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의 부력-3부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저녁의 집은 평소와 같았다. 현관문이 ‘철컥’ 하고 닫히자 복도에 가벼운 메아리가 한 번 구부러져 돌아왔고, 신발이 제자리를 찾는 동안 거실의 공기가 얇게 섞였다. 부엌 싱크대엔 아빠가 아침에 데워 둔 국물 냄새가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식탁 위 젓가락은 변함없이 내 쪽으로 곧게 놓여 있었다. 아빠는 물컵을 씻어 말려 두고, 쓰레기봉투의 입구를 반듯하게 묶어 현관 옆에 세워 두곤 했다. 지난 1년 내내 그랬듯이.
그 평범해 보이는 저녁들이 사실은 아빠의 노력으로 유지된 것임을, 나는 오늘에서야 또렷하게 떠올렸다. 냉장고에 붙은 장보기 메모의 단정한 글씨, 빨래 바구니가 비는 간격을 어김없이 맞추던 손, 재활용 수거일마다 현관 앞에 미리 내놓인 상자들, 생일에 어김없이 올라온 미역국의 김—그 모든 것이 ‘괜찮다’는 연기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우리가 가라앉지 않도록 집의 체온을 붙잡아 둔 아빠만의 방식이었다. 나는 견디려 애쓰느라 몸을 굳혔고, 그래서 더 깊이 잠길 뻔했지만, 아빠는 나를 위해 더 빨리 힘을 풀고 물에 등을 먼저 내어준 사람이었다. 슬픔이 덜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한 사람은 먼저 떠 있어야 둘 다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제 선생님이 말해 준 슬픔을 견디는 ‘부력’이 서랍 속에서 꺼낸 말처럼 방 안에 걸려 있었다. 억지로 들어 올리는 힘이 아니라, 힘을 덜어낼 때 저절로 생기는 힘. 아빠는 그 힘을 나보다 먼저 믿었고, 그래서 나보다 먼저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 램프를 켰다. 낮은 원이 책상 위에 내려앉고, 종이 모서리가 그 빛에 맞춰 각을 잡았다. 서랍을 열자 크림색 봉투들이 얌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 위에 별 스티커—마른 잉크 위 시간들이 그 위로 겹쳐 있었다. 나는 손바닥을 조금 펼쳐, 지난 1년을 건너온 저녁의 무게를 조용히 덜어 놓고, 편지를 읽을 준비를 했다.
서랍에서 봉투들을 꺼냈다. 별 스티커가 붙은 봉투 네 장. 작년의 기억들을 순서대로 묶어 둔 것들이었다. 종이의 촉감이 달랐고, 스티커의 각도도 조금씩 달랐다. 그리고 오늘, 교무실 서랍에서 1년을 자고 나온 또 하나의 봉투가 있었다.“작년 생일 전날에 어머니가 맡기고 가셨다.”—라는 선생님의 말이 종이와 함께 내 쪽으로 넘어왔다.
먼저, 첫 번째 편지를 펼쳤다. 크림색이 램프빛에서 더 따뜻게 보였다. 별 스티커의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살짝 밀어 올렸던 그 밤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1년이란 시간이 정확히 놓여 있었다. 종이가 내는 마른 소리가 방 안 공기를 가볍게 흔들었다. 글씨는 여전히 둥글고 단정했고, 급할 때 치켜드는 ㅅ의 끝은 엄마의 손끝을 떠올리게 했다.
첫 편지는 분명히 길잡이였다. 떠나간 엄마의 마음과 슬픔으로 물든 현실 사이를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간격으로 그려 준 지도. 나는 종이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가 천천히 거리를 두었다. 글자의 모서리에서 아주 약하게 잉크 냄새가 났다. ‘다음 편지’라는 단어가 여전히 어제처럼 반짝였고, 그 반짝임이 내 눈꺼풀 안쪽까지 들어왔다.
두 번째 편지를 펼쳤다. 저녁의 앞산 전망대 풍경, 엄마와 아빠의 추억, 그리고 식당 사장님의 따뜻했던 온기까지. 엄마가 건네준 편지는 내게 새로운 추억을 선사해주었다. 물론 거기에 엄마는 없지만.
