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의 부력-3부
“잘 지냈니?”
나는 고개만 끄덕였고, 곧 고개만 끄덕인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잘 지냈다는 말이 어느 부분에도 닿지 않는다는 걸 아는 얼굴로 이모가 미소를 조금 더 작게 고쳐 달았다.
“일단 앉자. 창가 쪽이 따뜻하더라.”
유리창 가까운 두 자리에 마주 앉았을 때, 못에서 불어온 바람의 흔들림이 유리 위로 얇게 번져 들어왔다. 잔물결이 창문에 붙은 필름 스트립처럼 떨리는 것이 보였다. 이모가 뜨거운 컵 두 개와 작은 접시 하나를 내려놓았다. 컵 표면에서 김이 아주 얌전히 올랐다.
“은하는 유자차. 수정이는 밀크티. 케이크는… 오늘은 파운드 대신 레몬 글레이즈가 맛있더라. 아주 조금 가져왔어. 달지 않아서 좋아할지 모르겠네.”
“너무 좋아요. 감사해요.”
나는 컵받침의 원을 한 번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멈추는 순간이 몇 번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컵에서 오른 김이 관자놀이까지 닿았다. 김이 닿는 위치가 바뀌면서 마음의 위치도 얕게 움직였다. 사소한 근황들을 이야기하며 말문을 열고서 얼마 안가 결국, 오랜 시간 멈추어 있던 문장이 부서지듯 흘러 나왔다.
“이모, 저… 실은 1년 동안 엄마를… 많이 원망했어요.”
그 말이 입술을 지나가자 유리창 밖 풍경이 잠깐 흐려졌다. 유자 향이 코 뒤로 올라갔고, 혀끝에 닿던 따뜻함이 그제야 온전히 느껴졌다. 나는 계속 말했다. 숨을 길게 준비하지는 않았고, 대신 단어의 등을 하나씩 밀어 주는 식으로 말을 이어 갔다.
“엄마가 남긴 편지를 찾다가 멈췄어요. 그만두자고 마음먹었어요. 엄마가 계속 미션을 남겨 두고 사라진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그걸 따라가면 갈수록 엄마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어진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그래서 일부러 모른 척했고, 어떤 날엔 미워도 했어요.”
컵과 컵이 아주 가볍게 부딪혀 ‘팅’ 하고 투명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울음의 첫마디와 겹쳤다. 눈물이 처음엔 조용히 눈두덩을 넘어 뺨으로 내려왔다. 나는 눈가를 거칠게 문지르지 않았고, 기름종이로 번진 부분을 가볍게 찍듯이 티슈로 눌렀다. 눌렀던 자리만큼만 하얘졌다. 이모는 놀라지 않았고, 말의 속도를 올리지도 않았다. 이모의 손이 다시 내 어깨에 얹혔다. 손바닥이 크게 느껴졌고, 손가락의 관절이 숨을 몰아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다독임이 일정하면 울음이 길을 찾는다는 걸, 몸이 먼저 기억해 냈다.
“그래. 그렇게 버텨왔구나.”
이모의 목소리는 ‘그래’에서 아주 잠깐 멈췄다가 ‘그렇게’로 옮겨갔다. 이해한다는 의미와 격려한다는 의미가 겹쳐 있었다.
“사실, 내가 네 마음을 완전히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 나는 친구를 떠나보낸 거고, 너는 엄마를 떠나보낸 거니까. 관계의 모양이 다르면, 고통의 모서리도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지더라. 그렇지만… 이모가 너보단 떠나보낸 사람이 많은만큼, 나도 배운 게 있어.”
이모가 컵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유리창 너머의 빛이 컵 표면을 한 바퀴 돌았다.
“슬퍼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슬퍼하면 돼. 억누르거나 일부러 외면하면, 호수였던 게 바다가 되더라. 어느 날 파도가 일어서면, 자기가 만든 바다가 자기를 삼켜 버리곤 해. 그러니까… 올 때는 그냥 오게 둬보렴. 빠질 만큼 빠져도 보고. 그러고 나면, 그건 재난이 아니라 풍경이 되더라. 비 온 다음날의 강처럼, 바람 든 저녁의 산능선처럼. 영원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슬픔이 전부는 아닌게 되는 거지.”
