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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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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Oct 08. 2016

#1. 이렇게 죽는 건가 (11/完)

2014.10.13.~10.14. 탄자니아

 몇 시간 만에 돌아온 아루샤 중앙 버스터미널은 아까 내가 도착했을 때보다 더 붐비고 있었다. 2층 건물들로 둘러싸인 터미널 주차장에는 봉고차와 소형, 중형, 대형 버스들이 테트리스라도 하듯 가장 효율적인, 하지만 빠져나가기에는 어려운 형식으로 각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테트리스 블록들의 사이를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토마스가 있었다. 우리는 한 건물로 들어섰는데, 하나의 복도 양쪽으로 각기 다른 수많은 사무실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토마스는 성큼성큼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나를 데려다줬다. 도착한 사무실 앞의 입간판에는 그 회사에서 취급하는 노선들이 적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나의 다음 목적지인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였다.

 “나이로비 표 한 장 사려고요.”

 “오늘 출발하는 거로요?”

 “아니요, 이번 토요일이요.”

 오늘은 2014년 10월 13일, 월요일이다.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투어에 참가하기 했으므로 금요일 하루를 아루샤에서 쉰 뒤, 토요일 오전에 출발하면 적당할 것 같았다.

 “어디 보자. 시간표가 여기 있는데.”

 사무실의 직원은 나에게 시간표를 꺼내 보여줬다. 마침 적당한 출발 노선이 눈에 띄었다.

 “10시로 할게요.”

 그는 서랍에서 스와힐리어가 적혀 있는 비슷한 표 두 개가 그려진 종이를 꺼내 적당한 칸에 영어로 ‘나이로비, 오전 10시, 1명’라고 각각 적고는 하나를 찢어서 나에게 건넸다.

 “15분 전에 오세요.”

 가격은 35,000실링, 지금 환율로는 25,000원에 못 미치는 가격이었다. 300km 정도 거리이므로 물가를 생각할 때 그다지 저렴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굳이 흥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도 하였고, 국제선이니 그러려니 하고 지불했다. 사실 이 주변에서는 같은 노선이라도 회사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는데 보통은 시설이 가격에 비례하는 편이었다. 저렴한 맛에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잠비아의 도시, 리빙스톤에서 잠비아의 수도인 루사카까지 가는 야간 버스를 이용한 적이 있는데, 그때 가로로 다섯 좌석이 놓여있는 버스를 태어나서 처음 타보았다. 버스 앞문으로 오르면서 비행기에 타고 있는 줄 알았다. 정말 좁았고, 정말 더웠던 그 경험은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버스터미널에서 숙소인 아루샤 백패커스까지는 거리가 200m 정도로 매우 가깝다. 토마스는 내가 숙소로 향하자 눈짓을 보내며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그에게 10,000실링짜리 지폐를 하나 건네니 그는 표정 가득 만족을 표출하고는 어디론가 떠나갔다. 4시간 정도 같이 돌아다녔으니 시급으로 1,500원에서 2,000원 정도 준 셈으로 치기로 했다. 그가 떠나가는 모습을 힐끗 보고는 숙소로 들어섰다.


 “미안한데 내일 당장 투어를 가게 되어서요. 혹시 하루 못 묵는 건 금요일에 묵는 걸로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렇게 하세요.”

 “고마워요.”

 이미 지불한 이틀 분량의 숙박비는 해결했고, 방에서 조금 쉴 겸 2층으로 올라갔다가 숙소를 한 번 돌아보기로 했다. 내 방은 1층에서 계단으로 올라오자마자 있는 첫 번째 방이었다. 길게 늘어진 복도를 따라서 한쪽으로 방들이 줄지어 있었고, 가지처럼 튀어나온 작은 복도도 두 개 있었는데 그 사이에 큰 공용 화장실 겸 샤워실이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자 큰 식당이 나왔다. 모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식당의 한쪽 벽은 통째로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창 형태였고 분위기 있는 4인 테이블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홀을 채우고 있었다. 창가가 아닌 다른 벽 쪽에도 역시 튀어나온 탁자가 붙어 있고 의자들이 있어서 바에 온 것처럼 혼자, 혹은 옆 사람과 함께 음식과 음료를 즐길 수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사람은 없었지만 이곳에서 식사를 해도 상당히 훌륭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오늘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할 것이다. 아까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저녁에 연다는 중국 식당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벗어나기 전에는 이렇게 중국 음식을 즐기게 될 줄 몰랐는데, 올해 초에 한국을 떠나고 벌써 한국 땅을 못 밟은 지 8개월이 가까워 오니 동양의 향신료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아, 마침 중국 식당 열 시간이 된 것 같다. 밥 먹으러 가야지.