세 번째 편지도 다시 열어보았다. 수성못의 물빛과 카페 유리창의 흔들림이 글자 사이에 묻어 있었다. 그날의 온도를 떠올리자, 컵과 컵이 맞부딪히던 작은 금속 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계단참의 먼지, 창틀의 빛, 문턱을 넘는 그림자—엄마가 오래 사랑하던 것들. 그러고 보니 세 번째 편지의 여백에는 늘 ‘먼저 물어보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깃들어 있었다. 허락을 구하고, 질문을 건네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 그날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에서, 그 믿음이 한 번 더 자랐다는 생각을 했다.
네 번째 편지는 아주 조용히 내게로 왔었다. 아빠가 들려운 엄마와의 이야기 끝에 전해진 편지. 그날의 나는 덜컹거리는 마음을 억누르느라 힘겨웠다. 네 번째 편지는 유난히 문장의 호흡이 길었다. 읽다가 중간에 한 번 램프를 낮추고, 다시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 줄, 내가 읽지 않고 남겨둔 P.S.가 있었다.
P.S. 다음 편지는 ‘매일 가는 곳’의 ‘매일 보는 사람’에게 있어.
(엄마의 고민: 누구일까? 급식실의 아주머니일까, 담임 선생님일까, 경비실의 할아버지일까? 엄마는 그래도, 학교가 좋겠다 싶었어.)
‘매일’이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표정을 가질 수 있는지 엄마를 잃은 후로 매일 배웠다. 그리고 오늘 아침, 복도에서 만난 선생님이 조심스레 건넨 봉투를 받아들며, 1년 전의 문장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했다. 매일 가는 곳, 매일 보는 사람—학교, 그리고 선생님. 퍼즐은 그때 이미 맞춰져 있었고, 내가 맞추려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편지. 1년이란 시간을 건너온 그 편지를 어떻게 해야할지 이틀 동안 많이 고민했다. 부력. 나는 슬픔의 부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마주해야 한다면 흠뻑 젖어보자고. 엄마를 원망했던 만큼, 아니 엄마를 그리워했던 만큼. 조심스레 열어젖힌 봉투 속 종이의 결은 왠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오래 서랍 속에 있었기 때문일까, 잉크가 더 차분하게 눌려 있었다. 엄마의 필체는 여전히 내 이름을 부드럽게 당겨 부르고 있었다.
은하에게.
학교 생활은 어떠니? 수성구의 여고라 많이 힘들지? (엄마가 고등학교 다니던 때보다 더 바쁘고 힘들지 않을까 싶네.) 너를 그 학교에 보내놓고 엄마가 멀리 출장을 오게 되어 마음이 많이 쓰인다. 그래도 네가 잘 이겨낼 거라는 믿음이 있어. 너는 네 속도를 아는 아이니까. (엄마의 관찰력은 아직 살아 있지!)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정말 솔직히 말해서—엄마는 쉽게 하지는 못 하겠어. 부모라는 자리는 참 이상해서, 네가 시험을 잘 보면 같이 기뻐지고, 잘 못쳐서 힘들어 하면 내 탓인가 하고 괜히 마음을 졸이게 되더라. 그런데 엄마가 살아 보니까, 성적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더라. (전혀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지만!) 진짜 중요한 건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그것을 위해 진심을 다해 노력하는 자세였어. 그 ‘자세’가 사람을 멀리 데려가더라.
아빠도 그렇지만 엄마도, 네 성적의 높고 낮음 자체는 너라는 사람을 정의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네가 누구인가는 네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아끼고, 무엇을 위해 시간을 기꺼이 쓰는지로 더 선명해지니까. 대신 노력하는 태도, 열정을 다하는 과정은 아주, 아주 중요해. 그러니까 시험 성적표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날에도, 성적표 속 숫자들이 너를 괴롭히는 날에도, 네 태도만큼은 네 편이 되어 주었으면 해.
엄마가 미국(정확히는 비행기와 호텔, 그리고 회의실의 삼각형 사이) 어딘가에 있어 네 옆에서 매일의 작은 힘듦을 토닥여 주지 못하는 게 참 슬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엄마 마음의 다른 한 귀퉁이는 설렘으로 가득해. 네가 꿈을 찾고,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가고, 멋진 어른이 되어 갈 내일이 그려지기 때문이야.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돈만 많이 버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 (엄마가 너무 교과서 같지? 그래도 진심!)
네가 오늘도 네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그것 하나면, 엄마는 다 괜찮다. 네가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니까! (넘어진 김에 주운 게 더 소중한 날도 있단다.)
언제나 사랑한다, 은하야.
