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에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싶다
자동차 사고를 예방하려면 방어 운전을 해야 한다. 누군가 부주의하게 운전을 하거나 신호를 어기더라도 다른 운전자들이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미리 대비한다면 일어날 사고도 피해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두 사람이 돌발상황에서 마주친다면? 결과는 뻔하다. 꽝!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아내와 크게 다툰 어느 날. 우리는 둘 다 여유가 없었고 안전거리를 미리 챙기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상하다는 거야?"
"그래! 너 이상해!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고, 단순히 실수였다는 것도 다 설명했잖아! 근데 뭘 더 어쩌라는건데!"
남녀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부분의 남자들은 '문제해결'에 집중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으로 아내에게 사과를 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 이내 '그럼 뭘 어쩌라는 거야?'라는 짜증으로 이어졌다. 나는 '내가 생각한 최선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아내의 방법'이 아닌 '나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이유를 막론하고 그 날 아내는 나로 인해 속상했고, 아내가 화를 냈던 것은 그 일을 어떻게 해결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아내 역시 나와 싸우는 것을 싫어했고, 되레 화를 안내고 싶지만 그게 되지 않아 더 속상해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아내는 나의 실수가 내 의도는 아니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냥 아내는 자기의 속상함을 알아주기를 바랬을 뿐이었다.
그리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낼 시간이 필요했다. '너 이상해'가 아니라 '지금은 짜증내고 화내도 괜찮아'라는 쿠션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받아주면 버릇이 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내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내가 좀 더 받아주고 미안해했다면 어쩌면 아내는 나보다 더 미안해하고 후회했을 지도 모른다.
결혼을 준비하던 시기에 참석했던 한 집단상담 모임에서 누군가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결혼을 결심한 거예요? '딱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해주는 것 같아서요."
정말 그랬다. 아내를 만나고 나는 길에서 싸움이 나거나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사람이 있으면 가능한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나쳤다가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갔다. 물론 직접 그 상황에 끼어들 용기는 없었지만 경찰에 연락을 하고 바쁘지 않을 땐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집에서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고 싶었을 때도 '내가 짜증 내고 싶은 것을 참았다고 얘기하면 그 사람이 내게 잘했다며 좋아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참고 넘어갈 수 있었다. 결혼 후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니, 지금은 그때보다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야할 이유가 생겼다. 바로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닮아갈 아이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2016년 대명절이 시작됐다. 우리는 양가를 오가며 인사를 드리고 자식으로서, 그리고 사위와 며느리로서 충실히 며칠을 보내야한다. 아내와의 결혼을 결심했을 때, 장인, 장모님을 뵙고 나는 나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그만큼 좋은 분들이었고 결혼 후 단 한 번도 장인, 장모님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처가댁에 가면 내 집처럼 편안하지가 않다. 장인어른께서 일을 하시면 마냥 누워있을 수만은 없고, 장모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상에는 그만큼의 책임감이 느껴진다. 쉬는 날이라도 아침밥을 먹기 위해 눈을 부비며 밥상 앞에 가 앉아야 한다. 그것도 최대한 괜찮은 표정으로 말이다.
아내도 나와 같을 것이다. 우리 어머니와 농담을 섞어가며 편하게 지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의 배려조차 마음 편히 누릴 수 없는 것이 며느리의 마음일테니까.
내 기준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것은 애초에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셔츠와 같다. 내 기준이 아닌 상대의 마음에서부터 시작을 해야하고, 나의 방법이 아닌 상대가 원하는 방법으로 시도를 해야 한다.
그럼 어제까지 일이 치이다 오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남편의 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도, 별것 아닌 것 같은 시댁에서의 1박 2일을 보낸 뒤 들려오는 아내의 깊은 한숨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2016 병신년에는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위해, 그리고 너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