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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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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May 09. 2016

목차 | #0. 아무것도 아니었던 이야기

2014.08.27.~2015.02.16. (만 22세 ~ 만 23세)

목차


#0. 아무것도 아니었던 이야기

#1. 이렇게 죽는 건가 

      [2014.10.03. ~ 2014.10.14. 탄자니아]

#2. 뜻밖의 재회

      [2014.08.27. ~ 2014.09.04. 남아프리카 공화국 | 나미비아]

#3. 남쪽을 향해 달리는 차

      [2014.09.04. ~ 2014.09.13. 나미비아]

#4. 모닥불과 함께 저무는 밤

      [2014.09.13. ~ 2014.09.20. 나미비아 | 잠비아]

#5. 우아하지 않은 럭셔리 여행

      [2014.09.20. ~ 2014.09.26. 잠비아 | 탄자니아]

#6. 멜론 빛 바다와 돈으로 사는 친절

      [2014.09.26. ~ 2014.10.03. 탄자니아]

#7. 목표의 전환과 위험한 환영식

      [2014.10.14. ~ 2014.10.26. 탄자니아 | 케냐 | 에티오피아]

#8. 왕국의 유적

      [2014.10.27. ~ 2014.11.15. 에티오피아]

#9. 사막국가 탈출기

      [2014.11.15. ~ 2014.11.22. 에티오피아 | 수단 | 이집트]

#10. 찬란한 과거, 빛바랜 영광

      [2014.11.22. ~ 2014.11.29. 이집트]

#11. 푸른 바다와 붉은 도시

      [2014.11.29. ~ 2014.12.07. 이집트 | 요르단 | 이스라엘]

#12. 두 개의 세계와 파란 유람선

      [2014.12.07. ~ 2014.12.14. 이스라엘 | 그리스]

#13. 온기를 품은 순백의 땅

      [2014.12.14. ~ 2014.12.22. 그리스 | 터키]

#14. 동화의 나라

      [2014.12.23. ~ 2015.01.03. 터키 | 조지아]

#15. 사라진 계획과 충동적 의사결정의 산물

      [2015.01.03. ~ 2015.01.14. 터키 | 불가리아 | 마케도니아 | 알바니아 | 코소보 | 몬테네그로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크로아티아]

#16. 아름답지 않은 아름다움

      [2015.01.14. ~ 2015.01.20. 크로아티아 | 슬로베니아 | 헝가리]

#17. 오르지 못할 담

      [2015.01.21. ~ 2015.01.28. 헝가리 | 세르비아 | 루마니아 | 우크라이나 | 폴란드]

#18. 차가운 부두엔 흰 눈이 쌓이고

      [2015.01.28. ~ 2015.02.04. 폴란드 | 리투아니아 | 라트비아 | 에스토니아]

#19. 노래하는 새

      [2015.02.04. ~ 2015.02.16. 에스토니아 | 러시아 | 대한민국]

##. 무형의 꽃


무형의 꽃 전체 지도




#0. 아무것도 아니었던 이야기



 이 이야기의 시작은 2012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만 20년 생애의 첫 휴학을 하고 군 복무를 하던 한 이등병은 까마득히 먼 제대를 앞두고 벌써부터 그 이후의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유치원을 들어간 이후로 단 한 번도 의무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던 그였다. 주 5일 혹은 6일씩 등원 혹은 등교를 해야 했고, 매일 반복되는 숙제를 제출해야 했으며, 고등학교 때는 주 1회 혹은 월 2회 씩만 집에 갈 수 있는 기숙사 생활을 하였고, 그나마 있었던 백수 기간인 '수능 이후 3개월' 은 집에서 허망하게 보내고 말았다. 아마 이후도 마찬가지일 예정이었다. 제대 후 복학을 한 그는 남은 2년의 대학 생활을 성실히 수행하고 그 이후의 대학원 생활을 종종 털어놓을 넋두리에 묻어가며 마친 뒤, 어느 곳에 취직해 어느 인생을 지내갈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지내보기로 결심했다. 어느 거창한 이유도 없었고, 어느 거대한 목적도 없었다. 어른이란 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자유를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4년 2월, 국가의 부름에서 벗어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그는 여권과 비자, 귀국 편이 없는 편도 비행기 표를 가지고 인천 공항에서 이륙했다. 이후 반년 간 그는 호주의 서부에서 돈을 벌고, 맥주를 마시고, 친구를 사귀고, 휴일을 즐기며 자유에 필요한 비용을 위한 노동에 충실하며 행복하게 살았더랬다.

 그리하여 2014년 8월 24일 일요일, 그는 호주에서 함께 살던 한국인 친구이자 고등학교 동창의 배웅을 받으며 퍼스 국제공항을 떠났다. 그는 싱가포르를 경유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도착한 이후 30개국을 거쳐 2015년 2월 16일 월요일, 일탈을 시작했던 장소로 돌아와 퍼스에서 자신을 배웅했던 바로 그 친구를 만나 명동에서 돼지갈비를 구워 먹었다.

