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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Sep 03. 2023

뮤지엄산, 빛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전 '청춘'






















              도전, 청춘            


안도 다다오는 6차례 가까이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전을 진행했고, 7차례에 와서는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전을 이어갔다. 수차례 이어온 전시의 이름을 중간에 바꾸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 같은데, 문맥상 도전과 청춘은 한 끗 차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안도 다다오는 단카이세대에 가깝다. 단카이 세대는 우리나라의 586세대처럼 역동적인 사회상 안에서 발전을 이끌었던 주역이다. 사회도 생물처럼 나이를 먹는다면, 아주 어린 사회에서 태어나 자신의 가능성을 실험했고 그 결과로 부동의 입지를 점유한 거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당시 일본은 소규모 목조주택이 많았다고 한다. 패전 이후 협소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일본 정부는 돈이 없었던 일반 서민들에게 주택을 짓기를 권장했고 저리 융자를 통해 활로를 열어주었다. 그 결과로 안도 다다오같은 건축가가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영위하면서 자신의 기술은 물론 개성과 가치관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된 듯하다. 즉 개인의 역량과 사회의 요구가 맞닿은 시기에 등장한 천재였다.


70년대에는 이런 협소주택의 인기와 맞물려 잡지에도 주택 건축과 관련한 지면이 배정되었다고 한다. 이때 다다오는 칼럼을 집필했고, 인지도를 크게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마치 임진왜란 때 필요에 의해 의술이 발달했고, 허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동의보감이 집필된 것처럼, 개인의 재능이 사회의 큰 흐름을 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했을 때, 그도 처음에는 상업적인 건축을 했다는 부분이 꽤 맘에 들었다. 그는 학문에는 큰 뜻이 없었기에 공업고등학교에 즉시 진학했고, 사회의 필요에 의해 필요한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정립했던 사람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목적으로 일을 했건, 자신의 오리지널이라 할만한 것을 끄끝내 만들어 냈다는 것이 아닐까?



2. 결벽성과 통제의식의 가진 4할 타자


뮤지엄산은 안도 다다오의 시그니쳐라고 할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를 중심으로 '귀래석'이라는 오렌지빛 도는 자연석으로 외장을 마무리하고 지붕을 마치 '그 위에 떠있는 것처럼' 연출했다. 그 연출은 면면히 패턴으로 나타난다. 구조설계를 하는 친구는 만약 이런 설계를 시공사에 의뢰한다면, 아연실색하며 거절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미 건축은 끝난 학문이며, 가성비 뽑기에 몰두하는 시장이라는 말이었다.


같이 전시회를 본 내 친구도 싱가폴의 한 국제 대회에서 조형물 관련 수상 경험이 있다. 즉 능력은 충분하고 생각한다. 아마도 안도 다다오가 이런 건축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교회나 뮤지엄, 기념관 같은 특수 목적 건축에 속해있기 때문이고, 이런 수주를 따내기 위해서는 건축가의 재능도 재능이지만 인지도도 큰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 미쳤다.


1941년을 마지막으로 야구에서는 4할 타자가 사라졌다고 한다(마침 안도 다다오의 생년과 동일하다) 그 이유로 한국과학기술원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최고 타율의 선수와 최저 타율의 선수 사이의 격차가 줄어 튀는 선수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이전에 '굴드의 가설'이라는 가설로 제시되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시스템이 안정화되면서 튀는 선수(개체)가 사라진다는 가설이었다.


사회 안에서 나의 의도를 있는 그대로 구현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게 고집으로만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미 관성과 궤도 안에 들어온 '분야'나 '집단'에서 '나'라는 존재가 가질 수 있는 입지는 사실 작고 미약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 안심이 되기도 했다. 작가는 개인이 원자단위에서 고집스럽게 자기의 작업을 관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서 안도 다다오가 이러한 건축가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시대적 요인만 작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그렇다면 동시대의 상당수 건축가가 그만한 명성과 커리어를 가져야 할 테니까, 내가 건축물과 전시회를 보면서 느낀점은 그의 결벽성과 통제 의식, 즉 고집이었다. 그의 건축물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건물에 진입하기까지 어떤 시퀀스를 보여줄지, 그 건물 안에서 무얼 보고 어떤 행동을 취하도록 의도할지 너무나 디테일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물의 교회'에서 사람은 창을 통해 물 위로 솟아오른 십자가를 보게 되고, '바람의 교회'에서는 투명한 통로를 통해 성스러운 장소로 들어가기까지 특별한 시퀀스를 만들어 낸다.






큐레이션에서 들은 바로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 사무실은 이런 구조로 생겼다고 한다. 1층 테이블에 안도의 책상과 회의실이 있고, 위로는 천장이 아닌 테라스 형태의 사무실을 둔 것인데, 회사원 입장에서는 참 곤란한 구조다. 어느 날 다다오의 친구가 '이 사무실은 좀 너무한 거 아닌가?'묻자 다다오는 '이 사무실이 얼마나 좋은데'라고 말하며, 1층에서 작업을 하다가도 직원들에게 걸려오는 클라이언트의 전화 내용을 다 들을 수 있어서 업무 파악에 용이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물론 직업군에 따라서 예민성과 고집, 컨트롤 이슈가 역기능을 할 때도 있긴 하지만, 이런 고집이 있었기에 시대상과 맞물려 거장의 반열에 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가진 재능을 보드 삼아 오르는 파도를 타는 것


사람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5000평 정도 되는 어두운 창고 안에서 작은 플래쉬 하나에 의존하는 수준의 인지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안도의 성격과 사회상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면서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뭘까 하는 생각에 미쳤다. 어렴풋이 찾은 것도 같고,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친구는 넓게 생각해서 기술자가 가지는 테크닉뿐만 아니라 사회상을 읽을 수 있는 능력, 어떤 거래, 수주를 따낼 수 있는 재능까지 종합해서 시대를 타는 것을 종합적인 '재능'으로 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 정도 의도를 기해서, 쉽게 손바닥 뒤집듯이 어떤 일을 멋지게 해낸다는 게 참 어려운 일임을 안다.


그렇다고 해도 생각을 한번 해보는 것과 해보지 않는 것은 천지차이다. 나는 가진 재능을 보드 삼아 오르는 파도를 타는 것이라 명명해 보았는데, 5천 평이든 5만 평이든 꾸준히 주변을 둘러보고 탐색해가면서, 더듬어가면서 나의 입지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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