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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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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May 09. 2016

#1. 이렇게 죽는 건가 (1)

2014.10.03. 탄자니아

 오후 4시경 도착한 탄자니아 북쪽에 위치한 마을, 모시의 버스 정류장은 시내에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참으로 많은 분들이 선뜻 짐을 들어주기 위해 경쟁을 벌였으나 마침 나에게도 손과 팔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챙길 수 있었다. 첫 번째 목표물을 놓친 수많은 사람들이 이번에는 짐이 아닌 나를 주시했다. 오늘의 주 목표물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들은 앞 다투어 말을 걸어왔다.

 “좋은 침대, 좋은 위치!”

 “오늘 잘 곳은 구했어?”

 “킬리만자로 투어! 싸다, 싸!”

 케이프타운에 발을 디딘 지 어느덧 한 달 하고도 일주일 이상이 흘러 있었다. 따라서 숙련된 여행자처럼 노련하고도 절도 있게 손을 휘둘렀다.

 “노, 노.”

 이러한 품위 있는 대사를 마치고 유유하게 그 장소를 빠져나오고 싶었으나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계속 뒤를 밟는 그들을 끊임없이 무시한 이후에야 그 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류장을 빠져나온 것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시는 비록 크지 않은 마을이었으나 그와는 상관없이 나는 그 장소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이었으며,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준 G사 지도는 휴대전화의 배터리 문제로 잠시 곁을 떠나 있었다. 분명 어제 숙소에서 확인했던 바로는 가고자 했던 숙소가 정류장에서 나와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걸으면 있을 터였다. 문제는 모시에 정류장이 여러 개가 있으며, GPS를 이용할 수 없는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정류장이 그 정류장들 중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당한 걸음걸이를 추구했다. 목적지를 확실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적에게 알려주는 것은 그들이 나에게 접촉할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인에게 물어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는 어제 떠나온 잔지바르 섬에서 정신력이 마르고 닳도록 느낀 점이었다. 그렇게 20여분 헤매고 나서 결국 혼자 길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걸음걸이가 평범한 여행자의 그것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현지인 한 명이 달라붙었다.

 그는 말이 참으로 많았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묻는 것부터 시작하여 킬리만자로 등산로의 다양한 코스를 설명하기까지 그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나는 킬리만자로에 오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를 흘려들었다. 모시에서는 이틀 정도만 쉬고 바로 케냐와의 국경에서 머지않은 도시 아루샤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아루샤로 이동할 수단에 대해 정보를 얻을까 싶어 입이 근질거렸으나 결국 그만두었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 그는 분명 자신의 지인이라는 사람에게 표를 구해 올 것이었고, 그 표를 내가 사야 한다고 그 당위성을 역설하여 나의 심신을 고단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는 기우에 불과할 수 있으나 현재까지 탄자니아에서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굳어진 편견이었다.

 그의 도움을 통해 모시에 발을 디딘 지 40여 분이 되어 킬리만자로 백패커스에 도착했다. 그는 나에게 길을 알려준 값을 받지 않았는데 이는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길을 알려주고도 돈을 받지 않는다니!

 대신 어디선가 이름 모를 투어 회사의 명함을 꺼내어 내가 반드시 그 회사를 이용해야 함을 열정적으로 설명한 뒤 사라졌다.

 백패커스 입구로 들어서자 먼저 온 동양인 여자 한 명이 계산대에서 체크인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행을 오래 한 듯 그을린 피부에 겨드랑이 정도까지 내려오는 꽤나 긴 흑발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 다음으로 체크인을 하며 이름과 여권번호를 적는 표에 정보를 적으면서 보니 그 사람은 토미나가 치에미라는 일본인이었다.

 킬리만자로 백패커스는 싱글룸과 트윈룸, 도미토리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숙소로 조식 역시 제공되었다. 1층에는 복도 옆에 벤치와 혼자 앉을 수 있는 몇 개의 나무토막들이 놓인 만남의 공간이 있었는데 약 여덟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아담한 크기였다. 체크인을 마치고 들어가니 다섯 명의 남자들이 그 공간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모두 일본인이었다. 잘 된 일이었다. 비록 훌륭하지는 않지만, 한국에 있을 때에도 일본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호주, 남아공, 나미비아, 잠비아를 거쳐 이곳 탄자니아에 오기까지 일본인들과 어울리며 어느 정도는 일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짐을 풀고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그들과 어울렸다.

 그렇게 킬리만자로 백패커스에 일곱 명으로 이루어진 수다 모임이 탄생했다. 본래 머물고 있던 다섯 명과 나, 그리고 토미나가 치에미 씨까지 포함한 구성이었다.


 저녁때가 다 된 시간이라 우리 일곱 명은 거리로 나왔다.

 “어제 돌아다녀보니까 여기서 가까운 곳에 중국 식당이 있던데, 어때?”

