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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외색 인간] 어느 날 더듬이가 돋아났다.

by 허블 May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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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머리에 더듬이가 돋아났다.



당시 나는 화가를 꿈꾸었지만, 미대입시 낙방이후 야심 차게 시작한 그림 유튜브도 별 인기 없었다. 야심이 없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큰일을 해내리라고 다짐하면서, 잔뜩 웅크린채 세상을 고양이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언젠가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큰일 낼 놈’이라면서 ‘히틀러도 미대에 떨어진 다음에 독재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더듬이라니…’ 

우스운 내 삶에 대한 조롱일까? 화장실 거울을 바라보면서 헛웃음이 났다. 



개미의 더듬이를 연상시키는 그것은 좌우로 왔다갔다 하면서 무언가를 탐색하는 듯했다. 뭘까? 카프카 선생님의 변신처럼 온몸이 바퀴벌레로 변하지 않아 다행인 것일까? 머리가 어지럽다. 대충 세수를 마치고 유튜브를 보자 그야말로 ‘더음이판’이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믿을만한(?) 공영방송에서 올린 뉴스 썸네일을 클릭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생물학 박사라는 사람이 앙증맞은 더듬이를 움직이며 말한다.



'저도 이 현상을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가설을 세우자면 환경 변화에 따른 인류의 적응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미세먼지, 황사 등으로 앞을 보기가 힘들어지지 않았습니까? 발현되지 않은 유전자가 환경을 감지하여... 급격한 형태로 발현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박사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듯했지만 결국 본인도 혼란에 휩싸인 듯 보였다.



‘이게 우리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은 더듬이가 돋아났을 뿐이지 일상이 달라졌다는 보고가 없는 것 같거든요.’

아나운서 역시 당황해 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음... 더듬이가 감각기관의 특징이 있다면,  뇌에서 더듬이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활용하고자 할 겁니다. 우리의 뇌 속에는'호문쿨루스'라고 부르는 축소된 사람 모양의 지도가 있어요. 우리가 왼팔을 움직이고자 한다면, 뇌 속의 신체 지도인  호문쿨루스의 왼팔 쪽에 신호을 주는 식으로 움직이게 되지요. 그곳을 통해서 정보를 받아들이기도 하구요.  그렇게 호문쿨루스에도 더듬이가 생기면.... 정확히 말해 더듬이로부터 오는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이 생긴다면, 우리는 개미처럼 세상을 보게 될지 모릅니다. 눈을 감고도 출퇴근을 하고.. 소비하는 상품이나, 예술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올’



머리가 어지러워 유튜브를 끄고 학원에 갈 준비를 했다. 유화물감과 준비물을 챙기고 나선 거리에서 무언가, 풍경이 낯섦을 느꼈다. 며칠이 지나자 감각은 더 강렬해 졌는데, 눈으로 본다는 말로도, 냄새를 맡는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것은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생생한 현실로 나를 육박해 왔다.



한 달 쯤 지나자 눈을 감고 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삼성과 엘지에서는 TV에서 페로몬을 느낄 수 있는 부가장치를 개발해 장착했다. 나중에는 화면 없이 그 장치만 독립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출현 하기도 했다.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의 기준은 단지 보이는 외모뿐 아니라 그 사람들의 페로몬까지 관여했다.(안타깝게도 나의 페로몬은 이성에게 큰 매력을 주지 못했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라는 말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경찰은 살해 현장에서 '페로몬 흔적'을 큰 단서로 보았다. 이를 이용해 살인 장소에 남의 페로몬을 뿌려놓고 도망치는 범죄도 있었는데, CCTV에 명백히 다른 사람이 찍혀 있었음에도 "페로몬 증거가 너무 명확하다"라는 이유로 증거를 의심받았다. 왠만한 기초적인 소통은 페로몬을 통해 가능했기 때문에 언어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었다. 한국말을 1도 모르는 외국인을 만나도 두렵지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됐냐고? 미술을 때려치우고 대박을 쳤다. 



기존 예술이 청각/시각에 편중되어 있었지만 '더듬이'로 하여금 그 판도가 아주 달라졌다. 마치 소설 '향수'의 주인공처럼, 여러 가지 페로몬을 향유와 뭉개서 나만의 팔레트를 만들었다. 나는 '호문쿨루스'에 더듬이가 돋아나는 속도가 빨랐는지, 더듬이가 생겨난 첫날 미술 학원에서 유화물감을 뭉개면서 어떤 ‘가능성’을 포착했다. 덕분에 누구보다 빨리 페로몬을 소재로 한 새로운 예술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전혀 다른 감각을 통해 새로운 고양감으로 사람을 이끄는 일이다.



내가 만든 가장 저렴한 팔레트가 500g에 2,000달러다. 그림의 형태력은 부족했지만, 유화물감을 조합하여 독특한 색을 만드는 나의 특기가 여기서 드러났다. 내가 만든 향유는 올리브 영에서 파는 싸구려 페로몬 화장품과는 전혀 다른 "예술 작품'으로 전 세계에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인도의 한 부자는 내 마젠타 페로몬 팔레트를 잔뜩 사서 그 향유를 미간에 찍고 다녔다. 이는 곧 인도의 귀족과 왕족, 상류층에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인도의 총 인구수만큼 계좌에 돈이 불어났다. 



나는 그보다는 벤타 블랙 페로몬 향유를 눈 아래 바르는 것을 좋아했다. 마치 이집트 왕족의 화장처럼 우아하면서도 빛을 포함한 모든 것을 주변서 빨아들인다.



아 참, 마지막으로 히틀러 어쩌고 하던 친구는 미술을 때려치우고 내 운전기사가 되었다.





Thanks to c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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