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걸 만드는 게 아니라, 있는 걸 연결하는 법
마법사 카드를 처음 보면 다들 속으로 한 번 생각한다.
“사기꾼 같아.”
맞다. 마법은 종종 사기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마법은 결과만 보여주고, 과정은 숨기니까.
하지만 마법사의 핵심은 숨김이 아니다.
선택이다.
지금 이 순간, 내 앞의 모든 재료 중에서
어떤 걸 집고, 어떤 걸 버리고,
어떤 걸 연결할지 고르는 일.
그게 마법이다.
마법사 앞 테이블엔 늘 네 가지가 놓여 있다.
(버전에 따라 모양은 달라도 의미는 비슷하다.)
완드: 의지, 추진, “해보자”
컵: 감정, 관계, “원한다”
소드: 생각, 언어, “정리하자”
펜타클: 현실, 돈, 몸, “지속하자”
우리는 보통 “재능이 없어서” 못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재료가 없어서”가 아니라 재료가 흩어져서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마법사는 천재가 아니라,
흩어진 것들을 한 테이블로 모으는 사람이다.
마법사는 손이 특이하다.
한 손은 위를, 한 손은 아래를 가리킨다.
이 포즈는 멋내기가 아니라 기능이다.
위: 아이디어, 영감, 개념, 욕망
아래: 일정, 실행, 문장, 돈, 몸
대부분의 사람은 위에서만 산다.
또는 아래에서만 산다.
위에서만 살면: 말이 많아지고, 시작이 없다.
아래에서만 살면: 일은 많아지고, 의미가 없다.
마법사는 그 둘을 잇는다.
말을 계획으로 바꾸고, 계획을 습관으로 바꾸고, 습관을 결과로 바꾼다.
마법은 번쩍이는 순간이 아니라, 내려놓는 반복이다.
머리 위의 무한대는 보통 “무한한 가능성”으로 읽힌다.
그 말도 맞다.
그런데 나는 더 자주 이렇게 읽는다.
무한대는 “영원히 잘함”이 아니라,
영원히 다시함이다.
마법은 한 번의 홈런이 아니다.
어제 실패한 걸 오늘 다른 도구로 다시 붙여보는 것.
그게 마법사의 생활력이다.
마법사는 관객을 속이기도 한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건 이거다.
마법사는 도구를 이름으로 부를 줄 안다.
이름을 부르면 다룰 수 있다.
“나는 지금 감정이 과열됐네(컵).”
“지금은 판단이 날카롭다(소드).”
“지금은 몸이 못 버틴다(펜타클).”
“그래도 밀어붙일 힘이 남아 있다(완드).”
도구를 모르면 ‘운’에 맡기게 된다.
도구를 알면 ‘구조’를 만든다.
그리고 구조가 생기면,
운이 없어도 어느 정도는 간다.
테이블 만들기
흩어진 재료를 한 곳에 모아라.
노트 한 권, 폴더 하나, 시간대 하나.
마법은 ‘새로 구함’이 아니라 ‘한곳에 둠’에서 시작한다.
도구 하나만 먼저 쓴다
네 가지를 한 번에 다 쓰려 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
오늘은 소드(정리)만.
내일은 펜타클(실행)만.
마법사는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순서를 가진다.
작게 내려놓기
“언젠가 크게”는 위에만 머문다.
“오늘 20분”은 아래로 떨어진다.
마법은 크게 바꾸는 게 아니라, 작게 계속하는 쪽에서 자란다.
마법사 카드는 “할 수 있다”는 카드다.
그런데 그 말은 격려가 아니라 경고이기도 하다.
할 수 있다는 건,
못 하는 척 숨을 곳이 줄어든다는 뜻이니까.
그래도 나는 이 카드를 좋아한다.
마법사는 늘 말한다.
지금 당장 완벽하진 않아도,
지금 내 앞에 있는 것들로
충분히 한 번은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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