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얼굴

자아에 대한 단상

by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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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우울에 빠지면 마냥 고통스러울 것 같지만, 사실 무감각에 가까운 침몰에 가깝다. 비유하자면 통증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겪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자기 눈을 뽑아 장난감 삼았다는 무통증 환자의 사례에서 진정으로 깊은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


'좋아하는 아이에게 맞아서 아픈 것은 아프지 않다'라는 어느 초등학생의 동시는 실존적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그렇게 쾌와 불쾌를 끊임없이 치환하면서 갈등하고 성장하고, 사랑한다. 끊임없이 지면과 마찰하면서 정신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든다.


우울에는 무디고 느리고 모호한 차원이 있어서 무엇을 해도 즉각적인 반응을 할 수 없다. 감정둔마, 좀비 같기도 하다. 당장 어떤 큰일이 생겼다고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어쩌다 쫓기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을 경험하더라도 곧바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끼는 게 어려워진다. 눈을 뜨면 곧장 무의식 차원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치 않고 꿈이나 자아실현도 희미해지고 만다.


무통증의 퇴행이다. 우울한 현대인이 가지는 고통은 굶어 죽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승도 자아실현도,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 비극은 말할 수 없음을 말한다.


어쩌다 그렇게 바닥에 떨어진 얼굴에서 종종 빛나는 것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멍이 든 것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말할 수 없던 것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깊은 골에서 채취되는 사금 같기도 하다. 탄소가 상상하기 어려운 압력과 열로 결정화되듯이, 반짝이며 올라오는 것들이다. 나는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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