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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햇살 코치 Jul 11. 2022

밥 잘해주는 이쁜 언니

충북 괴산 힐링 여행

주말에 충북 괴산에 다녀왔다. 괴산은 부모님 삶의 터전이었고 내가 태어난 고향이라 정이 듬뿍 가는 곳이다. 명상센터 회원인 정화언니의 second house가 괴산에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귀가 솔깃해지고 무척 반가웠다. 초록 잔디가 깔려있는 주황색 벽돌집은 정갈해 보였고, 입담 좋은 언니가 마을에서 딴 옥수수와 복숭아를 맛나게 먹은 이야기를 들으니 군침이 돌았다. 


"여기 오면 잠도 잘 오고, 그야말로 힐링이야, 힐링! 놀러 와~ 이번 주말엔 손님이 없어."

언니의 말에 지쳐있던 몸과 마음이 기대감에 꿈틀거린다.

"그래요? 저 그럼 갈게요!"

마침 아버지 제사도 다가오던 터라 오랜만에 산소도 다녀오면 되겠다 싶어 흔쾌히 대답한다. 




언니가 차려준 집밥을 맛있게 냠냠!!


가볍게 짐을 챙기고 삼겹살 두 근을 사서 아침 일찍 언니네 집으로 출발한다. 두 시간여 만에 마을에 도착하니 언니 부부가 집 앞에 나와서 반긴다. 처음 뵙는 형부에게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잘 왔다. 안 밀렸나? 밥 묵자."

언니의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정겹다.


언니가 차려준 건강한 집밥


가지를 넣고 만든 코다리 조림과 쌈다시마, 각종 초절임, 텃밭에서 직접 기른 아삭이 고추, 금방 무친 가지나물까지 정말 오랜만에 마주하는 건강한 반찬들이 식탁을 가득 채운다. 언니는 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갓 지은 강낭콩 밥을 퍼 주면서 말한다. 


"남희는 여기 오면 밥을 두 그릇씩 먹는다. 먹어봐. 너도 또 먹게 될 걸."


평소보다 두배의 양이지만 고슬고슬한 밥을 보니 한 그릇은 뚝딱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을 먹고 왔건만 배가 꼬르륵 거리며 밥을 달라 재촉한다. 


언니 말처럼 한 그릇을 싹싹 비우고 조금 더 먹었다. 밥을 먼저 다 드신 형부는 시원한 물 한잔을 내 앞에 슬그머니 놓아주고 가신다. 조용한 배려가 더욱 감사하다. 오랜만에 정성 가득한 집밥을 먹으니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부르다. 


정화 언니가 해 주는 밥은 유난히 맛있다. 예전에는 명상센터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 시간이 되는 회원들이 돌아가며 식사 준비를 했는데, 언니의 손을 거치면 신기하게도 꿀맛이다. 오죽했으면 언니에게 반찬가게를 권유했다. 언니가 파는 반찬을 매일 사다 먹었을 거다. 음식 하는 거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내게 음식 잘하는 언니는 넘사벽이다. 언니가 부럽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 들기도 한다.


갈론 계곡에서 발 담그고 첨벙첨벙!!!


점심을 먹고 커피와 레몬에이드를 타서 시원한 계곡으로 향한다. 근처에 쌍곡계곡은 이름이 너무 알려져서 휴일에는 아침 일찍 가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간 갈론계곡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고 금요일이라 한산하다. 햇볕이 쨍쨍하고 하늘에는 뭉게뭉게 흰구름이 피어오르는 뜨거운 여름 한 낮이지만, 나무 그늘 아래 바위에 앉아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온몸으로 짜릿한 한기가 퍼져 시원하다.


발로는 성이 안차는지 잠시 후 언니는 계곡에 온몸을 담그고 첨벙거린다.

"니도 들어와라. 엄청 시원하다. 틀을 좀 깨 봐라."

무릎까지만 담그고 있던 나에게 언니가 물을 튕기며 들어오라고 재촉했지만, '앗 차거워'를 연발하며 물을 피해 나온다. 언니는 장난꾸러기처럼 깔깔깔 웃고는 햇볕 쪽으로 가서 바위에 몸을 누이고 옷을 말린다. 그 모습에 나도 바위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따듯한 바위에 누워 나무에 둘러싸여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병풍 삼아 콸콸콸 계곡 물소리를 들으니 걱정과 근심이 절로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충북 괴산 갈론계곡


하늘, 구름, 나무, 산, 계곡, 바람, 바위, 사람 
모든 게 다 있다.
참 좋다. 

갈론계곡 물소리


괴산 시장에서 만난 추억의 풀빵!!!


