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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수선집에서 생각한 아이의 인내심에 대한 이야기

by 컬러풀

작년에 이사를 하고 얼마전 처음으로 옷을 수선할 일이 생겼습니다.

스마트폰 지도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시장통의 좁은 골목을 들어서니 빨간 간판에 '수선집'이라는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드르륵' 문을 열자 돋보기를 쓴 어르신께서 하던 작업을 멈추고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어서오세요." 어르신께서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수선을 좀 하려고 왔는데요.."


옷을 건네자 어르신께서는 천천히 치수를 재고 제 이름을 적어 옷에 표식을 하셨습니다.

그 사이 저는 2-3평 남짓한 수선실을 쭉 돌아보았지요.


녹이 슨 재봉틀과 각양각색의 천 조각이 이 공간을 거쳐간 수많은 옷들과 그 시간을 설명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어르신의 2, 30대도 이곳에서 지나갔을까?'

짧은 순간 아련함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러다 잠시 어르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약간 굽은 등이 되레 듬직하고 편안해보였습니다.


"겨울 준비를 할 때가 됐지요." 옷을 접으며 어르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많이 추워졌습니다."


수선비와 일정을 확인하는 사이 일을 마친 아내가 도착했습니다.

이틀 후 옷을 찾기로 하고 문을 나서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믿음이 확 생기는 분이네. 다음엔 다른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그러게~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데?"

"그냥.. 별 거 아닌 사는 얘기들이지 뭐.."

"그래. 그럼 옷 찾으러 올 때도 자기가 와."

"알겠어."


쌀쌀해진 늦가을 저녁 저는 그렇게 겨울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아이디어로 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대단지만

수십년에 걸쳐 묵묵히 한 자리를 지키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은 네, 다섯 살 아이들을 대상으로 인내심에 대한 실험을 했습니다.

미셸은 아이들에게 마시멜로 하나를 주며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15분간 이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리면 마시멜로 하나를 더 얻을 수 있단다."

그렇습니다. 육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만한 마시멜로 실험입니다.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는 상당한 유혹이었고, 600여명의 아이들 중 3분의 1만이 두번째 마시멜로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미셸은 15년이 지난 후 첫 번째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을 추적 조사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마시멜로 실험에서 15분을 참아낸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성적과 학력이 높았고 건강상태나 대인관계 등에서도 더 나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마시멜로 실험은 책이나 강연에 수시로 등장하는 인기 소재입니다. 하지만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지요.

사람의 인생이 '네, 다섯 살의 어느 날, 마시멜로와 함께 한 추억 하나'만으로 결정될리없기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시멜로 실험은 분명히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던집니다.


그것은 바로 인내심 기저에 존재하는 신뢰입니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의 키드 박사(Celeste Kidd)는 아이들을 모아 '한 가지 조작적 경험'을 제공한 후에 마시멜로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28명의 아이들은 먼저 '자기만의 컵 만들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단, 익숙한 기본 재료를 사용해 바로 작업을 시작할 수도 있지만 2분 30초를 기다리면 새롭고 다양한 재료를 추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이 제시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더 많은 재료를 원하며 2분 30초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중에 추가 재료를 받을 수 있었던 건 14명의 아이들뿐이었습니다. 연구자는 나머지 아이들에게 실수가 있었다며 추가 재료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지요.


그리고 이 두 집단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마시멜로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약속이 지켜짐으로써 연구자에게 신뢰감을 갖게 된 14명 중에서는 무려 9명이 마시멜로 실험에서 15분을 기다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반면 추가 재료를 받지 못해 실망한 아이들 중에서는 단 한 명만이 15분을 기다려 마시멜로를 하나 더 받았습니다.


애나 어른이나 참고 견디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엔 수시로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키드박사는 실험을 통해 우리에게 '견디는 힘을 기르는 방법' 한 가지 소개했습니다.

인내와 노력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 기다릴만 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이의 15분은 나아가 한 시간이 되고, 하루가 되고, 일 년이 되어 점 점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쌓인 자리는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은은한 감동을 전하게 되겠지요.

제가 작은 수선집에서 느낀 그것과 같이 말입니다.













<참고문헌>

이고은. (2014.4.8). 마시멜로 효과...우리가 잘 몰랐던 후속 실험들. 사이언스온. http://scienceon.hani.co.kr/157276

WIKIPEDIA. (2015). Stanford marshmallow experiment. https://en.wikipedia.org/wiki/Stanford_marshmallow_experiment

Kidd, C., Palmeri, H., & Aslina, R. N. (2013). Rational snacking: Young children’s decision-making on the marshmallow task is moderated by beliefs about environmental reliability. Cognition, 126(1), 109-114. http://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73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