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의 부력-2부
케이블카 매표소 앞에 섰다. 표지판의 초록 화살표가 ‘운행 중’으로 바뀌는 순간, 바람이 짧게 스쳤다. 어젯밤 만들었던 목록—바람막이, 손수건 두 장, 물 한 병, 작은 노트와 펜—을 속으로 다시 훑었다. 가방 지퍼가 ‘지지직’ 한 번, ‘딸깍’ 한 번, 매듭처럼 닫혔다. 창구 유리 위로 내 얼굴이 얇게 겹쳐 보였다. 유리와 얼굴 사이의 공기가 아주 얇아졌을 때, 숨을 들이마셨다.
표를 건네받자 종이가 손끝에 가볍게 부딪혔다. 얇은 종이의 반짝임. 내 뒤로 줄이 생겼다. 아이가 높이 올린 손가락으로 케이블을 가리키며 “저기!” 하고 외치는 소리가 머리 위를 지나갔다. 나는 난간을 따라 탑승장으로 걸었다. 철제 바퀴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소리가 바닥을 타고 울렸다. ‘철컥, 철컥’—일정한 박자. 어젯밤 내 방에서 들리던 엘리베이터의 ‘딩’과는 다른, 바깥의 리듬.
문이 열렸다. 반투명한 유리문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문턱에 발을 올리는 순간, 내가 올라탄 건 바닥이 아니라 공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아 손바닥을 배 위에 올렸다. 들숨 하나—날숨 셋. 날숨의 길이가 조금 더 길어졌다. 사방의 유리가 사각형으로 나를 감싸고, 바깥이 사방에서 들어왔다. 그 바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케이블카가 부드럽게 떠났다. 처음의 반 박자 떨림, 이후의 일정함. 산자락의 진한 녹색이 창 아래로 흘렀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멀어지고, 바퀴 소리와 케이블의 마찰음이 가까워졌다. 나는 가방에서 어젯밤의 편지를 꺼냈다. 접힌 자국이 어제보다 조금 더 진했다. 유리창 밑에 고정핀처럼 눌러 놓고, 첫 줄을 조용히 따라 읽었다.
은하에게.
생일 축하해—
글자들 곁에서 어젯밤 램프의 낮은 원이 다시 살아났다. 편지의 ‘앞산 전망대’라는 단어를 손끝으로 한 번 더 더듬었다. 괄호 속 문장—(눈은 꼭 감지 말고!)—이 케이블카 천장에 매달린 비상등처럼 얇게 빛났다.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눈꺼풀이 본능처럼 내려오려 했다. 나는 일부러 천천히 눈을 크게 떴다. 유리창 밖으로 바람이 옆으로 지나갔다. 지나가는 바람의 각도와 내 숨의 각도가 잠깐 포개졌다.
케이블카가 기둥을 지날 때마다 차체가 아주 짧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내 배 아래 얇은 공기를 흔들었다. 부력—그게 물이 아닌 공기에서도 가능할까. 물 위에 등을 맡기던 꿈속의 장면이 유리창 표면에 어렴풋이 겹쳤다. 낮은 산등성이를 넘어 도시의 윤곽이 드러났다. 낮빛과 저녁빛이 겹치는 시간. 건물의 네모들이 땅에 별처럼 박혀 반짝이고, 도로 위의 차들이 은빛 비늘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옆자리의 아이가 “엄마, 무서워” 하고 말하자, 곧 “괜찮아, 엄마가 옆에 있어”라는 대답이 이어졌다. 그 조용한 말이 유리 벽을 타고 내 쪽으로 왔다. 어릴 적, 처음 케이블카를 탔던 날이 떠올랐다. 놀이공원의 높은 탑, 노란 곤돌라, 손바닥에 남아 있던 쇠 난간의 냄새. 그때도 나는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배웠다. 무서워하다가 금방 울음이 터졌고, 엄마가 내 어깨를 끌어당겨 품으로 묻었다. “은하야, 눈을 떠봐. 아래가 다 초록이야.” 초록은 그때도 지금도 무서움의 반대편에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장면들을 감지 않은 눈에 담았다. 감지 않는다는 건 다 본다는 뜻이 아니라, 도망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편지를 접어 가방 옆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유리창에 이마를 살짝 가져갔다가 멈췄다. 유리는 차가웠고, 이마는 따뜻했다. 둘 사이에서 물이 아닌 공기의 얇은 막이 생겼다. 그 막 위로 내 숨이 김처럼 잠깐 앉았다가 사라졌다.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사라졌다는 사실이 오늘은 덜 아팠다. 사라짐과 나타남이 서로의 순서를 다투지 않는 시간속에 서있었다.