 그 그룹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38세 형이 우리를 이끌었다. 그는 갸름한 얼굴에 마른 체형을 가지고 턱수염을 기른 사람이었다. 식당의 야외 좌석에 앉아 견과류를 곁들인 닭고기 누들이나 국물을 곁들인 돼지고기 누들, 구운 치킨을 곁들인 볶음밥과 같은 이름만으로도 맛있는 음식들을 주문한 뒤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에 혹시 킬리만자로 올라가 보신 분 있으세요?”

 나와 함께 그룹의 신입을 담당하고 있는 치에미 씨가 먼저 말문을 텄다.

 “아, 가봤지요, 가봤지요. 이야, 그건 정말 굉장했어요.”

 “저는 오늘 아침에 내려왔어요. 정말 대단했죠.”

 “정상에서 보이는 그 풍경이 굉장히 아름답던데요.”

 알고 보니 그 자리에 있는 다섯 남자들은 모두 킬리만자로를 올라갔다 온 뒤 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코스가 여러 개 있다고 그러던데 어디로 올라갔다 오셨어요?”

 “요즘은 거의 마챠메 루트로 가는 편인 것 같던데요.”

 “네, 저도 마챠메 루트로 갔어요. 매일 텐트에서 자는 데, 식사도 그렇고 크게 나쁘지는 않더라고요.”

 이후로도 루트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는데, 올라갈 생각이 없는 나로서는 별세계 이야기였으므로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얼핏 들리는 말로는 여러 루트 중 코카콜라 루트라고 부르는 마랑구 루트와 위스키 루트라고 부르는 마챠메 루트가 인기 있는 편인데 마랑구 루트는 4박 5일 혹은 5박 6일로, 마챠메 루트는 5박 6일 혹은 6박 7일로 올라가며 마챠메 루트가 좀 더 험준하고 비싸지만 전망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마랑구 루트도 등반 종반에 가서 급격한 경사가 있기 때문에 성공률이 높지는 않더란다.

 “그럼 치에미 씨는 언제쯤 올라갈 계획이에요?”

 “저는 내일이나 모레쯤 알아봐서 최대한 빨리 올라가려고요.”

 “그럼 성민 군은?”

 “네?”

 조금 전에 나온 따뜻한 음식에 시선을 빼앗겨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아, 어, 저는 안 올라갈 건데요.”

 “에? 왜요,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이 주변에서 킬리만자로 산 모습이나 보고 아루샤로 이동할 생각이에요.”

 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음, 이 주변에서 킬리만자로는 보이지 않아요. 거리가 상당히 있어서 차를 타고 가야 할 거예요.”

 아뿔싸, 실수였다. 모시가 킬리만자로에 가는 길목이라 하여 킬리만자로가 보이는 산 아래 마을인 줄로 알았다. 한라산의 세배 높이인 그 높은 산이 설마 보이지 않겠느냐 싶었으나 걱정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당황함을 눈치챈 그들은 슬슬 나를 보채기 시작했다.

 “그래요,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킬리만자로 산을 보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혼자 올라가는 것보다 같이 올라가는 게 더 저렴한데, 치에미 씨 같이 올라갈 사람 없죠?”

 치에미 씨는 스윽 내 얼굴을 보더니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결국 제의를 걸어왔다.

 “같이 가요, 성민 씨. 더 싸진대요.”

 사실 나로서도 킬리만자로를 보지 못 하고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굉장히 마음이 불편했다.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에스살람에서 이곳 모시에 오는 버스 안에서 얼핏 본 것 같기는 했으나 안개가 끼어있었고, 그것이 정말 킬리만자로인지 확신조차 없었다. 죽기 전까지 탄자니아를 다시 방문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며, 킬리만자로라는 명산을 그냥 스쳐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아쉬웠다. 문제는 몸속의 세포들이 당일치기도 아니고 몇 날 며칠 해야 하는 등산을 격정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며 나로서도 전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고산병 약인가, 그것도 없는데요.”

 “나 다섯 알 남은 거 있어요. 하루에 반 알씩 먹으면 되니까 일주일은 넘게 갈걸요.”

 “실패율도 꽤나 높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반반이라고 하는데 성민 군이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군대도 다녀온 한국의 남성이니까 문제없을 겁니다. 우리도 다 다녀왔는걸요.”

 저기, 내가 있었던 군대는 그렇게 혹독한 곳이 아니었는데요. 그 순간 수많은 고뇌가 머릿속을 스쳤으나, 그들의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내가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마치 올라가지 않으면 그들이 후회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결국 손을 들었다.

 “좋아요, 내일까지 한 번 생각해 볼게요.”

 잘못 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에게 조금은 알 수 없는 미소 비한 것이 언뜻 지나갔다.

 “네, 정말로 꼭 다녀오시는 게 좋을 거예요. 진짜 아름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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