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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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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Jul 04. 2016

#1. 이렇게 죽는 건가 (6)

2014.10.08.~10.09. 탄자니아

 세상이 구부정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나는 길바닥에 누워 비틀어진 세상을 관망하고 있었다. 풍경은 중학교 과학시간의 교실 모습으로 옮겨졌다. 반장이 교실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여자였다. 나는 남자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만난 옆 반 친구였다.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갑자기 2층인 교실의 창문 너머로 나뭇가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굵직한 나무의 부분들이 들어오더니 점차 우거져 잠시 뒤 교실의 모습은 사라지고 주변이 온통 숲이 되었다.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을 인지하지 못 하다가 불현듯 눈을 떴다.

 평평하지 못 한 바닥 위에서 구부정하게 누워있는 나에게 침낭의 감촉이 느껴졌다. 왼손을 침낭에서 꺼내니 차가운 공기가 팔을 감쌌다. 시계는 5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작은 가방, 배낭 및 매트리스 정리를 마무리하고 앉아있으니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여느 때와 같이 차가 들어왔다. 아직 남아있는 몽환적인 기분을 생강 냄새가 배어있는 차를 넘기며 날려 보냈다. 한 잔을 마시고 밖을 나가보니 매우 깨끗하고 청명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구름이 발아래에 깔려 있 마치 비행기 안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지상은 가득 찬 구름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다만 멀리 보이는 어느 봉우리만이 해수면 위로 살짝 올라와 있는 빙하처럼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검정깨 죽 같은 것이 나온 아침식사를 끝내고 젖은 옷들을 텐트 위에 널었다.

 어제의 비가 거짓말 같이 느껴지는, 끝내주는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치에미 누나도 슬금슬금 텐트에서 기어 나오더니 작은 탄성을 질렀다.

 “와.”

 노란 태양이 이글거리는 새파란 하늘 아래의 회색 돌산 , 군데군데 허벅지 높이 정도의 녹색 식물들이 듬성듬성 자라 있고, 저 아래로는 흰 색 구름이 끝도 없는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풍경은 이국적인 감상을 넘어 이세계적인 감동을 자아냈다.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이 만나는, 지평선이라고도, 수평선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선이 시선을 빼앗았다.

 그녀 역시 아침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는 텐트에서 젖은 옷들을 꺼내 자신의 텐트 위에 널어놓았다.

 여유롭고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오늘은 되게 편하네요.”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졌으나 어제처럼 손을 이용해서 오르는 곳이나 가파른 장소는 등장하지 않았다. 마치 광주의 무등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편하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곧 주변에 안개가 짙어지더니 11시부터는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2시 반에 4,600m 지점을 도착했다. 그곳은 평지였는데 수 미터 높이의 바위들이 솟아 있어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적당한 바위를 찾아 그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도시락은 등반 첫날 먹었던 것과 완벽하게 같은 구성이었다. 우비를 걸친 채 미역처럼 늘어진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쪼그려 앉아 젖은 도시락을 먹고 있자니 그렇게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는 이십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모습을 취한 채 저마다의 영양 보충에 힘쓰고 있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식사를 마치고 내리막, 오르막이 한동안 반복되다가 이윽고 계속되는 내리막이 나타났다. 어제처럼 울퉁불퉁한 돌길이었다. 앞에도,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바위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본 적 없는 해괴한 모양의 이름 모를 식물들이 바위 위를 덮고 있었고, 폭포 안쪽을 걷는 듯 주변은 어두웠으며, 주위를 온통 메운 수분이 답답하게 몸을 감쌌다. 불현듯 오전의 꿈이 떠올랐다. 지금그 꿈 속에 있을 때보다 더 몽환적으로 느껴져, 잠시 후면 깨게 될 자각몽을 꾸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가시거리도 매우 짧아 주변에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앞서가던 사카 씨의 뒷모습마저 시야에서 벗어나게 되자 이 행성 위에 홀로 남은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곳의 모습은 마치 지구가 종말 하기 직전의 그것 같았다. 그 모습을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3,940m 야영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였다. 비는 거의 그쳐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관리자로 보이는 이가 들고 다니는 명단에 이름과 국가 등 신상 정보를 적고 서명한 뒤 미리 설치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가져다준 뜨거운 물로 얼굴을 씻고, 다시 생강 달인 물에 홍차 가루를 섞어 마신 뒤 6시에 식사를 하러 치에미 누나의 텐트로 갔다. 내가 들어가는 꼴을 본 그녀는 힐끗 눈길을 주고는 말도 없이 자신의 두 다리를 감싸 안았다. 하루 사이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몸도 조금 떨고 있었으며, 건강에도 조금씩 악 신호가 오는 것이 보였다. 여정이 험난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식사는 매우 훌륭했다. 도넛과 야채수프, 고기 야채볶음과 마카로니 등이 나왔다. 해발 4,000m 정도의 고도에서 먹는 따뜻한 야채수프는 여행 중 먹어본 어떠한 수프보다 격려가 되었다. 식사를 마친 뒤 사카 씨가 들어와 내일의 행보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를 건네고 나갔다.

 “누나, 괜찮아요?”

 내 텐트로 돌아가기 위해 겉옷을 걸치면서 누나에게 말을 건넸다.

 “응, 괜찮아.”

 대답을 하는 중에도 그녀는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누나는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겉옷을 입고 있었다. 공기가 매우 차가웠다. 산 아래가 영상 30도 수준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내 텐트에서 침낭을 하나 가져와 누나에게 준 뒤, 밖에 나와 적당한 돌 위에 앉아 휴대전화 전원을 켜고 음악을 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음악이었다.