엄마가.
P.S. 다음 편지는 네가 밤마다 켜는 작은 별 아래에서 기다린다. (힌트 끝! ^^)
읽는 동안, 램프의 원이 종이 위에서 조금씩 옮겨 갔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이 오늘따라 더 넓어 보였고, 그 넓음이 숨 쉬는 자리가 되어 주었다. ‘돈만 많이 버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그 문장을 읽을 때, 내 안쪽에서 아주 얇고 오래된 금속이 ‘딸칵’ 하고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모든 편지를 책상 위에 나란히 두었다. 종이의 크기가 같았고, 스티커의 반짝임이 각자 다른 길로 번졌다. 그 위에 오늘 받은 편지를 올려서 다섯 장이 겹치게 했다. 종이가 포개지는 무게가 손바닥으로 내려왔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다섯 장을 가만히 쓰다듬는 동안, 지난 1년의 장면들이 거꾸로 재생되다가 멈추었다. 장례식장 냄새, 밤마다 들려오던 도어록의 소리, 아빠가 정리한 젓가락의 모습, 수정이의 길지도 짧지고 않은 보폭, 카페 유리문이 열릴 때 발목을 감돌던 종소리. 그 모든 것이 한 군데로 모였다가, 물 위의 무늬처럼 천천히 풀렸다.
엄마의 편지는 내가 떠오를 시간을 주었다. 물 위에 등을 내어 줄 때까지, 말 걸지 않고 곁에 있었다. 오늘 하루가 내 몸을 아주 조금 들어 올렸고, 그 사실을 이제야 인정해도 될 것 같았다. 인정한다고 해서 금방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만, 인정하는 순간에만 열리는 문들이 분명히 있었다.
나는 손을 떼고 창문을 열었다. 늦은 저녁의 공기가 얇게 들어왔고, 커튼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멀리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낮게 깔렸다가 사라졌다. 그 사라짐이 내가 붙잡을 수 없는 것들 전체를 대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라지는 것을 붙잡지 않았고, 사라졌다는 사실만 기억했다—작년 어느 밤에 마음속에 적어 둔 문장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책상 앞 의자를 조금 뒤로 밀었다. 바닥과 의자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나는 공책을 펴고 오늘 날짜를 썼다. 글씨가 어른거리는 것을 한 번 멈추고, 다시 또박또박 적었다.
— 슬픔의 물결에 등판을 조금 더 내어 주었다.
—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 엄마의 문장들이 내 숨을 고르게 했다.
— 성적은 전부가 아니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것 또한 아니다. 태도. 그것이 세상 속 내 자리를 조금 넓혀 줄 것이다.
—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어떻게? 누구에게? 무엇으로?)
나는 펜을 내려놓고, 책 한 권을 꺼내 옆에 두었다. 내일 아침에 20쪽을 읽자는 마음만 결정해 두었다. 결심은 무겁지 않아야 오래 갔다.
방 밖에서 아빠가 거실을 한 번 지나는 발소리가 들렸다. 서랍을 여닫는 소리, 물컵이 싱크대에 닿는 소리, 아주 얇은 기침.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은 노랗고, 그 노란빛이 바닥을 얇게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에서 아주 조용히 말을 걸었다.
“나 괜찮았어. 오늘은.”
목 안쪽에서 그 말이 반사되어 돌아왔다. 괜찮다는 말은 완전한 진실이 아니었지만 완전한 거짓도 아니었다. 오늘만큼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책상에 포개 둔 편지를 다시 한 번 정리했다. 다섯 장의 모서리를 정확히 맞추는 대신, 아주 조금씩 어긋나게 두었다. 어긋남이 오히려 균형을 만든다는 사실을, 나는 수성못 난간 앞에서 이미 배웠었다. 그 배움이 편지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모서리의 어긋남에서 작은 그림자가 생겼고, 그 그림자가 다섯 장 전체를 하나의 물체처럼 보이게 했다. 엄마와 나. 우리 사이도 그렇게 되겠지. 더 이상 함께일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 어긋남이 내가 세상 속에서 더욱 균형 잡힌 사람이 되도록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날들이 훨씬 많았다. 노트를 펴고도 앉아 있지 못했고, 앉아 있어도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책장을 넘기다 울음을 삼키느라 다음 장을 못 넘기던 밤, 두 페이지를 붙잡고 한 줄도 못 읽던 새벽, 모의고사 OMR 카드의 동그라미들이 물에 젖은 종이처럼 일그러져 보이던 시간. 그 모든 날이 부끄럽지 않았다. 아니, 부끄러웠지만 부끄러움이 내 전부는 아니었다. 슬펐으니까. 나는 슬픔 안에서 오래 잠겨 있었으니까. 물은 차가웠지만, 그 물 위로 떠오르는 법을 나는 조금 늦게 배웠고, 늦게 배운 만큼 잊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편지의 한 문장을 다시 읽었다.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돈만 많이 버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도움이라는 단어를 오늘만의, 내 방식으로 정의해 보았다.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도움—수업 시간에 옆자리 아이의 교과서 모서리를 맞춰 주는 일, 급식 줄에서 뒤에 선 아이가 쟁반을 놓을 자리 한 뼘을 내어 주는 일, 모르는 문제를 함께 앉아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일. 거창하지 않은 것부터 시작해도 괜찮았다. 물 위에 누울 때도 처음부터 깊은 수영장을 택하지 않듯이.
