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한 단상
우리나라 사람들은 좁은 공간 안에 높은 밀도를 이루며 산다.
자연스럽게 비교와 경쟁을 체화한다. 계급이 없는 평등한 사회지만, 문화적으로는 정치 성향, 성별, 세대, 지역, 직업 등 사회적, 계층적 위치에 따라 서로 차이를 두며 피아식별 후 준거집단 외에는 척을 지는 사람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1, 2살 차이만 나도 호칭과 언어로 줄을 세워버리는 경향을 보인다. 그 징후를 3가지 정도로 정리하면
1. 공백을 참을 수 없다.
유현준 교수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한강공원을 만드는 공모전에 사람들은 간척이든, 건축물이든, 다리든, 한강을 메우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고 하며 안타까워했다. 흐르는 강조차도 빈 공간으로 두고 보기 힘든 심리가 작동하는 듯하다.
MZ세대 하면 책임감 없고 워라밸을 중시하고 끈기가 없다고들 이야기하지만, 내가 봐온 바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시간을 쪼개서 일, 운동, 자기 계발을 거듭하는 사람, N잡러, 꿈을 위해 피땀을 태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학 - 군대 - 취업 - 결혼 - 자녀 - 은퇴까지 풀 패키지로 묶여있는 어떤 것을 성취하지 않고 특정 기간을 공백으로 둔다면 그 사람은 어딘가 문제가 있으며, 사회 안의 논외인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거기에 부족해 생물학적 에너지까지 소진하면서 미라클모닝, 성공루틴에 쉽게 경도된다.
2. 타인에 삶에 지나친 관심을 보임.
이건 회사에 책을 의뢰하신 탈북자분께서 말씀해 주신 것이다. 타인의 삶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고 어떤 기준을 세워 간섭하려 든다는 것이다. 다들 알아서 잘 사는데 꼭 간섭을 하려 하고 거기에 평가를 매긴다.
이런 심리는 농경사회적 특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농경사회에서는 상대방의 행위가 나에게 곧장 영향을 미친다. 그가 땅을 늘리면 내가 설 땅이 부족해지는 것이 농경사회이기에, 각자는 각자를 가만두지 못하고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간섭을 할 수밖에 없는 심리가 자동화된다.
이건 다시 근대화를 지나 능력주의, 경쟁 심화와 합쳐져 상존하는 것 같다.
3. 외부에서 주어진 정체성에 더 의미를 둔다.
집단주의의 특징으로 소속한 학교, 직업, 계층 등 외부에서 주어진 가치를 더 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MZ세대의 부정적 특징이라고 나열하는 것들을 보면 어떤 집단 내에 속한 사람이 개인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20대에 해야 할 10가지, 30대에 하지 않으면 후회하는 30가지와 같은 키워드를 훑어보면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군더더기 없는, 지극히 생산적인 것들이지만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에서 주어진 정체성에 최대한 자신을 녹여내 거기에 존재의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개인적인 가치, 개인의 생각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며, 모난 돌이 정 맞지 않게 두드러지지 않는 삶을 사는 게 마치 정답처럼 제시되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MBTI가 유행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 있다고 본다. '나'라는 존재는 중요치 않고, 그저 별나지 않게 주어진 대로 사는 것에 대한 반대편에서 너는 무려 8가지 이상의 요소를 통해 조명받을 만한 개성과 가치가 있는, 퍼스넬러티를 가진 존재라는 자각을 심어주니 말이다.
마치 양 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공부를 하고 각자 능력에 맞게 적당히 직장 잡고 아침에 일어나면 눈떠서 일하러 가고, 저녁에 퇴근하고 내구연한이 다 되면 은퇴해서 적당히 연금 받고 사회에 부담을 주는 존재로 살다가 늙어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하면, 이건 누가 디자인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리하여 그렇게 주어진 삶을 살기보다는 모난 돌이 정을 좀 맞더라도 뿔 달린 양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