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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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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Oct 06. 2016

#1. 이렇게 죽는 건가 (10)

2014.10.13. 탄자니아

 환타 패션후르츠 맛은 아마 한국에 없었던 것 같다. 그보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파인애플을 제외한 열대과일 향의 탄산음료는 별로 마시지 않는 것 같았고, 더욱이 맛의 종류가 한정적이었다.

 따라서 나는 아프리카에 오고부터 항상 내가 마셔보지 않은 음료를 도전해 보곤 했는데 그중 가장 좋았던 건 스파레타 크리미 소다였고 그다음이 환타 패션후르츠였다.

 크리미 소다는 왠지 참 좋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엔 밀키스를 참 좋아했었지.

 중학생 때 이후로는 점점 탄산음료를 마시지 않게 되었으나 여기선 어차피 물 값이나 탄산음료 값이나 비슷했고, 탄산음료를 마시기에 아주 적합한 기후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기온은 30도를 넘어섰고 우리나라 놀이공원의 아이스크림 카트처럼 여기는 탄산음료 카트가 어느 길거리에서든 보였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아침부터 환타 패션후르츠 한 병을 사들고 빨대를 꽂아 마시고 있었다.

 “어디 가시오?”

 요즘 여행하면서 귀찮기는 하지만 때로 편하기도 한 점이 항상 사람들이 먼저 내가 필요한 걸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처음 모시에 도착했을 때 당할 뻔한 것처럼 필요하지도 않은 ‘짐 들어주기’를 자기 마음대로 해 놓고 돈을 달라고 하는 어이없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럴 때는 참 편하다.

 “아루샤 가려면 얼마 내야 해요?”

 “3,000실링, 4,000실링, 5,000실링 있는 데 뭐 탈거요?”

 현재 1,000실링은 600원에서 700원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2,000실링 차이의 교통수단은 그 시설과 편의 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그리하여 나는 풍부한 경험적 지식과 현재의 재정 상태, 현지 교통 시설 상태와 오늘의 기온 및 지금 나의 기분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뛰어난 의사 결정 능력을 바탕으로 오늘의 여행을 통틀어 두고두고 잘 한 일이었다고 할 만한 가장 탁월한 선택을 하였다.

 “그러면 5,000실링이요.”

 가만 보면 나는 아무래도 검소한 여행자는 아닌 모양이다. 나에게 말을 건 남자는 나를 친히 5,000실링짜리 버스에 안내하고는 운전자와 무언가 이야기를 한 뒤 다시 다른 사람을 노리기 위해 사라져 갔다.

 버스는 곧 출발했으며 기분 좋은 덜컹거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 즈음인 12시 30분에 내렸다. 치에미 누나의 배웅을 받으며 킬리만자로 백패커스를 나온 것이 10시 20분이었으므로, 아루샤에 도착하기까지 약 두 시간이 걸린 셈이다. 새로운 장소에서는 무거운 배낭을 먼저 내려놓는 것이 상책이다.

 가자, 아루샤 백패커스로.


 모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당당한 걸음걸이를 추구했다. 그때와 다른 점은 이번엔 길을 확실히 안다는 점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나는 목표했던 건물에 도착했다.

 내부는 정갈했다. 들어서니 바로 오른쪽에 문이 있었는데 그 안의 공간은 어떤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고, 그 문 옆에는 벤치가 벽을 따라붙어있었다. 그리고 정면에는 계산대가 있었고, 마치 찜질방을 연상시키는 열쇠 보관함이 그 벽에 붙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예약은 안 했는데 하루에 얼마인가요?”

 계산대에 있던 여자 직원은 마치 호텔인 것처럼 깔끔한 옷을 입고 있었다.

 “조식 포함해서 1인실은 하루에 미화 6달러예요. 물론 도미토리는 더 저렴합니다.”

 굉장히 훌륭하군. 아주 좋아.

 “그럼 2박 할게요.”

 1인실은 2층에 위치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벽에 붙어있는 현지 봉사 안내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이윽고 방에 들어서자 천장에는 커다란 선풍기가 달려있고 창으로는 거리가 내려다보였다. 침대 밖에 없는 작은 방이었으나 마음에 들었다. 침대, 콘센트, 선풍기 세 가지만 있으면 어디든 만족스럽지 않은 곳은 없었다. 바로 짐을 풀고 잠깐의 휴식을 만끽했다.


 “이봐요, 어디 찾아요?”

 백패커스에서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숙소 건너편 길가에 있던 소년 한 명이 길을 건너와 달라붙었다. 자기를 토마스라고 소개했는데 외모로는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나트론 호수에 가기로 한 것은 계획에 없던 충동적 결정이었기 때문에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며칠 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미 탄자니아에 입국한 상태에서 페이스북에 누군가가 올린 하나의 글을 본 것이 이 결정의 시작이었다. 무심코 스크롤을 내리다가 본 ‘세계의 독특한 지역’에 ‘탄자니아 나트론 호수’라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곳이 있었고, 마침 나는 탄자니아에 있었으며, 또한 마침 나는 케냐를 가기 위해 아루샤에 와야 했고, 놀랍게도 마침 나트론 호수는 아루샤 옆에 있었다.