손을 뒤집어 편지의 별 스티커를 다시 쓸었다. 별은 그 자체로 빛나지 않았지만 빛을 잘 받아 반짝였다. 잠깐 반짝인 것들이 모여 내일을 밝힌다는 걸 믿어 보기로 했다.
나는 봉투들을 다시 케이스에 넣었다. 케이스를 책상 오른쪽, 램프 빛이 닿는 자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두었다. 자주 보되, 너무 가까이 두지는 않기로 했다. 가까워야 좋은 것과 멀어야 좋은 것이 있는데, ‘조금 벗어난 자리’가 좋았다. 비워 둔 것과 비어 있는 것의 차이를 되새기며, 케이스와 램프 사이에 작게 빈 공간을 남겨 두었다.
창밖에 바람이 한 번 크게 지나가고, 응달 쪽 나뭇잎들이 같은 방향으로 몸을 기울였다가 돌아왔다. 나는 스탠드를 낮추고 침대에 앉았다. 오늘 교실에서 들었던 선생님의 말 중 한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힘을 그만 줘도, 어쩌면 슬픔이 네 몸을 들어 올려 줄지 몰라.” 그 문장이 오늘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이 서서히 실감났다. 울음을 ‘안’ 터뜨린 게 아니라, 울음을 ‘터뜨리고도’ 가라앉지 않았다는 사실이—그 차이가 내일을 조금 덜 두렵게 만들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다물었다. ‘엄마’라고 소리내 부르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에 아주 또렷이 썼다. 엄마, 나 이제 다시 조금씩 공부해 볼게요. 문장의 끝에 작은 점을 찍듯 숨을 한번 길게 내쉬었다. ‘조금씩’이라는 단어가 오늘의 나와 가장 잘 맞았고, 그래서 그 단어를 선택했다. 조금씩은, 오래가니까.
불을 끄기 전, 가방에서 내일 첫 교시 교과서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포스트잇 하나에 세 줄을 적었다.
1) 어제 못 푼 문제 두 개 풀기
2) 오늘 받은 편지에서 좋았던 문장 베껴 쓰기
3) 20쪽 읽기.
메모를 교과서 첫 장에 붙였더니, 내일의 내가 돌아와 앉을 자리가 조금 더 분명해졌다. 램프를 끄자 방이 어두워졌지만 완전히는 아니었다. 창틀 위에 아주 얇은 빛이 남아 있었다. 창 유리의 모서리에서 들어온 그 빛이 커튼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누웠다. 그 빛의 끝에 놓인 스탠드를 뒤집어 보았다. 엄마가 남긴 추신 속 힌트를 따라 다음 편지를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여섯 번째 편지는 이틀 뒤에 열어보기로 했다.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엄마 생각을 했다. 지금껏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했던 생각.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미국이 아니라, 천국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엄마. 어쩌면 그곳의 별은 더 크고 가까울지도 모른다. 엄마가 그 별 사이에서 내 이름을 한 번 불렀을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상상은 소리를 가지지 않았지만, 내게 충분히 닿았다. ‘엄마, 나 잘 살아갈게요.’ 그 말을 끝내고,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바깥의 바람이 유리를 한 번 쓰다듬었고, 방 안의 어둠은 가라앉지 않았다. 대신, 떠 있었다. 오늘 그 어둠 위에 등을 놓고, 잠깐 더,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