리넨 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삼촌은 소년 같았다. 하얀 두 발이 연못에 잠겨 일렁였다.
“삼촌 그런데 이 꽃, 작약 아니잖아요?”
나는 초체가 삼촌의 무덤에 놓아둔 하얀 작약을 떠올렸다.
“작약이란다.”
“거짓말”
삼촌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삼촌은 천천히 연못 속으로 천천히 녹아들어 가는 모양이다. 지독한 냄새가 났다. 나는 신발을 벗고 연못에 뛰어들었다. 두 팔을 뻗고 삼촌을 안았을 때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초체의 마른 손길이 느껴졌다. 온몸이 차갑고 습했다.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쳐놓고 초체를 바라보았다. 초체는 내 등을 다독이다 주방으로 향했다. 진한 계피차 향기에 꿈이 짙어진다. 생생하게 느껴졌던 삼촌의 정원, 삼촌의 숲, 삼촌의 연못, 삼촌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고 맴돌았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삼촌은 딱 한 번 그 꽃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 잊고 있었는데, 어째서 지금 꿈에 나온 것인지, 그리고 그 꽃의 이름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양귀비 꽃이야.”
초체가 말했다.
“네?”
“약도 만들고.... 관상용으로도 기르고....”
초체는 가만히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감상적 쓰레기’니 ‘약쟁이’니 하는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말문이 막혀왔다. 한사코 부검을 거부하던 아버지의 모습, 내가 신춘문예 본심에 올랐을 때 아버지가 보인 반응, 더는 시를 쓸 수 없을 것 같다던 삼촌의 모습도 떠올랐다. 심하게 손을 떠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너는 나보다 좋은 시인이 될 거야.’ 이제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다.
*
‘Close’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얼마 후 찾은 초체의 카페는 닫혀있었다. 커다란 초록색 문이 낯설었다. 손을 가져다 대자 차디찬 한기가 손목까지 끼쳐왔다. 문을 닫는 일이야 잦았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초체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늘 생각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초췌한 그녀의 눈을 마주칠 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 밑바닥까지 훑어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를 대신 발견해 주기도 하고 알아주기도 했지만, 그게 초체의 목적은 아니었을 테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다가 의외의 물건을 몇 개 발견했을 뿐이다. 나는 초체가 나를 지나서 그 무언가를 찾아 떠났음을 눈치챘다. 내리쬐는 겨울이 지나고 차가운 봄이 오고 있었다. 쌓인 눈이 회색으로 뭉개졌다. 나는 문앞에서 그대로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먹지않고 자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쩌다 눈이 내리고, 어쩌다 비가 내려도 나는 이불 밖을 나오지 않았고 다시 한 번 번데기 라던가 누에고치로 변해버린 것만 같았다. 몸은 자꾸 말라갔다. 가만히 천장 모서리를 응시했다. 이 작은방의 소실점이 내가 닿을 수 있는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조금씩 무게를 줄이며 사라지는 것이다. 너무 하찮고 무의미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너무 지쳤다
더 살아갈 기운이 없다
이건 자연사다
몸에서 버섯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버섯은 어깨, 가슴, 배, 다리, 손까지 모든 곳에 번식한다. 뇌도 눈도 손도 움직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몸은 여기 있지만, 진짜 나는 이 방의 어딘가에 부유하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오른쪽 눈에서 싹이 터 올랐다. 잎이 자라고 떨어지더니 붉은 꽃을 피운다. 나는 서둘러 눈을 감았다. 베게 옆에 잘린 꽃 하나가 나뒹굴었다. 그런 꿈을 꾸었다.
냉장고를 뒤졌다. 언제 샀는지 모를 눅눅하고 푸르죽죽한 채소들 사이로 통조림 하나가 손에 잡혔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가락으로 통조림을 까고 보니 역한 비린내에 숨을 쉴 수 없었다. 왜 내 주변은 온통 눅눅하고 푸르죽죽하고 비릿한 것으로 가득 차 있나? 내가 잃어버린, 내가 원하고 사랑했던 모든 것은 이제 어디로 다 증발했을까? 오랜만에 창문을 열자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눈이 부셨다. 문득 삼촌의 정원이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 동서울 터미널에서 춘천행 버스를 탔다. ‘당신이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사람들, 압박하고 밀치고 당신 뜻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멈추게 할게요.’ 앨리엇 스미스의 가사. 이어폰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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