 좋아, 이건 나를 위한 여행지였던 거로군.

 이라고 나는 생각하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곳에 대한 정보가 상당히 없었는데, 알고 있는 것은 분홍색이라는 것과 홍학이 많다는 것, 그리고 탄산수소 나트륨에 의해 일반적인 동물들은 돌처럼 굳어 죽는다는 것 같은 일반적인 이야기뿐이었다. 나트론 호수는 그다지 많은 여행자들이 가는 곳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탄자니아 아루샤에 오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동물과 초원하면 항상 등장하는 ‘세렝게티 국립공원’에 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아마 한국에만 있었다면 죽을 때까지 다 못 봤을만한 수의 동물을 이미 충분히 보았기 때문에 동물을 보는 것보다는 특이한 자연환경을 보기를 원했다. 어떤 이유가 됐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여행사들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야 했기에 데리고 다녀 줄 현지인 한 명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트론 호수 가는 투어를 찾고 있어요.”

 “오케이, 나만 따라와요.”


 그가 데려간 곳은 ‘메루 산 여행 & 사파리 유한회사’였다. 한쪽 벽에는 커다란 지도가 붙어 있었고 여성 직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나트론 호수 가는 투어를 찾고 있어요.”라고 토마스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직원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입을 떼었다.

 “나트론 호수 가는 투어는 찾기 어려울 텐데요. 그다지 인기 있는 여행지가 아니어서요.”

 “그래요?”

 정보가 얼마 없다 했더니 역시나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은 아니구나. 그렇게 별로인가?

 “네, 그리고 지금 보스가 없어서 혹시 가능한 일정이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알겠어요. 아, 물 한 잔만 마셔도 되죠?”

 첫 번째 방문지에서는 물 한 잔 얻어 마시고 별 소득 없이 거리로 나왔다. 토마스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른 회사로 안내했다.


 두 번째 회사는 ‘놀라운 탄자니아 관광 & 여행’이라는 곳이었다.

 “나트론? 거기는 왜 가려고요?”

 “사진으로 봤는데 분홍색 호수더라고요.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요.”

 직원은 탐탁지 않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보다는 차라리 타란기르 국립공원이 나아요. 마침 내일 1박 2일로 타란기르와 응고롱고로 보호구역 가는 일정이 있는데, 어때요?”

 지도를 보니 타란기르 국립공원은 아루샤 남쪽에 위치한 국립공원이었다. 응고롱고로는 이미 들어 본 곳으로, 지름 20km 이상의 초대형 화산 분화구이다. 지금은 활동을 하지 않는 사화산이 되어 분화구 안쪽에는 기린을 제외한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으나 세렝게티도 가지 않는 마당에 굳이 선택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가격이라도 알아놓을 겸 물어보니 미화 380달러란다. 1박 2일의 380 달러면 굉장히 비싼 것 같은데. 역시나 이번에도 건진 것은 없었다.


 눈앞의 명패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최고의 날 사파리]

 문을 열고 들어가, 역시나 별 기대는 하지 않고 질문했는데 예상과 다른 대답이 나왔다.

 “마침 매니아라, 나트론과 응고롱고로 분화구에 가는 3박 4일 투어가 있어요.”

 매니아라 호수 국립공원은 응고롱고로 가기 전에 있는 곳이었다. 사실 처음 들어본 곳이다. 하지만 나트론 호수가 포함된 일정이라니, 마다할 수 없군.

 “오, 좋군요. 언제 출발하는 일정인데요?”

 “오늘이요.”

 “네? 오늘이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오늘 출발한다니.

 “어떻게 진행하는데요?”

 듣자 하니 오늘은 매니아라 호수를 들렀다가 내일인 10월 14일에 나트론 지역에 들어가고 10월 15일에 나트론 호수를 구경한 뒤, 매니아라 호수의 캠프로 돌아와서 10월 16일인 마지막 날에 응고롱고로 분화구에서 사파리를 하고 저녁에 아루샤로 돌아온다고 한다.

 “그러면 저는 내일 합류해도 될까요? 오늘 가기에는 너무 빠듯해서.”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괜찮겠네요. 어디 머물고 있죠?”

 “아루샤 백패커스요.”

 “그러면 내일 아침 6시 15분에 데리러 갈게요.”

 나로서는 하루가 빠진 2박 3일 일정이 되었는데 비용은 미화 440달러라고 했다. 생각보다 지출이 컸으나 과감히 결정하고 선불 220달러를 낸 뒤 사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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