정상 가까이에서 케이블카가 속도를 늦췄다. 바퀴 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플랫폼의 안내음이 들렸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한 줄씩 나갔다. 유리문이 슬며시 열리며 ‘슥’ 하는 소리를 냈다. 발이 바닥에 닿았다—확실하게. 그 확실함이 안심을 주었다. 바닥의 요철이 신발 밑창에 문자처럼 찍혔다. 나는 그 문자를 읽는 척, 한 번 더 숨을 셌다.
전망대 난간으로 걸어가니 바람이 한 번 더 나를 통과하고 갔다. 대구의 얼굴이 펼쳐졌다. 격자무늬의 도로, 멀리 낮고도 높게 누워 있는 산들이 도시를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의 빛—골드와 푸른빛이 겹치는 시각. 그 위로 조명들이 차례로 깨어났다. 나는 난간에 손을 올렸다. 금속의 차가움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휴대폰을 열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를 내기 전에 엄마의 괄호가 떠올랐다. (눈은 꼭 감지 말고!) 나는 눈을 크게 뜨는 방법을 연습하듯 한번 더 숨을 정리했다. 전면 카메라로 돌려 화면에 내 얼굴을 올렸다가, 다시 후면 카메라로 바꿨다. 배경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말을 사진가였던 엄마에게 많이 들었다. 화면 안에 도시의 줄무늬와 하늘의 넓은 막이 함께 들어왔다. 나는 몸을 난간에서 반 발짝 떼고, 얼굴을 약간 옆으로 돌렸다. 눈꺼풀이 내려가려는 순간, 셋을 속으로 빨리 세었다. 하나—둘—셋. 셔터. ‘찰칵.’ 눈을 감지 않았다.
사진을 한 장 더 찍기 전에, 나는 전망대 한쪽에 큰 토끼 조형물을 보려고 난간 옆으로 조금 걸어 갔다. 오래전, 어두운 털모자와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그 옆에서 찍었던 사진. 엄마가 “은하, 토끼랑 토끼같이” 하고 웃던 목소리. 나는 그 사진 속 내가 손가락 두 개로 만든 브이 모양까지 떠올렸다. 브이는 귀처럼 보였고, 내 얼굴은 반쯤 울기 직전이었다. 그때 셔터가 눌렸고, 사진에는 울기 직전의 내가 남아 있었다.
토끼 옆에서 다시 한 장을 찍었다. 이번엔 브이 대신 손바닥을 배 위에 올리고 셀프 타이머를 눌렀다. 들숨 하나—날숨 셋. 셋의 끝에서 셔터가 스스로 눌렸다. 화면에 뜬 내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왠지 한 뼘 정도 엄마와 더 닮아진 것 같이서.
바람이 고개를 바꿨다. 도시의 불빛이 더 많아졌다. 어젯밤 베란다에서 이름 붙였던 ‘내 빛’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나는 여기서도 하나를 골랐다. 난간 모서리에 걸린 아주 작은, 거의 보이지 않는 은빛. 거기에도 빛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그 작은 빛을 다시 불렀다. 내 빛. 그 빛은 이름을 불러 주는 동안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나는 잠깐 작은 노트를 꺼냈다. 연필로 한 줄.
— 숙제 완료: 눈 감지 않고 사진 한 장.
글자를 적는 동안 숨이 고르게 길어졌다. 연필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밤공기에 조용히 섞였다. 노트를 덮고, 가방에 넣었다.