돌아가는 길에 괴산 시장에 들렀다. 마침 장날이지만 무더위 때문인지 장이 다 서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전통시장 구경도 오랜만이다.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서 고등어를 샀던 기억이 떠오르고  어릴 때 먹던 풀빵을 보니 반가움에 사진을 찍는다. 내가 나물을 좋아한다고 하자 언니는 콩나물을 산다. 


예전에는 집에서 콩나물을 키워서 먹기도 했다. 콩나물 물 주는 게 일이었는데..... 물만 주는데도 정말 신기하게 쑥쑥 자랐다. 아이들도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면 좋으련만..... 하하하. 이 또한 내 욕심이리라. '아이들은 키우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라는 말이 떠올라 고개를 젓는다. 


괴산 시장


홈홈, 스위트 홈~


집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집 구경을 했다. 초록 잔디와 이쁜 색깔의 꽃들이 집을 아기자기하게 꾸며주고 있다. 야외데크에는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넓은 원목 탁자가 있고 혼자 앉아서 유유히 시골 풍경을 보며 한가롭게 시간을 낚을 수 있는 흔들의자도 있다. 의자에 앉으니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스르르 눈이 감긴다. 집안 곳곳에 주인장의 정성과 세심한 손길이 느껴져 포근하고 편안하다. 덕분에 매주 가족과 친구들이 언니네 집을 찾는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있어 참 좋아 보이고 노년을 즐겁고 편안하게 지내는 언니를 보니 나도 즐겁다.




함께 나눠먹는 시골 인심, 그리고 큰 마음


"자기야, 살구 따러 가자. 교장 선생님이 살고 따가라고 했다."

언니는 바구니를 들고 나오며 형부에게 말한다. 나는 또 졸래졸래 언니 뒤를 따라간다. 


교장 선생님 댁은 언니의 앞집이다. 서로 교류하며 먹을 것을 나눠 먹는 모습이 훈훈하다. 시골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언니가 워낙 싹싹하고 재바르게 사람들을 챙긴 덕분일 거다. 오지랖 넓은 언니는 사람들과 먹을 것도 잘 나누지만, 좋은 물건을 보면 소개도 잘하고 많이 팔아주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언니가 몇 마디를 건네면 상인들과 금방 친해지고 물건값이 내려간다. 몇 시간 전에도 만원에 두봉지인 옥수수를 네 봉지 받아왔다. 말랑말랑한 옥수수를 먹으며 언니는 역시 수완이 좋다고 감탄한다. '얼마예요?' 말고는 한마디로 못하는 나와는 정말 너무 대조적이다. 내 눈에는 가끔 푼수처럼 보이고 사오정 같을 때가 있지만, 음식도 잘하고 옷도 센스 있게 입고, 사람들과 잘 사귀고, 유연하고 자유롭고 손도 몸도 빠르고 정이 넘친다. 


"가끔 사오정이긴 하지만, 나 명상하면서 많이 똑똑해졌어. 그렇지 않아?"

속내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언니를 보니 참 귀엽고 편하다. 틈만 나면 마음공부 이야기를 하는 언니는 정말 언니 말처럼 똑똑해져서 지혜롭고 속이 꽉 차있다. 


 언니처럼 크고 유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 내 틀을 깨는 게 지금 나에게는 보약과도 같다. 명상을 하면서 알게 되어 1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가고, 집까지 놀러 와서 먹고 놀고 이야기하고 자고 가게 되다니 재미있고 감사하다.

 

나무에 달려있는 노란 살구를 따서 먹으니 보기보다 아주 달다. 살구의 신맛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데 이런 살구는 몇 개도 먹을 수 있겠다. '살구는 시다'는 관념 하나가 희미해진 경험이다.

 


교장 선생님댁 살구와 텃밭의 토마토


저녁에도 집밥은 계속된다. 


저녁에도 언니표 유기농 집밥을 먹었다. 낮에 시장에서 사 온 콩나물 무침은 아삭거리고 고소했다. 액젓, 마늘, 참기름, 깨를 넣어 무쳤다는데 나는 왜 이런 맛이 안 나는지 모르겠다. 역시 요리의 정수는 손맛인가 보다. 쫄깃하고 담백한 수육도 먹고 반주로 시원한 흑맥주도 한잔 했다.


언니가 차려준 건강한 집밥 2


점심에 이어 저녁도 많이 먹어서 배가 볼록하다. 하루 만에 살쪄서 돌아갈 것 같다. 소화를 시킬 겸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밤이 되자 색색의 조명이 불을 밝혀 분위기가 새롭다. 이쁜 펜션에서 하룻밤 묶는 기분이다. 집 뒤에 산이 있고 앞뒤가 트여서 밤이 되자 시원하다.


"내일은 우리 쌍곡계곡 가자. 거기도 참 좋아."

"네 언니, 잘 자요~."


오늘 하루 언니와 함께 잘 먹고 잘 놀았다.

감사하고 행복한 날이다.


조명켜진 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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