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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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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Sep 05. 2016

#1. 이렇게 죽는 건가 (8)

2014.10.10.~10.11. 탄자니아

 청량하고 맑은 하늘빛 사이로 달콤한 분홍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태양은 조금씩 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검게만 보이던 바닥의 자갈에 연회색 빛깔이 입혀지고, 저 아래쪽에 보이는 빙하 같은 모습의 만년설은 눈부신 흰 빛을 발산했다. 살면서 전혀 본 적 없는 형태의 구름이 하늘을 날아 산 아래로 내달렸다. 그것은 얼핏 안개와 같았다. 처음에는 흰색이었으나 점차 분홍색으로 물들더니 이내 온 하늘을 타오르는 주황빛으로 감쌌다. 밟고 서 있는 땅은 더 이상 알고 있던 지구의 모습이 아니었다. 태양이 그 모든 모습을 드러내자 세상은 붉게 물들었다. 하늘과, 구름과, 대기와, 공기와, 흙과, 얼음과,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색을 내뿜었다. 마치 눈앞에 붉은색 필터를 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은 수 초간 지속되다가 이내 눈이 적응하면서 각자 자신의 색깔을 찾아갔다. 이 순간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이 애석하게 느껴졌다. 눈은 풍경을 담고자 하고 머리는 잠에 들고자 하고 있었다.

 함께 정상에 올라와 준 크리스토퍼 씨와 사진 몇 장을 찍은 뒤 내려가는 길에 사카 씨, 치에미 누나와 마주쳤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보이지 않아, 먼저 올라갔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녀는 힘겨운 걸음으로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각자의 체력에 맞춰 나는 크리스토퍼 씨가, 치에미 누나는 사카 씨가 보조해주고 있었다. 서로 입을 열 수 있을만한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눈인사로 안부를 대신하고 각자의 방향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그 길은 고운 모래로 가득 차 있었고, 또한 매우 가팔랐다. 덕분에 발끝과 발목이 매우 아팠으며 종종 경련이 일었다. 크리스토퍼 씨에게 의지한 채 샌드보드를 타는 것처럼 휘적휘적 산을 내려왔다. 데굴데굴 굴러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으나 이내 다행히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돌아왔다. 내려오면서 가지고 있던 초콜릿을 크리스토퍼 씨와 나눠먹기도 하고 사진도 계속 찍었다. 사진기는 거의 크리스토퍼 씨가 가지고 있어서 내려오는 중간중간에 계속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다지 건질만한 것은 없었다.

 해는 완연히 떠올라 온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왼쪽을 보면 산 아래의 평지에 들꽃처럼 작게 보이는 나무들이 부락을 형성하듯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정면을 보면 끊임없는 내리막이 탁 트여있었다. 내리막 저 멀리에 아기자기하게 보이던 눈 캠프장의 형형색색 텐트들이 어느덧 손에 잡힐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오전 7시 반, 짐꾼 한 명이 건네는 망고주스를 세상 그보다 맛있는 음료가 없다는 듯이 들이키고는 텐트에 기어들어가 곧바로 골아떨어졌다. 10시에 점심 식사를 하라고 깨웠는데 오들오들 떨리는 몸을 가누면서 겨우 몇 숟가락 홀짝거리고는 내려놓았다. 치에미 누나는 일어나지도 않았다. 듣자 하니 9시 반이 되어서야 도착했다고 한다. 왠지 저 죽을 때까지 절대로, 다시는 올라가지 않을 지옥 같은 산꼭대기에 놓고 온 것만 같은 죄책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가슴을 적셨다. 정상에 올라가는 시간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았으니 가파른 내리막에서 시간을 소진한 모양이었다.

 “식사 끝났으면 내려가죠.”

 마침 다시 쓰러지기 직전에 사카 씨의 이 한 마디가 내 상반신을 도로 일으켰다.

 “아파 죽겠는데 좀만 더 자면 안 되나요.”

 어미 새를 바라보는 처량한 아기 새의 심정으로 사카 씨를 올려보았으나 그의 대답은 차가웠다.

 “내려가면 나을 거예요.”

 쳇.

