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에 대한 단상
언더독을 그대로 풀이하면 깔린 개라는 뜻이다. 주로 열세에 부닥친 상태의 상황 또는 사람을 말하며, 문학, 드라마, 영화 등 많은 매체에서 언더독의 성공을 조명하는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현실에서 언더독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성공을 거머쥐기란 어려운 부분이 많다.
유행어처럼 번졌던 '누칼협'담론이 사회 분위기를 대변하면서 언더독은 더욱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 되었다. 누칼협은 개개인의 처지는 모두 개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니 남 탓을 할 게 아니라는 담론이다.
예를 들어 마약을 끊으면서 느끼는 고통에 대해 말하면 누가 마약을 하라고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는 답이 나오고, 화물차 운전의 열악한 처우와 위험성에 관해 이야기하면 누가 화물차 운전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느냐는 대답이 나온다.
의사 선생님이 뇌졸중 입원 환자의 커피와 담배, 커담을 막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민음사 인문학 잡지 '한편'중 '중독'편에서 읽었다. 남편이 권유한 그것은 의학적으론 잘못되었을지 몰라도 치사량까지 환자를 몰아붙이던 우울증 약보다 좋은 것이었고 졸음을 불러오지도, 위통을 불러오지도 않는 '약'이었기 때문에 차마 말릴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머리에 맴돈다.
그러니까 술담배를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독을 비롯한 자기 파괴적 행위에는 나름의 서사가 있고 누구나 알고 있는 좋은 말은 지당하지만 모든것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자아가 강철처럼 단단한 사람이라도 취약성과 콤플렉스를 메스로 도려내 전시하고 조롱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제정신을 지키기 힘들다.(유독 그런 식으로 우월감을 느끼려는 부류들이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언더독을 벗어난 사람일수록 그들과 더 깊은 선을 긋고 구별 짓기를 시작한다. 이건 구조적으로 층층이 쌓여있어서 아래로는 미약한 존재감과 우월감을 느끼고, 위로는 모멸감과 열등감을 쌓으면서 서로를 물어뜯는 지옥에 산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셈이다. 그런 사회에서 언더독이 가장 지키기 힘든 것은 건강한 멘탈이 아닐까 싶다.
20대 초반에 보일러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주물을 깎아낸 적이 있다. 주물이 틀에서 찍혀 나오면 모서리에 얇은 알루미늄 찌꺼기가 붙어있는데, 이걸 뻬빠라고 부르는 쇠막대로 사람이 일일이 갈아내야 한다. 그걸 갈면서 생각했다. 사회가 이 커다란 주물이라면, 그 모서리에 매달린 취약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손쉽게 갈려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 주물 찌꺼기에게 거기 붙어있으라고 칼 들고 협박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