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한 단상
영국에서 외로움부 장관이 임명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 이후 부쩍 '외로움' 그리고 '고독사'와 관련한 문제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사람은 누가 뭐래도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한 사회적 동물이고, 외로움/고립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온갖 끔찍한 상황들 중 상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문제다.
가장 내향적인 사람들조차 완전한 고립을 선호하지 않는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책, 각종 SNS, 유튜브와 같은 기타 등등의 메타적 소통을 통해 사회 안에서 효능감을 발휘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존재감을 확인하며 살아간다.
글 쓰는 창작자로 살아가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사회의 본격적인 일들을 두고 혼자 글을 쓴다는 것은, 밀리언셀러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조차 외로운 작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재밌는 점은 외로운 상태에서 불건강해진 사람에게는 이미 주변에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끌어올려야 한다.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한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외로움'을 나치 독일을 출현과 연결시켰다. 외로운 사람들일수록 나치당의 극단적인 선전에 더 쉽게 경도되었다는 말이다. 공허감과 무의미함을 환상적인 형태로 채워주지만, 가짜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중독이라 부를 수 있다.
중독의 사전적 정의는 세 가지 정도다.
1. 생체가 음식물/약물의 독성에 의해 기능장애를 일으킴,
2. 술/마약 따위 지나친 복용의 결과, 그것 없이 견디지 못함(병적 상태)
3. 어떤 사상/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 사물 판단'이 불가한 상태다.
꼭 술담배마약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중독될 수 있다. 외로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어떤 것이 내가 된다면, 조절과 통제의 범위를 벗어난다면, 필연적으로 사람은 괴로워진다. 어떤 책의 제목처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선언한 다음 3번과 같은 상황에 의도적으로 투신할 게 아니라면, 지나친 외로움과 중독은 경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아직 크게 알려지지 않은 작가로 살아가면서 사랑받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자기만족도 좋지만, 솔직하게 나는 내 작품이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부츠를 잡고 혼자 무의미한 재부팅을 반복 하기보다는 타인의 손을 잡고 빠져나올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