 어기적어기적 몸을 일으켜 텐트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고 있었으나 기온은 여전히 겨울의 그것이었다. 사카 씨는 이번에는 치에미 누나를 깨우며 자신의 본분을 다 하고 있었다.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고 어쩌고 할 새도 없이 그대로 쓰러져서 잠들었기에 챙길 것도 얼마 없었다. 내려가는 길은 평탄했고, 아름다웠고, 종종 산뜻한 풀 냄새가 났으며, 나의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어젯밤에는 그렇게나 열심히 일하던 대뇌는 이제 고요하게 쉬고 있었다. 그런 내 옆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지나갔다. 그것은 다리를 다친 것인지 부목을 대고 있는 어느 환자를 들 것에 싣고 100m 달리기를 하듯이 산 아래로 질주하는 여섯 명의 짐꾼 혹은 가이드의 모습이었다. 순간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에 잠시 멈춰 섰다. 그 모습은 어릴 적 하던 파란색 고슴도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게임에서 그 고슴도치의 발이 매우 빨리 움직여 마치 바퀴처럼 표현되던 그 장면을 연상시켰다. 혹은 산 절벽을 거침없이 뛰어오르는 어떤 산양의 한 종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은 20여 초가 채 되지 않아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다시금 그들의 직업에 경의를 표한 순간이었다.

 그 비현실적인 일행을 먼저 보내고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을 계속 걸었다. 사카 씨는 옆에서 자기네 민요 같은 것을 흥얼거렸고, 일행으로 보이는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시끄럽고도 호탕하게 떠들며 옆을 지나갔다.

 아까의 사건이 기억에서 시나브로 묻힐 만큼 참으로 평화로운 오후였다.

 분위기에 취해 한동안 꺼두었던 휴대전화 전원을 켜고 노래를 틀었다. 킬리만자로 중턱에 한국 가요가 울려 퍼졌다.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김동률 ‘출발’ 중)


 오늘의 목적지에 거의 도착해가는 낌새가 보이자 사카 씨가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리처드, 할 말이 있어요.”

 오랜만에 듣는 나의 영어식 이름에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였다.

 “정상에 올라봐서 알겠지만 킬리만자로에 오르는 건 우리가 탄자니아 사람이라고 해서 쉬운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매우 힘들고 위험한 일이에요.”

 끄덕끄덕.

 “하지만 회사에서 우리에게 주는 급여는 하루에 미화 3달러밖에 되지 않아요. 우리는 팁으로 먹고살아야 하죠.”

 “정말요?”

 사실 유무를 알 수는 없지만 진실이라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군.

 “네, 일반적으로 팁은 하루 기준 가이드 25달러, 어시스턴트 가이드와 요리사 각각 15달러, 짐꾼 10달러씩이에요.”

 가이드 한 명, 어시스턴트 가이드 한 명, 요리사 한 명, 짐꾼 총 네 명이므로 하루에 95달러, 10월 6일부터 내일인 11일까지 총 5박 6일 일정이므로 팁만 570달러라는 이야기였다. 나와 치에미 누나가 킬리만자로 등반 비용으로 지불한 총비용은 2,000달러, 팁이 사전 포함된 가격이었다. 이런 식으로 다시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현재까지 5일간의 산행을 통해서 그들이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을 하는지는 뼈저리게 느꼈다. 그것은 종종 미안한 감정 혹은 존경스러운 감정으로 찾아왔다. 등산 스틱에 겨우 몸을 가누며 산을 오르는 도중에 각각 20kg은 족히 될 만한 큰 배낭 2개를 어깨에 올리고 산을 질주하며 옆을 스치는 짐꾼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달렸기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텐트에 몸을 쉬이고 차려진 식사를 먹을 수 있었겠지. 또한 오전에 본 것처럼 환자가 생겼을 때 소방대원처럼 굳세고 날렵한 몸으로 환자를 산 아래까지 무사히 옮기는 것도 그들의 역할이었다. 그런 여섯 명에게 하루에 10만 원, 어떻게 보면 상당히 저렴한 금액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계산이 완료된 거래에 끼어든 반갑지 않은 변수였다.

 “그 팁 말이에요, 이미 킬리 클라임버에 지급했는데요.”

