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한 단상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 교수는 저서 <미래의 물리학>에서 '순간이동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영화 스타트랙에서는 사람을 순간이동 시키기 위해 이동시킬 대상을 양자 단위로 스캔한 다음 해체하고 이동시킬 위치에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순간이동을 실현한다. 그 경우 재구성된 개체는 원래 개체와 동일한 것일까?
미치오 카쿠는 이 경우 재구성된 개체는 원래 물질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물리적 연속성이 끊어지므로 동일한 개체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순간이동 과정에서 전송된 개체의 정보를 활용해 '순간이동'이 아닌 여러 개체로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지기도 한다.
소중한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었을 때, 그 인격과 자아를 모사한 AI가 있다면 재구성이나 부활이라기보다 유산에 가까워 보인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이나 출판한 책들은 나의 유산이다. 미국의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은 자신이 죽더라도 작품 안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가 남긴 것을 보고 추억할 수는 있어도 '사랑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한다면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것이지, 그를 사랑하는 게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순간 이동이나 부활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7년 ~ 10년 주기로 온몸의 세포가 바뀐다. '테세우스의 배'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에 좋은 인사이트를 주는데, 테세우스의 배가 수백 년의 행해 끝에 절반 이상의 부품을 교체하게 되었다면 그 배는 처음과 같은 배인가 하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용골'에 있다. 용골은 배의 척추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으로 '본질적인 것'을 의미한다. 만약 배를 수리하는 데 용골을 교체한다면 그것은 수리가 아니라 새로 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사람에게도, 개개인에게도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순히 유전자 배열이나 물리적 구성이 아니라 태어나 살아온 경험과 타인과 함께한 시간까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적 재현 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논문에서 '아우라'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여기-지금성"("here and now")에 대해 말한다. 그 작품의 독특한 존재와 그것이 차지하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작품의 고유한 역사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복사'로 취득할 수 있는 게 아니며, 복제본은 원본의 위치, 맥락, 시간과 분리되어 소모된다는 지적이었다. 물론 이 주장 역시 하나의 가치관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런 해석이 사람에게도 적용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