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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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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Aug 09. 2016

#1. 이렇게 죽는 건가 (7)

2014.10.09.~10.10. 탄자니아

 탁.

 사카 씨의 우람한 손이 균형을 잃어가며 허우적대던 오른쪽 손목을 낚아챘다. 한 손을 그에게 의지한 채 오른발을 다시 절벽에 고정하고 왼손과 왼다리를 이용해 가까스로 땅 위에 올라섰다. 심장에 고드름이 닿은 것처럼 감정이 순식간에 온몸을 타고 지나갔다. 방금 있었던 일을 바닥에 몸을 붙인 지금에서야 머리로 이해했다.

 훅, 후욱.

 거칠게 내쉬어지는 숨은 고된 등산으로 인한 현상일까, 아니면 수 초전의 긴장에 의한 산물일까.

 “괜찮아요?”

 시야 한쪽에 절벽 아래의 풍경이 들어와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마워요.”

 “오케이, 조심하면서 천천히 가봅시다.”


 다음 쉼터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까마귀’라는 이름을 가진 캠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이었다. 넓지 않은 고지였으며 주변이 탁 트인 장소였다. 짐꾼들이 텐트를 설치하는 중이었는데 더 이상 서 있을 기력이 없어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아 찡그린 채 머릿속을 비우려고 노력했다. 술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마신 다음 날 아침 같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 몸을 움직일 때마다 허우적거렸다. 텐트가 다 설치된 이후에 몸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결국 걷기를 포기한 채 기어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너무 추웠다. 그것은 숙취와도 같았으며 심한 감기몸살과도 비슷했다. 처음 증상을 느낀 지 겨우 세 시간도 채 안 되어 나는 아침 식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내심 얕보았던 고산병에 호되게 당하고 있었다.


 “이제 일어날……. ……먹고…… 몸…… 출······.”

 잠결에 무슨 소리를 들었다. 무언가 점심을 먹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다시 걷고 있었다. 주위가 탁 트인 오르막이었다. 가늘고 얇은 식물들이 들판의 풀처럼 자라 있었고 군데군데 바위라고 부를만한 큰 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출발할 때만 해도 등산 스틱이 없으면 전혀 걸을 수가 없었으나 물을 많이 마시고 나니 머리가 점차 상쾌해지며 원기를 회복했다. 하지만 힘든 것이 없어진 건 아니어서 등산을 시작하고 나흘 중 가장 힘든 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길이 평탄한 것이 참 다행이었다.


 귓가에 들리는 것은 자신의 발소리와 속삭이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몇 분 더 걸으니 어느샌가 주변은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잿빛 바다였다. 산 아래를 덮고 있던 구름들도 사라져 시선 저 멀리에는 아프리카 초원과 황무지들이 각자 초록색과 주황색의 빛깔로 어우러져 지평선까지 뻗어있었다. 회색의 모래와 자갈들이 종종 이는 바람에 맞춰 떠오르다가 가라앉았다. 무리 지어 걷고 있는 등산객들의 화려한 등산복들이 이 무채색의 도로 위를 장식하였다. 그것은 가끔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들었는데, 흑백사진에서 특정 부분만 빨간색 등 유채색으로 강조하는 ‘색상 고립’ 혹은 ‘색상 강조’라 부르는 일러스트 기법이 눈앞의 풍경에 적용되어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앞뒤를 훑어보니 약 삼사십여 명의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으나 그중 대화를 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신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들과 신경들이 다만 자신들의 몸을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 것에만 전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도착한 캠프장의 이름은 ‘눈(snow)’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곳으로 전체적으로 삭막하고 울퉁불퉁했다. 나무로 만든 야외 회장실 하나가 절벽에 버티고 서 있었고 옆으로 뻗어있는 평지에는 알록달록한 가지각색 텐트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등반이 늦은 탓인지 텐트가 그 평지에 자리 잡지 못하고 한참 아래쪽에 위치해 있어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나 어떠한 사정이 생겼을 시 꽤 오랜 시간을 오르내려야 했다.

 오후 세시가 조금 넘어간 시간이었다. 텐트에 기어들어가 어떻게든 잠을 청하려 노력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배를 집어삼킬 듯이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폭풍우 속의 바다를 항해하는 심정을 느끼게 했다. 몇 사람 들어오지도 못 할 작은 텐트가 나를 삼킨 채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 작은 공간에서 넘어오려는 구역질을 애써 막으며 나는 이뇨제와 생강 물을 꾸역꾸역 삼켰다.

 “와아.”

 몸을 웅크리고 구석에 누워있던 나는 목에서 정상적인 소리가 나는지 확인하면서 몸을 대자로 펼쳐 텐트를 넓게 차지한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은 반시계 방향으로 느리게 회전했다. 아니, 회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른손을 이마 위로 가져오니 미열이 나는 것이 피부를 통해 전해져 왔다.