 사카 씨는 고개를 절래 저었다.

 “당신은 속았어요. 사장님은 우리에게 그 돈을 주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회사에 낸 돈은 회사 것이지 우리에게까지 오지 않아요.”

 사카 씨는 말을 이었다.

 “하루에 겨우 3달러라니, 두 끼 식사하기에도 어려운 돈이죠. 하지만 먹고살기가 어려워서 열여덟 살 때부터 이 일을 해왔어요. 나는 여기서 배운 경험으로 꼭 조만간 독립해서 내 회사를 차릴 겁니다.”

 나의 맞장구에 응답하며 그는 조금은 두서없는 들리는 자신의 이야기와 한탄 섞인 넋두리를 떠들면서 자신의 회사인 킬리 클라임버의 부당함에 대한 본인의 주장을 끊임없이 역설했다.

 그렇게 오후 5시, 나는 팁에 대한 뚜렷한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목적지에 도착했다.


 “누나, 어떻게 할까요?”

 치에미 누나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텐트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결국 개인들한테는 팁을 안 주고 그냥 하산한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

 “미리 내긴 했으니까 굳이 우리가 또 줄 필요는 없겠죠.”

 “그렇지, 우리를 킬리 클라임버에 안내해 준 일본인 오빠도 따로 팁 더 안 줬다고 했던 것 같아.”

 그리고 누나는 확실하지는 않은 듯 “아마도.”라고 덧붙였다.

 “흐음.”

 치에미 누나와 나는 저녁 식사를 먹으며 고민에 빠졌다. 왠지 불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동안 서로 말없이 수프를 홀짝이다가 결국 말을 꺼냈다.

 “그래도 확실히 너무 고생했고 잘 안내해 준 것 같아서 그에 대한 보상을 조금은 해야 할 것 같긴 하죠.”

 평서문이지만 질문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문장이었다.

 “응, 그렇지. 아무래도.”

 “100달러 어때요? 50달러씩. 그렇게 해도 결국 일인당 총 1,050달러인 셈이니까.”

 산을 오르기 전에 지급했던 개인당 1,000달러에 50달러를 더하기로 한 것이다. 흥정해서 저렴하게 낸 비용이었기 때문에 큰 손해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치에미 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불편했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나는 그녀의 텐트를 나왔다.


 몸 상태는 상당히 나아져 있었으나 머리에 열이 나고 몸살 기운이 있었기 때문에 감기약을 먹고 녹음해 놓은 라디오를 듣다가 하루를 마감했다. 그리고 새벽 6시 10분에 일어났을 때는 몸이 상당히 가벼웠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마치 다시 산행을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수준의 상쾌함이었다. 식사를 얼렁뚱땅 마치고 춥지 않은 날씨였지만 옷을 껴입고 등산 스틱을 잡았다.

 그때 사카 씨가 어딘가 장엄한 얼굴로 다가왔다.

 “출발 전에 팁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어요. 우리 일행들의 사기와도 관련이 있고, 여행을 잘 마치기 위해서 지금 이야기를 끝내기로 하죠.”

 마치 팁을 안 주면 음식에 독이라도 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짐꾼 네 명과 요리사는 그들의 텐트 옆에 모여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보조 가이드인 크리스토퍼는 보이지 않았다. 마침 치에미 누나가 텐트에서 나와 신발 끈을 묶고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코로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팁으로 100달러 드릴게요. 사정은 알겠지만 우리도 팁 비용으로 이미 당신 회사에 지급했기 때문에 부담이 커요.”

 사카 씨는 내심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돈을 주겠다는데 그 표정은 뭐니. 결국 그는 양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들었다가 내리고는 말했다.

 “알겠어요. 만약 내려가서 팀원들이 항의하면 사무실에 가서 팁 받으라고 당신이 이야기하세요. 나는 그런 얘기 못 하니까.”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어쨌거나 나는 여행을 건강하게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얼굴로 살짝 감정을 내비친 채 그렇게 하겠다는 표시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제야 사카 씨는 자기네 언어로 일행들을 불러 모았다.

 킬리만자로 등반 마지막 날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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