전망대 식당으로 발을 돌렸다. 유리문에 하얀 스티커 글씨로 영업시간이 적혀 있었다. 문을 밀자, 눈에 익은 음식점의 온도가 나를 맞았다. 따뜻한 공기, 묽은 육수 냄새, 가벼운 볶음 소스의 단내, 금속 젓가락과 그릇이 맞부딪히는 소리. 카운터 안에 서 있던 주인아저씨가 고개를 들었다. 검은 앞치마의 끈이 허리에 반듯하게 묶여 있었다.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나는 카운터 앞으로 다가갔다. 말이 울음으로 바뀌지 않게, 먼저 숨을 정리했다.
“저… 혹시, 2주쯤 전에 이곳에 다녀가신 여성 분이 편지를 맡기지 않으셨을까요.”
“편지요?”
주인은 잠깐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은하?”
내 이름이 그 사람 입에서 나온 순간, 종이 위의 잉크가 현실의 소리가 되는 것을 들었다.
“네.”
“그럼 맞네.”
주인의 얼굴이 아주 천천히 부드러워졌다.
“어머니께서 오셨어요. 얼굴이 환하셨지. 메뉴판은 한 번도 안 보시고, 먼저 부탁부터 하셨거든. ‘생일날 꼭 전해 주세요. 아이가 오면 이야기할 거예요’ 하시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2주 전에… 오셨군요.”
“그때도 저녁 빛이 예뻤어요. 어머니가 창가에 서서 한참을 내려다보시더라고. ‘여긴 우리 가족한테 중요한 곳이에요’ 하시면서.”
주인은 한 손으로 카운터 아래 서랍을 열었다. 서랍 속에서 크림색 봉투 하나가 나왔다. 왼쪽 위에 별 모양 스티커. 글씨는 내가 아는 그 필체였다. ‘은하에게’—이번에도 네 글자였다.
봉투를 보는 순간, 시간의 두께가 몸째로 옮겨 앉는 느낌이었다. 어젯밤의 봉투와 지금의 봉투가 서로의 모서리를 맞대고 있는 장면. 나는 손을 내밀었다. 주인이 조심스럽게 봉투를 내 손에 얹어 주었다. 종이의 감촉, 스티커의 얇은 볼록함, 모서리의 단단함. 모든 감각이 아주 선명했다.
“어머니가 부탁하셨어요. ‘아이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꼭 전해 주세요.’ 그리고 이 말도 덧붙이시더군요. ‘눈 감지 말고, 야경이랑 사진 한 장 찍으라고.’”
주인이 웃었다.
“찍었지요?”
“네.”
내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두 장이나.”
“잘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이 얘기도 하셨습니다.”
주인은 말끝을 조심스레 다듬었다.
“여기가, 부모님이 처음 데이트했던 곳이라고. 그래서 은하 씨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나는 난간 쪽을 돌아보았다. 눈에 익은 각도. 손바닥의 금속 냄새. 멀리서 ‘탁, 탁’ 야구장 같은 박자 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들렸다.
“맞아요. 어릴 때도 자주 왔어요.”
“추억 그 자체네요.”
주인은 카운터 위에 물 한 잔을 올려놓았다.
“천천히 드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잔 표면의 물방울이 손바닥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리 없는데, 들리는 것 같았다.
창가 자리에 앉아 봉투를 조심히 내려놓았다. 창밖의 야경이 유리창에 한 번 더 겹쳐졌다. 유리와 도시 사이에서 빛이 길게 늘어났다. 나는 봉투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렀다. 열지는 않았다. 어젯밤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아직은 아니다’가 필요했다. 편지를 열면, 문장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나는 또 한 번 깊게 흔들릴 것이다.
물을 반쯤 마시고, 노트를 다시 꺼내 짧게 적었다.
— 전망대 식당, 봉투 수령. 엄마, 2주 전 방문.
문장을 적자 종이 위의 선들이 마음의 선과 맞물렸다. 주인이 테이블에 물티슈를 새로 올려 놓으며 물었다.
“사진은 잘 나왔나요?”
“네. 눈 감지 말고 찍으라는 미션, 성공했어요.”
“하하, 다행이네요.”
주인은 창밖을 한 번 보았다.
“오늘 야경이 유난히 투명하네요. 가끔 이런 날이 있어요. 바람이 적당히 불고, 공기가 너무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날.”