 정면에 보이는 절벽 아래로는 마을의 불빛이 보였고 뒤에 등지고 있는 킬리만자로의 봉우리는 구름과 어우러져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는 오리온자리가 떠 있었다.


 “으아아아! 하아.”

 2014년 10월 9일 목요일, 등반 4일 차. 한글날의 오전에 나는 낯선 땅에서 절규를 지르다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산행이었다.

 아침 식사를 한 뒤, 내리막을 쭉 내려갔다가 마주한 것은 꽤 험난한 오르막이었다. 손을 쓰지 않으면 오를 수 없는 지형으로, 말 그대로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야 했다. 어제와 다르게 길은 인구밀도가 참으로 높았다. 해발 3,900m에서 난데없는 병목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르는 도중에 있는, 작으나마 쉴 수 있을만한 공간이 있는 곳에는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바위에 기대고 있었다.

 이윽고 그 오르막의 끝에 다다랐을 때, 또한 지금까지 산을 오르며 보지 못한 새로운 풍경을 마주했다.

 빙하가 뒤덮인 킬리만자로의 정상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에 우람하게 나타났다. 뒤를 돌아보니 끝없는 뭉게구름들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어제 오전에 본 구름바다와는 또 다른 형태였다. 그것이 안개들이 깊은 바다를 이루고 있는 외계의 모습이었다면, 이것은 비디오 게임에 등장하는 폭신한 구름으로 구성된 매트리스 같은 모습이었다.

 거기서부터 길은 다시 내리막이었다. 흙길이었으나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내리막이 끝나자 이번에는 초원이 등장했다. 또한 작은 강처럼 폭이 한 사람의 키 보다도 작은 물길이 흐르고 있었다. 허리 정도까지 오는 풀들이 자라 있었고 주변은 온통 녹색으로 덮여있었다. 마치 일정 시간이 흐를 때마다 다른 세계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이 산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것은 상시 보이는 킬리만자로의 봉우리와 어느 곳엔가 시선을 두면 저 아래 작게 보이는 나무들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 그리고 그 뒤로 뻗어진 구름들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물 좀 주세요.”

 사카 씨는 가지고 있던 큰 물통의 물을 내 물통으로 옮기고는 자신의 작은 물통에는 옆에 흐르는 물을 채우고는 그대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계곡물이나 강물을 그대로 떠서 마신다는 게 갑자기 참으로 낯설게 느껴져 그 모습이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다지 이상한 모습도 아닌데 왜 이럴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잠시 머리가 욱신거렸다. 붕 떠있는 기분이 들었으나 곧 정신을 차렸다.

 “어지러워요?”

 사카 씨가 곁눈질로 내 얼굴을 살폈다.

 “고산병이 오나 보네요.”

 고산병은 걸리는 사람이 많으나 안 걸리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문제를 크게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다. 아마도 나는 걸리지 않으리라는 작은 소망과 근거 없는 자기 최면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아직 증세가 크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눈앞에는 사카 씨, 치에미 누나, 그리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많은 등산객들, 가이드들과 아직 올라야 할 길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초원을 벗어나니 이번에는 정말 큰 물길이 등장했고, 그것을 넘어가니 절벽과도 같은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났다. 한쪽에 난 길을 따라 구불구불 오르기 시작했다.

 좁은 길에서 앞뒤로 줄을 지어 걷고있는 주변 등산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열세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부터 흰머리가 뒤덮인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한 곳을 향해 걷고 있었다. 눈에 들어온 할머니는 첫째 날 캠프에서 본 분이었는데 느리게나마 꿋꿋이, 계속 사람들을 앞으로 보내면서도 천천히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끙끙대는 모습이 괜히 창피해져 무릎에 힘을 보태 묵묵히 걸었다.

 하지만 이내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

 “이건 또 뭐야.”

 헛웃음이 나오다가 곧 감정은 본질적인 두려움으로 변해갔다.

 그것은 ‘절벽과도 같은’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절벽이었다. 오른쪽은 낭떠러지였고 아득히 아래로 개미처럼 보이는 작은 나무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왼쪽의 벽에는 발과 손을 디딜 틈이 있었고 정면에는 올라서야 할 땅이 있었다. 현재 발을 딛 있는 곳은 사람 한 명이 겨우 서 있을 수 있는 협소한 공간이었다. 이미 안전하다고는 부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이 길은 나에게 할당된 그 작은 공간마저 버리라고 하고 있었다.

 사실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상태였다. 그 한 순간만 절벽에 매달려 건너가면 다시 좁으나마 길이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절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오른발을 내밀어 틈새에 끼운 뒤 남아있는 왼손으로 바위를 잡고 왼발을 떼었다. 먼저 건너가 있던 사카 씨가 손을 내밀었다. 왼발을 절벽에 대자 갑자기 한 시간여 전에 찾아온 몽롱함이 머리를 덮쳤다. 순간 오른발 아래를 받치고 있던 돌이 굳어있던 흙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시간이 정지한다거나,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거나, 그런 만화 같은 느낌은 없었다. 그냥 어딘가에서 발이 잘못 디뎌 삐끗한, 그런 기분이 들었을 뿐이다. 나의 감정은 아직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지 못 하여 자신이 현재 어떤 기분으로 느껴져야 옳은지 갈팡질팡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무(無)의 감정과 함께 불현듯 생각 한 줄이 지나갔다.

 ‘이렇게 죽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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