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알아줄 거란 판타지
내가 좋아하는 옷,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장소, 좋아하는 가수와 즐겨 듣는 노래, 내 소망과 이상형, 나의 약점이나 신체 비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모습과 삶의 순간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엄마다.
엄마들은 아이가 말하지 않은 것, 말하지 못한 것, 거짓말로 숨기려 했던 것까지도 다 아는 것 같다.
심지어 갓난쟁이의 울음 소리만 듣고도 마법 같이 이를 해석하고 아기의 욕구를 채워주기도 한다. 배가 고프면 우유를 주고, 엉덩이가 축축하면 기저귀를 갈아주고, 뭔가 불편하고 불안할 때는 안아주고 토닥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생후 초기 어머니의 기민한 반응은 아이의 근본적인 신뢰감을 높여준다. 등 따시고 배부름을 경험하며 아이에게 '이 세상 그래도 살만하네!'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엄마와 일탈 없이 반듯하게 자라는 아이. 동화처럼 참 아름다운 이야기다. 물론 비교적 순탄한 성장 과정을 거치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응팔의 선우와 정환이, 덕선이는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내 새끼는 안그러겠지'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에게 갖는 판타지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 아들 진짜 살갑고 말 잘 들었거든? 근데 딱 중학교 2학년 되니까 말이 없어지고, 지 방문을 닫더라고. 그리고 뭐라고 좀 했더니 바로 말대답을 하는데.. 정말 내 마음이 무너지더라.."
함께 일하는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다 나온 이야기다. '뭐 저 정도 가지고 그러냐' 싶을 수도 있지만 개인 차가 좀 있을 뿐이다. 어떤 부모는 아이의 말대답에, 어떤 부모는 아이와 소리를 지르고 싸우다가, 또 어떤 부모는 아이 입에서 나오는 욕설에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우리 애가 어떻게 저럴 수가.. 예쁘고 말 잘 듣던 우리 애가..'
어떤 엄마들은 이 시기에 아이의 손을 놓쳐버린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어머니는 아이와의 갈등이 너무 심해 아이가 잠이 든 순간에만 몰래 손을 잡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인형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서도 잘 논다. 소리내 대사까지 읊어가면서 말이다. 현실에서 당장 채울 수 없는 욕구를 상상 속 이야기로 채우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행동이나 혼잣말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학교를 다니고 현실을 경험하며 판타지로 욕구를 채우는 것이 충분하지 않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달라진 아이의 행동과 표정이 낯설지만, 지나버린 시간과 익숙했던 아이의 모습들이 한없이 아쉽지만, 아이의 변화는 정상적인 발달과정이고, 현실이다.
환상은 달고, 현실은 쓰다. 그렇다고 뱉을수도 없다.
'우리 애는, 우리 남편은, 우리 아내는 다를거야.', '이 사람은 절대 그럴리 없어.'
판타지는 나의 기대가 만들어 낸 세계다. 아이도, 배우자도, 또 다른 누군가도 나의 기대에 맞춰 행동하고 살아야 할 의무가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 아이와 나의 배우자도,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 역시도, 내게 그런 판타지를 갖고 있다.
'우리 엄마는 내 마음을 다 알거야.', '이 사람이라면 나를 다 이해할거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사람은 내 부탁을 들어주겠지.'
하지만 어디 그렇던가? 살다보면 오해를 하고, 의심이 생기고, 단호히 거절을 해야 할 순간들이 있다. 바른 말로 아이를 가르치지만 정작 스스로 그 말에 어긋나 부끄러워지는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그럴 때 합리화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나 자신이 완벽하지 않듯, 내 기대에 완벽히 부응할 사람도, 부응해야 할 사람도 없다.
여전히 환상은 달고, 현실은 쓰다. 하지만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은 대부분 쓴 맛이다. 오랜 시간 정성껏 우려낸 한약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