‘풍경’이라는 단어가 커튼 주름에 얹혀 조용히 늘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동작이 울음을 더 끌어올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뼈대가 하나 생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를 원망한 마음이 슬픔보다 더 크지는 않았지?”
“네. 그렇지는 않았어요.”
“그럼 됐다. 너는 자식이고, 나는 친구였잖아. 자식은 어쩌면 더 쉽게 원망할 수도 있어.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면 더 그렇지. 네가 그 마음을 가졌다고 해서 네 사랑이 작아지는 건 아니야. 그러니 너무 큰 죄책감 남겨두지 말자. 죄책감이라는 건… 슬픔이 입구를 찾지 못할 때 만들어지는 옆문이더라.”
이모의 말이 끝났을 때, 창틀 위에 매달린 작은 집게가 아주 가볍게 흔들렸다. 바깥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딩동’ 하고 한 번 울렸다가 멎었다. 카페 안 공기가 한번 바뀌었다가 돌아오는 데 몇 초가 걸렸다. 그 몇 초 사이에 내 울음이 가라앉았다.
“이모.”
나는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 오늘, 선생님에게 부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물에 뜨려면 힘을 빼야 하듯이 슬픔도 그렇다고요.”
“그래서 오늘 온거구나. 물 위로 떠올라 보려고?”
나는 대답 대신 레몬 글레이즈 조각을 아주 작게 베어 물었다. 신맛이 먼저 올라왔다가 단맛이 뒤늦게 따라왔다. 혀끝의 순서가 마음의 순서와 닮아 있었다. 신 것이 먼저, 단 것이 나중. 그리고 그 사이에 따뜻함이 있었고, 따뜻함이 순서를 잇고 있었다.
우리는 앨범을 꺼내 보지 않았다. 1년 전에 마지막 포켓에 넣었던 사진이 그 자리에 잘 있을 거라는 확신만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나와 엄마 역시 그런 관계로 남겠지. 서로의 자리에서 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 사이. 어쩌면 내가 엄마를 떠나보내기 전에 가졌던 믿음보다도 엄마가 나에게 가졌던 믿음이 더 올곧은 믿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이 이모는 카운터에서 조용히 포장 봉투를 하나 가져와 내 앞에 밀어 두었다.
“이건 작은 쿠키야. 가다가 허기지면 하나씩 꺼내 먹어. 그리고 네가 오늘 열지 않기로 한 그 봉투도, 지금처럼 쥐고 가면 돼. 미루는 건 도망이 아닐 때가 있어. 때로는… 준비의 다른 이름이더라.”
“네, 이모. 고마워요.”
나는 봉투를 손바닥에 제대로 올려놓았다. 딱 맞게 들어오지 않는 크기가 오히려 좋았다. 버스에서, 난간에서, 혹은 방의 램프 아래에서 다시 올려놓을 자리들이 떠올랐다.
카페를 나설 때 이모는 문까지 배웅 나왔다. 유리문이 열리자 ‘딩동’ 소리가 발목 근처를 한 바퀴 돌고 위로 올라갔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뒤돌아 말했다.
“이모, 또 올게요.”
“그래, 잘 가.”
못으로 나가자 바람에서 금속 냄새와 젖은 돌 냄새가 났다. 난간이 손바닥의 체온을 조금씩 빼앗아 갔다. 오리배가 멀리 천천히 방향을 틀었고, 잔물결이 길게 한쪽으로 쏠렸다. 오후의 빛이 물 위에 점점이 내려앉았다. 수정이는 내 걸음과 쉽게 박자를 맞추었다. 발뒤꿈치가 바닥을 치는 소리의 길이를 서로 몰랐지만, 금방 알게 되었다. 오래된 친구들의 방법이었다.
