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한 단상
2022년 말부터 2023년 초는 AI가 세상을 뒤집고 있었다. 미드저니라는 생성형 인공지능 화가가 그린 그림이 미국 미술전에서 1등을 하기도 하고, 챗GPT는 대화형 인공지능으로 구글과 같은 대형 포털을 위협했다. 그렇다 보니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고, 노동시장은 이미 많은 부분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관계는 어떨까? 이루다 같은 인공지능 챗봇은 정말 자연스럽게 이십 대 여성의 말투로 채팅을 주고받기도 하고, 영화 her이나 zoe, 엑스마키나에서는 이미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랑에 대해 다루기도 했다.
여자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신이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었을 때, 자신의 인격과 자아를 복사한 AI가 있다고 한다면 그 AI와 사랑에 빠질 수 있겠는지 하는 이야기였다.
이미 인간이 아닌 것도 사랑하는 것이 사람인지라 처음 본 AI자체를 사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단지 기억과 인격, 자아를 복사했다고 해서 죽은 연인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는 물음표가 찍혔다.
죽은 연인을 모사한 AI모델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그'처럼 사랑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아무리 기억과 인격, 자아를 유사하게 복사했다고 해도 그것을 통해 이미 죽은 연인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해 온다면, 어쩐지 기만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정신분석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다. 개개인 각각의 욕망, 이기심을 긍정했던 프로이트와 달리 '사랑'을 키워드로 다소 이상적이고, 정이 넘치는, 사회적이고 아가페적인 연대를 꿈꾸는 사람이다. 지극히 단순화하면 프로이트는 사고형, 프롬은 감정형에 가깝다.
프롬은 인간이 어쩌다 삶을 권태롭고 무의미한 것으로 보고 증오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분석한다. 특히 그 원인을 지나치게 이성을 추구하는 모더니티에서 나왔다고 이야기한다. 과학기술/계획/기계와 같이 차갑고 죽은 것에 끌리는 '네크로필리아'가 득세하게 되면서 '바이오필리아'적인 삶은 매력을 잃었다. AI를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물음은 고도로 발달한 기술이 바이오필리아적 휴머니즘을 대체할 수 있느냐는 물음으로 읽혔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클레멘타인과 헤어진 조엘이 기술을 통해 꿈속에서 연인과의 기억을 지우려다가 괴로워하며 다시 기억을 붙잡으려는 장면이 나온다. AI의 연인의 경우 반대로 자연스럽게 추억으로 남아야 할, 실존적인 사랑이 기술로 하여금 다시 한번 선명하게 현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연인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틱한 사건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나 역시 조엘의 거울상과 같이 고통스러워할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사람에 따라서는 AI연인을 사랑하는 것이 애도의 방식이자 고통을 줄이는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죽은 연인'이라는 사건을 앞에 두고서는 그 대체물인 인공지능을 '사랑'하는 선택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린 왕자에서 수많은 장미 중 하필 그 장미가 특별한 이유는 그것과 함께한 시간 때문이라는 걸 생각하면, 장미는 단순히 복제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