 정확히 오후 5시가 되니 텐트로 식사들이 들어왔다. 치에미 누나 안부를 물으니 그녀는 먹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등산하면서 처음으로 혼자 먹는 밥이었다. 입맛은 없었으나 먹을 수 있는 만큼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식사를 마치고 손을 뻗어 가방을 뒤졌다. 그리고 결국 먹고 싶지 않았던 진통제를 처음으로 입속에 털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통이 찾아왔으나 끊임없이 잠에 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결국 성공했다.


 밤 11시에 부르는 소리에 깨어 밖으로 나섰다. 바람은 아까와 비슷하게 시끄러운 소음을 유발하며 나를 놀렸다. 진통제의 효과를 조금은 기대했으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다만 눈앞의 하늘을 거대한 오리온자리가 멋들어지게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 위안이 되었다. 쓸데없이 뜨거운 이마의 상태만 제외하고는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었다.

 결국 직접 메고 다니던 우비와 물, 장갑과 모자 등이 들어 있는 5kg도 안 될 작고 가벼운 가방마저 가눌 수가 없게 되어 크리스토퍼라는 이름의 일행에게 맡긴 채 발걸음을 옮겼다. 머리의 헤드 랜턴과 양 손의 등산 스틱, 주머니에 들어있는 카메라와 전원을 꺼놓은 휴대전화가 짐의 전부였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약했는데 달빛이 강해서 등산에 지장은 없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헤드라이트로 이루어진 수많은 빛 덩이들이 줄을 따라 길게 수놓아져 있었다.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의 미니 전구들이 산을 칭칭 감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양말과 바지를 두 겹씩, 상의는 네 겹을 입고 있었는데도 추위가 뼛속까지 느껴졌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다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어맛!”

 앞서가던 치에미 누나가 오르막길에서 모래에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괜찮아요?”

 나와 사카 씨가 각각 그녀의 오른손과 왼손을 잡아 일으켰다. 누나는 중심을 잘 잡지 못해 다시 넘어질 뻔했으나 사카 씨가 강한 힘으로 그녀를 세워 안정을 찾았다.

 “조금 쉬었다 가야겠어요.”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길 중간이었다. 걷다가 옆을 보면 먼저 올라가고 있는 다른 사람의 발목이 보이는 길이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살짝 넓은 길을 찾아 벽에 기대거나 바닥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물도 고의적으로 많이 마셨다. 시야를 밑으로 해서 내려다보니 저 아래까지 헤드랜턴의 줄이 길게 이어져 있어 우리가 올라온 높이를 실감했다. 나름대로 장관이었으나 머릿 속에 맴도는 생각은 딱 두 가지뿐이었다. 춥고, 졸렸다. 놀랍도록 꿋꿋하게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하는 시상하부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다시 몸을 일으켜 길을 재촉했다.

 10분을 걷는다고 하면 제정신인 시간은 1분도 안 되었다. 나머지 9분 이상은 자면서 걷고 있는 형편이었다. 더 이상 내가 몸을 움직이는 건지 몸이 나를 움직이는 건지 구분할 수조차 없었다. 제발 졸린 것만이라도 해결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무 팻말이 눈앞에 있었다. 사실 현실감이 없었다. 나는 걷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마도 나는 계속 걷고 있었으며, 또한 계속 걷다가 생을 마감하는 존재일 것이었다. 그런데 무엄하게 그 앞을 가로막는 팻말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CONGRATULATIONS!] [축하합니다!]

 [YOU ARE NOW AT] [현재 당신은]

 [STELLA POINT] [스텔라 포인트에 있습니다]

 [ALT. 5739M A.M.S.L.] [해발고도 5739미터]

 [TANZANIA] [탄자니아]

 [WORLD HERITAGE SITE] [세계문화유산]

 [www.tanzaniaparks.com] [www.tanzaniaparks.com]


 하하하, 아니 이게 뭐람.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었다. 하지만 팻말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내 앞에 서 있었다.

 해가 뜨고 있었다. 아직 태양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여명을 통해 자신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눈앞에는 평지와 비슷한 매우 완만한 언덕이 펼쳐져 있었다. 시야의 왼쪽에는 흰색 절벽처럼 보이는 것들이 산 아래 어딘가 쯤을 장식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만년설이었다. 현재 만년설보다 더 높은 곳을 걷고 있다. 더 이상 위를 올려다보아도 올라갈 곳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주변은 매우 밝아졌으며, 정상은 머지않은 곳에 있었다. 나는 신이 나서 달리기 시작했다. 몸을 이루는 신경계는 고통과 추위를 제물로 바치고 아드레날린을 소환했다. 그리고 결국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또 하나의 팻말과 마주했다.


 [MOUNT KILIMANJARO] [킬리만자로 산]

 [CONGRATULATIONS] [축하합니다]

 [YOU ARE NOW AT] [당신은 현재]

 [UHURU PEAK, TANZANIA, 5895M/19341Ft AMSL] [해발고도 5895미터/19341피트, 탄자니아 우후루 피크에 있습니다]

 [◦AFRICA’S HIGHEST POINT] [◦아프리카의 최정상]

 [◦WORLD’S HIGHEST FREE STANDING MOUNTAIN] [◦전문장비 없이 오를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동쪽 하늘에서 태양이 빛을 뿌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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