“뽀미 기억나?”
수정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뽀미? 너네 집 강아지였지?”
나는 수정이네 집에 갔을때 봤던 하얀 강아지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 애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던 게 내가 겪은 내 인생 속 소중한 존재의 첫 죽음이었어. 사람이 아니었지만, 내겐 사람과 같았던 아이니까. 뽀미가 죽고나서 진짜 매일 울었지. 사람이 이렇게 매일 울 수도 있구나하는 걸 깨달았어.”
수정이의 목소리는 감정적이지 않았다. 억지로 앳된 목소리를 만들지도 않았다. 평소와 같은 목소리였는데, 평소보다 바람을 조금 더 태웠다.
“처음엔 아무것도 못 봤어. 집 안 물그릇만 봐도 울었고, 산책 가던 길 신호등만 봐도 울었거든.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상해졌어. 슬픔이 사라진 게 아니라, 조금 뒤로 물러나고, 같이 있었던 것들이 앞으로 걸어 나오는 느낌이었어. 같이 뛰던 골목, 비 오던 날 털 말리던 수건 냄새, 뽀송해지면 몸을 미는 버릇… 그런 것들. 그게 그 아이가 내게 남긴 위로였어.”
우리는 난간에서 손을 떼고, 벤치로 옮겨 앉았다. 나무 벤치가 앉는 무게를 받아 내며 아주 낮게 ‘삐걱’ 하는 소리를 냈다. 못가의 갈대가 바람에 따라 고개를 같이 숙였다 들었다. 수정은 말을 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 앞에서 되게 조심스러워졌어. 말을 고르느라 오래 걸렸고, 어떤 날은 말하지 않는 걸 택했지. 그러다 보니까…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계속 무언가를 잃으면서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잘하면 얻고, 못하면 잃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살아 있는 동안 서서히 놓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거. 그래서 잃음은 당연하기도 한데, 당연해서 더 아프더라.”
바람이 말을 한 번 끊었고, 물결이 우리가 쉬는 시간을 살짝 메웠다.
“근데 당연하다고 해서, 견디는 법까지 당연하게 알지는 못하더라. 시간, 그게 필요해. 너한텐 엄마라는 존재의 소멸이 너무 컸잖아. 그래서 1년 넘게 그 사실에서 잠깐 멀어져 있었던 게, 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온도를 맞추는 시간같은 것이랄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못 위로 햇빛이 잘게 부서졌다. 첫사랑이라는 단어와, P.S.라는 두 글자와, 봉투의 별 스티커가 같은 방향으로 잠깐 기울었다. 수정의 얼굴은 단단하지 않았고, 느슨하지도 않았다. 그 사이가 있었다.
“오늘 선생님이 그 얘기 해 주셨잖아 부력에 대하여.”
수정이 웃었다.
“응. 힘을 빼는 법.”
내 말은 평소보다 반 톤 낮았고, 그 낮음이 어색하지 않았다.
“이상했어. 힘을 빼라는 말이… 노력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거든. 오히려 제대로 노력하려면 힘을 빼야 한다는 말로 들렸어. 너한테 말하고 나니까 덜 낯설어.”
“나도 선생님의 생각에 크게 공감해.”
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감정이 좀 정리되면, 다시 기억을 더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난 그랬거든. 뽀미 얘기 다시 꺼내면서 덜 울었고, 울어도 오래 울지 않았어. 너도… 언젠가 엄마 얘기 더 많이, 더 길게 해도 괜찮겠지. 오늘이 그날일 필요는 없지만.”
나는 봉투를 살짝 들어 보였다. 크림색 면이 잠깐 빛을 받았다가, 금방 손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열지 않은 상태에서도, 봉투는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물 위로 떠오른 검은 실루엣처럼, 아직 무엇인지 모르는데 존재감을 가진 것. 나는 그 모양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을 내려 무릎 위에 놓았다.
“열어 달라고 강요하지 않을게.”
수정이 말했다.