“맞아요.”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오늘은… 빛의 모서리가 둥글어요.”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말 좋네요.”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갔다. ‘딩동’ 하는 문종 소리가 야경에 작은 점을 찍었다 지웠다. 나는 봉투에 시선을 다시 가져갔다. 별 스티커의 각도가 어젯밤의 것과 아주 조금 달랐다. 어젯밤의 별은 내 방 램프 아래에서 빛났고, 지금의 별은 식당 형광등 아래에서 빛났다. 빛은 장소마다 다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 대답 대신, 손수건을 한 장 꺼내 무릎 위에 놓았다. 오늘의 울음은 케이블카에서, 전망대 난간에서, 조금씩 나눠 흘렀다. 남은 건 문장을 읽을 때 흘러나올 것 뿐이었다.
“잠깐만요.”
주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은하 씨가 떡볶이 좋아한다고 하셨어요. 금방 해 드릴게요. 계산은 이미 그날 하고 가셨어요.”
팬에서 ‘치익’ 소리가 나고, 고추장이 풀리며 붉은 기운이 번졌다. 그릇이 내 앞에 놓였다. 첫 젓가락은 달큰했고, 곧 매운맛이 혀끝에서 목으로 올라왔다. 두어 입째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매운 기운을 핑계 삼아 잠깐 숨을 길게 내보냈다.
“많이 맵죠?”
주인이 재빨리 티슈를 내밀었다.
“네, 조금요.”
나는 웃으며 티슈를 받았다. 매운맛 뒤에 다른 뜨거움이 따라왔다. 티슈로 눈가를 한 번 찍고, 남은 떡 하나를 천천히 베어 물었다.
그릇에 붉은 자국이 얇게 남았다.
“잘 먹었습니다.”
내가 인사하자,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또 와요. 야경이랑 떡볶이는 항상 준비돼 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봉투를 가방 안쪽, 노트와 펜 사이에 조심히 넣었다. 지퍼를 올릴 때 다시 ‘지지직’ 소리가 났다. 문을 밀고 나가자, 바깥 공기가 다시 ‘슥’ 하고 내 볼을 지나갔다. 전망대 난간 쪽으로 한 번 더 걸어갔다. 야경은 조금 전과 같은 자리에서 조금 다르게 빛났다. 나는 도시의 한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가리킨 뒤, 손을 내려 배 위에 올렸다.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돌아가는 길, 토끼 조형물 옆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따라왔다.
“하나, 둘, 셋—웃어!”
누군가의 말에, 누군가의 웃음이 터졌다. 웃음은 금방 사라졌지만, 사라지는 동안만큼은 오래 남았다. 나는 그 소리를 뒤로 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플랫폼의 기계음이 다시 가까워졌다. 바퀴의 ‘철컥’이 일정한 박자로 뛰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다. 올라가기 전과 같은 자리, 같은 유리, 같은 흔들림. 나는 같은 자리에 몸을 두었다.
케이블카가 내리막을 타자 도시가 한 걸음 가까워졌다. 가까워지는 동안, 빛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았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사람 사는 소리가 커졌다. 집에 가면 책상 위 램프를 켜고, 봉투를 책상 가운데 올리고, 손바닥을 배 위에 올리고, 들숨 하나—날숨 셋. 그다음에. 그다음에—나는 다음 문장을 연필로 적을 것이다. ‘봉투를 연다.’
케이블카가 기둥을 지날 때마다 차체가 짧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에 맞춰 내 숨이 한 박자씩 길어졌다. 깊은 곳에서 아주 천천히 떠오르는 감정이 있었다. 떠오르는 동안,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감지 않는다는 건, 상처를 일부러 오래 들여다보겠다는 뜻이 아니라, 상처를 밀어내지 않겠다는 뜻. 유리가 밤을 가져다가 내 앞에 붙여 놓았다. 유리와 밤 사이의 얇은 공기가 오늘 나를 지켜 주었다.
탑승장에 도착하자 문이 열렸다. 문턱을 넘으며, 나는 한 번 더 대구의 밤을 보았다. 도시가 가까이서 아주 천천히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한 번 더 길게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