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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햇살 코치 Jul 07. 2022

밥 잘 사주는 예쁜 언니

소소한 일상의 기록

명상센터 가족들과 점심 번개 모임을 가졌다. 지난밤 센터 줌 미팅에서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잡힌 약속이다.

월요일 모임은 센터 공지사항과 함께 서로의 근황을 나누는 시간이다. 한동안 중단했다 재개하는 현수막 광고 문구를 논의했다. [명상, 원하는 삶을 살다]와 [명상, 나를 사랑하다]가 경합을 별였고 명희 언니가 제안한 문구가 만장일치로 선정되었다. 약속했던 경품인 커피 쿠폰을 바로 보내주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명희 언니가 다음날 센터에 들를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톤을 높여 말했다.


"어! 저도 내일 점심때 센터에 들를 거예요."

"그래? 그럼 우리 같이 점심 먹을까? 내가 살게. 마침 남편도 외출해서 여유 있어요"

"네 좋아요!"

점심을 함께하자는 언니의 말에 내 눈이 반짝거리며 아이와의 실랑이로 처졌던 몸과 마음에 활기가 돈다.


"몇 시에 만날까?"

"12시에 봐요"


그러자 대화를 듣고 있던 지연이가 말한다.

"12시부터 1시는 나도 시간 되는데....."

"그래? 그럼 같이 먹자."

지연이의 말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갑게 말했다.


"커피 쿠폰 선물 받고 점심 쏘시는 누님, 정말 멋지세요!"

성대도 거든다. 


언니는 동생들 챙기는 큰언니처럼 기회만 생기면 점심을 사주신다. 언니의 점심 제안에 동생들은 신나서 재잘거리고 미팅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내일 만남을 기약하며 늦은 밤까지 이어진 줌 미팅을 마무리한다.




다음날 센터에 도착하니 언니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반겨주신다.

"뭐 먹으러 갈까요? 지연이가 점심시간에만 시간이 되니까 근처에 있는 칼국수집 갈까요?"

"아이고, 더운데 뜨거운 국물을? 냉면 어때?"

"지난번에 근처에서 냉면 먹었는데 맛이 없었어요. 이 주변에 주점은 많은데 식사할 곳은 마땅지 않더라고요"

"그래? 그럼 칼국수 먹자."


네 명이 만나 센터 근처 샤브 칼국수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언니가 건더기만 조금 가져가셔서 국물을 드리려고 했더니 임플란트를 해서 뜨거운 걸 못 드신다고 하신다. 순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 마음을 알아차리신 언니는 식혀서 먹으면 된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신다. 그 말에 불편했던 마음이 녹아 조금 편안해진다.


밥을 먹으며 즐겁게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1시, 지연이는 직장으로 돌아가고 우리 셋은 커피를 마시러 간다.

"커피는 제가 쏠게요! 저 선물로 받은 쿠폰 있어요"

성대가 부드럽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우와~ 고마워!!!"

나는 또 넙죽 즐겁게 받는다.


커피숍으로 향하는데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진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에 언니가 양산을 펼치고 성대는 가방으로 비를 가린 후 발걸음을 재촉한다. 언니와 나는 팔짱을 끼고 서로 꼭 붙어서 작은 양산으로 피를 피한다.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보니 언니의 왼쪽 어깨와 내 오른쪽 어깨가 비에 많이 젖었다. 

"옷이 많이 젖으셨어요."

"괜찮아. 금방 마를 거야."

인생의 쓴맛 단맛을 볼만큼 본 우리에게 이 정도는 어깨를 스쳐 지나가는 한 자락 바람만큼이나 가볍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저 또 하나의 추억거리가 생겼을 뿐. 웃으며 회상할 날을 떠올리니 오히려 마음이 뽀송뽀송해지고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가 간 커피숍은 한 면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보기만 해도 시원스럽다. 1층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2층에 올라가니 널찍한 공간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 한산하고 조용해서 좋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니 무더위가 싹 사라진다. 사람들이 '얼죽아'를 고집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맞은 편에 앉은 언니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살포시 내민다.

"내가 다이어리에 써 놓았던 걸 어젯밤에 컴퓨터로 쳐서 뽑아왔어.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떠오르는 대로 적어봤어.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너무 감사하고 신기해서 써봤는데 어떤지 좀 봐줘"


수줍은 미소와 함께 건넨 흰색 A4 종이에는 언니의 마음이, 생각이, 삶이 담백하고 진솔하게 담겨있다. 글을 읽는데 마치 언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들려주는 것 같다. 목소리가 졸졸졸 시냇물처럼 내 마음에 흘러들어와 조금씩 차오르더니 어느새 호수처럼 그득 채워져 편안하게 감싼다.


"언니! 글이 너무 좋아요. 이거 블로그에 실으면 좋겠어요."

내 말에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즐겁고 흐뭇하다.




언니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눈 건 올해 1월 말이 처음이다. 동명이인을 단톡방에 잘못 초대한 게 계기가 되어 내가 진행하고 있던 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하셨다. 책을 읽는 것도, 온라인 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60대 중반의 언니에게는 낯설고 두려운 도전이었다. 

"용기를 내볼게요. 함께할게요."

카톡에 이 짧은 말을 남기기까지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망설이셨을지 미루어 짐작이 된다.


'당신이 옳다' 독서모임을 시작으로 이어서 두 차례 독서모임과 경청과 공감 세미나, 자존감 회복 세미나까지 꾸준히 참여하시면서 용기 있는 행보를 이어가셨다. 책을 읽고 나서 꼭 사진을 찍어 인증을 하시고, 블로그에 새 글을 발행하면 곧바로 '좋아요'를 눌러주시고 오래전 써놓았던 브런치 글도 꼼꼼히 읽어주셨다. 그야말로 애독자면서 모범생이시다. 6개월 가까이 프로그램을 하며 함께한 시간들이 참 기쁘고 좋았다. 오늘뿐만 아니라 그사이 맛난 거도 종종 사주시고 선물도 주시고 직접 만든 멸치볶음도 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틈만 나면 챙겨주셔서 큰언니처럼 든든하고 편안하다. 글을 쓰다 보니 그사이 받은 게 정말 많다는 걸 다시금 알게 된다. '호호호' 나는 복이 참 많다.




"언니, 다이어리에 적어둔 글 또 있으시죠?  틈날 때마다 언니가 살아온 삶을 글로 떠오르는 대로 적어 보세요. 너무 재미있고 값질 것 같아요. 그냥 묻히기 아까워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언니의 'K-시집살이'와 알토란 같은 인생 스토리를 조금은 알고 있기에 나는 신이 나서 글로 남기라고 말한다. 언니가 글을 쓰도록 성심성의껏 쪼아야겠다. 하하하!

  


지난 주말에 읽은 책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에 대한 아주 명쾌한 정의를 만났다. 

"사랑하는 사람과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참 행복한 날이다. 최근 들어서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 예전에는 행복을 크고 멋지고 거창한 것에서 찾으려 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동화 속 파랑새 이야기처럼 행복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다음번에는 내가 점심을 산다고 말해야겠다.

'언니~ 우리 다음에는 냉면 먹으러 가요. 제가 쏠게요!

성대랑 지연이도 함께 가자.'


행복한 하루를 선물해 준 명희 언니와 성대, 그리고 지연이에게 고마움을 표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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