 참 짧은 일탈이었다. 결국 그의 백수 생활은 6개월이 채 안 되어 막을 내렸다. 혹자는 여행을 다녀오면 조금 더 어른스러워지며, 넓은 안목을 기르게 되고, 책임감이 강해진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는 조금 더 유치해졌고, 어리광을 부리게 되었으며, 충동적인 사람이 된 모양이다. 그는 종종 해야 할 과제를 내팽개쳐 둔 채, 인근 공원이나 지역으로 홀연히 사라지기도 하고, 다음 날이나 당일 오후에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사기도 하며 사고 싶은 것이 눈에 띄면 비상금을 털어 넣기도 한다. 참 다행인 것은 돌아오는 표를 함께 산다는 것과 몇 달이 지나서 비상금을 결국 다시 채워놓는다는 점이겠지만, 그렇다고 그의 충동적 의사결정 빈도가 수그러들 기미는 한동안 보이지 않을 것 같다.

 한참이나 지나간 케케묵은 이야기를 이제 와서 꺼내는 합당한 원인은 그 여행을 떠났던 이유만큼이나 없다. 그저 겨울이 오면 귤이 먹고 싶고, 비가 오면 전이 먹고 싶은, 그런 정도의 수준 이리라. 언젠가는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제 하나씩 꺼내 놓아도 좋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별생각 없이 출발했던 백수 생활에서 가장 깊게 고찰한 것은 나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아무런 의무에도 포함되지 않은 상태일 때의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았다는 이야기다. 내가 없어도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학생들이 가득했고, 내가 없어도 내가 다니던 직장은 별 탈 없이 움직였으며, 내가 없어도 나의 친구와 가족은 자신의 삶을 평소와 같이 영위하였다. 종종 눈을 떴을 때, 내가 사라져도 이 세상에 민들레 씨앗만큼의 영향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공허함이 나를 품었고, 때문에 나는 의도적으로 나흘 이상 세상과 연락을 끊는 짓은 하지 못 했다.

 즉, 이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이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였다. 나의 의미는 결과의 산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여행이 길어짐에 따라 나는 속박에서 자유로움을 느껴가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 공허함은 메꿔졌고 부모님과의 통화, 친구들과의 연락, 지인들에게 보내는 사진 몇 조각과 그들의 일상에 있는 것 같은 메신저에서의 이야기들이 즐거웠다. 더 이상 이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이야기이나, 지금은 이야기하고 싶은 어떠한 이야기가 되었다. 민들레 씨앗이 싹을 품고, 너른 벌판을 노랗게 장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다. 나미비아에서 탔던 참으로 빈약하기 짝이 없는 야간열차 이야기나 그럼에도 나미비아를 30개국 중 최고의 여행국가로 생각하게 된 5인 렌터카 여행 이야기, 손톱이 부러진 빅토리아 폭포의 래프팅과 잠비아의 야간 버스 이야기,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아 마치 노예로 팔려가는 것 같은 신선한 느낌을 준 나흘에 걸친 타자라(탄자니아-잠비아) 열차 이야기, 양심과 친절을 돈과 바꾼 잔지바르 섬의 어느 사람들 이야기나 예정에도 없었고 기억에도 없는 킬리만자로 등반 이야기, 터미네이터가 생각나면서도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낀 에티오피아의 활화산 이야기나 현지 주민이 될 뻔했던 수단의 수도 사막 도시 하르툼에서의 이야기, 처음 입 밖으로 욕이 나오게 한 나라이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사상자가 생겼던 이집트 이야기, 비싼 페트라 입장료에 한 번 놀라고 변태 아저씨 때문에 또 한 번 놀란 요르단 이야기, 두 국가가 한 곳에 있는 종교의 성지 이스라엘 이야기, 두 번째 렌터카 여행의 즐거움을 느낀 산토리니와 크리스마스의 잊지 못할 카파도키아 열기구 이야기, 생각했던 동화의 나라 조지아와 맥주가 참 쌌던 동유럽 국가들, 독립을 외치는 코소보와 저렴하고 푸짐한 스테이크가 인상적이었던 마케도니아 이야기, 비극의 폴란드와 아기자기한 발트 3국 이야기,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해 준, 최근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진 러시아에서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포함한 다양한 이야기들.

 이 수많은 이야기들 중 첫 번째 이야기는 킬리만자로 이야기이다. 이후의 두 번째부터 열아홉 번째까지의 이야기는 시간 순서로 진행되며 킬리만자로 이야기는 순서상으로는 여섯 번째 이야기와 일곱 번째 이야기 사이이다.

 매일 적은 일기와 찍었던 수많은 사진들, 그리고 여행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여행을 하고 있는 심정으로 그때 그 자리에서의 사건, 느낌, 감상을 찬찬히 써 내려갔다. 모쪼록 그 자리에 있는 기분으로, 그곳의 분위기를 느끼고, 함께 있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기쁜 일과 슬픈 일, 힘든 일과 즐거운 일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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