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도 긴 시(時)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살다 보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많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은 밝고 긍정적인 곳이라 생각해왔던 나는, 사람 또한 마냥 그렇다고 생각했고 좋은 면만 바라보며 자랐다. 나의 그런 성격은 유전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자신들의 세상은 어둡고 힘들었어도 자식의 세상은 밝고 긍정적이기를 바라는 세상 모든 부모님처럼 나의 부모님이 나를 그렇게 키우기 위해 했던 수많은 노력의 영향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이 만들어준 안락하고 안전한 환경의 틀을 벗어나 세상 속에 나만의 영역과 존재를 확립해가며, 세상과 사람들의 악한 면을 조금씩 깨달아갔다. 모두가 나처럼 세상과 사람을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꽤나 아픈 충격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긍정이 그에게는 부정일 때가 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옳음이 그에게는 그름일 때가 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기쁨이 그에게는 슬픔일 때가 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선이 그에게는 악일 때가 있었다.
사실 모든 사람이 나와 다른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른 이들이 선사하는 괴리감은 일상의 파문으로 다가왔다. 빠르게 극복할 수 있는 파문도 있었지만, 종종 몇 날 며칠을 앓게 만드는 파문도 있었다. 그런 파문 속에서 나와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을 티 나지 않게 걸러가는 능력을 길러왔다. 의도적으로 멀리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레 연락과 왕래가 줄었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다.
사람들이 내게 선사하는 파문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 세상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사람들 때문이다. 내게 파문이 아니라 따스함을 건넸던 사람들. 일생에 단 한 번 스쳐도 내게 따스함을 안겨준 사람들. 그들이 남긴 유산은 마음속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나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뿌리내리게 한다.
오늘도 인간에 대한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살아간다. 때로는 절망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희망에 가까워지기도 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일이 마냥 마음대로 풀리지는 않아도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고 싶지는 않다. 그들이 준 희망 덕분에 내가 살아가고 있기에.
그래서 나 역시 때로는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게 따스함을 건넸던, 건네는, 건네줄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