“대신… 네가 준비됐다고 느껴지면, 그때 내가 옆에 있을게. 네가 혼자 있고 싶으면, 그땐 멀리 있을게.”
“고마워.”
우리는 말없이 못을 한 바퀴 더 돌았다. 잔물결의 방향이 중간에 바뀌었고, 그때마다 물비늘의 빛이 길이를 달리했다. 아이들이 지나가며 카페 간판 ‘PHOTO’를 손가락으로 따라 그렸다. 누군가의 웃음이 한 번 터졌다가 곧 사라졌다. 사라지는 동안만큼은 오래 남았다. 나는 그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집에 가자.”
수정이가 말했다.
우리는 같은 정류장 앞에서 멈췄다. 전광판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숫자가 줄수록 마음의 어떤 칸이 천천히 비워졌다.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워 둔 것. 나는 1년 전에 이해했던 것보다, 지금 그 말의 폭이 더 크게 느껴졌다.
“다시 한번 더 생일 축하해.”
수정이가 마지막으로 말했고, 나는 웃었다. 축하는 여전히 복잡한 단어였지만, 오늘은 복잡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고마워. 같이 걸어줘서.”
수정이가 탈 버스가 먼저 도착했고, 수정이가 올라탔다. 창문 너머로 수정이는 손을 한 번 흔들다가 멈췄다. 바퀴가 움직이면서 금속 소리가 아주 낮게 길게 이어졌다. 그 소리가 다 사라지기도 전에 내 버스가 들어왔다. 계단을 딛자 발바닥이 잠깐 뜨거워졌다가 금방 식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머니 속 봉투가 걸음에 맞춰 아주 조금 흔들렸다. 흔들림이 박자를 만들었다. 현관문이 ‘철컥’ 하고 열렸고, 집 안 공기가 나와 부딪히며 부서졌다. 불을 켰을 때 램프의 낮은 원이 책상 위에 내려앉았다. 나는 봉투를 그 원의 가운데에 올려두었다. 별 스티커의 은빛이 램프의 색온도 속에서 더 낮게 빛났다.
아빠 방 앞에서 움직임이 한 번 멈췄다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 미역국의 냄새가 여전히 부엌 한쪽에 남아 있었다.
책상 의자에 앉아서 봉투의 가장자리를 한 번 더 쓸었다. 스티커를 떼지는 않았다. 떼지 않은 채로도, 오늘은 무언가를 열었다고 생각했다. ‘부력’이라는 단어가 마음 안쪽으로 들어왔다. 힘을 풀면 물이 들어 올렸고, 말하지 않으면 눈빛이 들어 올렸고, 울음을 막지 않으면 사람의 온기가 들어 올렸다. 그렇게 알았다. 오늘 하루가 내 몸을, 내 마음을 아주 조금 들어 올렸다는 것을. 노트를 펴서 한 줄을 적었다.
— 오늘은, 슬픔에 기대었다.
마침표를 아주 작게 찍었다. 점 하나가 종이 위에서 오래 반짝였다가 어둠으로 들어갔다. 램프를 껐을 때 방이 어두워졌고, 완전히는 아니었다. 창틀 위에 얇은 빛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빛을 부르지 않았고, 이름 붙이지도 않았다. 이름이 없을 때 더 오래 머무는 것들이 있다는 걸, 오늘 배웠다.
침대에 누웠을 때, 못 위의 물결이 눈꺼풀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 물결은 어제의 것이 아니었고, 내일의 것도 아니었다. 오늘의 물결이었다. 오늘의 물결 위에서 내 몸이 아주 천천히 떠올랐다. 가라앉지 않았다. 스스로 떠오르지 않았고, 떠오르게 해 주는 것들에 몸을 맡겼다.
다음 날이 오기 전, 마음은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자리에는 여백이 있었고, 여백은 비어 있지 않았다. 비워 둔 상태였다. 거기에 언젠가 또 다른 문장 하나가 들어올 날이 있을 거라고, 나는 믿었다. 오늘만큼은, 믿어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