 “잉글리시 메뉴 드릴까요?”

 “아니요, 차이니스 메뉴 주세요.”

 메뉴판을 펼쳐보니 온통 중국어다. 아, ‘잉글리시 메뉴’가 서양식이 아니라 영어로 적힌 메뉴였군. 그래, 이렇게 전통 중국 식당처럼 인테리어를 해 놓은 에서 그릴에 구운 생선과 감자튀김이나 페퍼 소스를 곁들인 립아이 스테이크 같은 음식이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하겠다.

 나는 이렇게 또 한 번 나의 무식함을 인지하며 우아하게 손을 들어 메뉴판을 영어로 바꾸어 달라고 요청했다.

 바뀌어 나온 메뉴에는 가장 앞에 애피타이저로 춘권을 포함한 가벼운 음식들이 있었고 그 뒤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음식들이 양념 별로 적혀 있었다. 그 다음로는 국물 요리와 쌀 요리, 면 요리 등이 적혀 있고 음료와 후식까지 고루 갖추고 있었다. 아무래도 최근 본 중국 식당 중 가장 많은 요리를 취급하는 것 같다. 닭고기 춘권, 새콤달콤한 돼지고기와 볶음밥, 환타와 아이스크림까지 풀코스로 주문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급스러운 원형 식탁들과 또한 고급스러운 의자들이 자리를 채우고 실내에는 어두운 조명이 은은하게 매우고 있었으며 벽은 붉은색 커튼으로 고급스럽게 장식되어 있었다. 식당 내에는 나 말고 한 자리가 더 차있었는데 정장을 입은 채 서류 가방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사업 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식사를 온 것 같았다.

 줄줄이 나오는 식사들은 훌륭했다. 아무래도 아루샤를 떠나기 전에 이곳을 한 번 더 오게 될 것 같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턱.

 진동이 울리는 휴대전화를 잡아서 화면을 보니 오전 5시 30분이다. 몸을 옆으로 빙그르르 돌려 일으켰다. 세면도구를 챙겨 샤워실로 향했다.

 짐을 챙겨 아래로 내려오니 6시이다. 계산대의 직원에게 방 열쇠를 건네고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밖은 지나치게 어두웠다. 분명히 가로등이 있을 텐데 정말 칠흑같이 어두웠다. 6시 15분이 되어 문밖에 나가 기다리고 있으니 쌀쌀한 바람이 몸을 감쌌다. 차는 6시 반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미안해요, 길이 막혀서 조금 늦었어요.”

 봉고차 안에서 문을 연 사람은 약속시간보다 15분 늦어진 걸 사과했다. 무거운 배낭을 들어 올리고 뒤뚱뒤뚱 걸어서 봉고차 내부를 확인하는데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미안해요. 올라와요.”

 문을 열어준 사람은 겸연쩍은 듯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차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내가 올라가기 전부터 이미 정원 초과였다. 여행자는 없었고 모두 현지인이었는데 아무래도 지금 가는 캠프에 있는 사람들을 안내할 가이드들인 것 같았다. 그들 사이에 겨우겨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2시간을 이동했다. 봉고차는 주변이 초원으로 가득 차고 군데군데 작은 1층 건물들이 보이는 지역까지 신나게 달렸다. 이윽고 차는 길 왼쪽에 보이는 담으로 둘러싸인 캠프의 정문으로 들어섰다. 시야의 오른쪽엔 여행자들의 텐트가 있었고 아마도 화장실이나 샤워실, 관리실 등으로 보이는 건물들도 몇 채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살 것 같았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저쪽에 식사가 준비되어 있으니까 가서 식사해요.”

 그가 가리킨 곳에는 이미 열 명이 조금 안 되는 서양인들이 부스스한 몰골을 한 채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가서 보니 빵, 밀전병, 딸기잼, 땅콩잼, 버터, 커피가루, 가루로 된 차, 설탕 등이 있었다. 참 어디에서든 변함없는 조식이다.

 식사를 하고 있는 서양인들은 이미 어제 다른 곳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그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각자 전날 다닌 여행지에 대한 감상을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대화를 듣기 전까지는 이 사람들이 내가 앞으로 2박 3일을 함께 할 일행인 줄 알았고, 따라서 나는 속으로 ‘와, 같이 다닐 사람들 참 많네.’하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러면 도대체 나와 같이 나트론 호수와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갈 사람은 누구지?

 그때 앞 쪽에서 좀 전에 봉고차에 같이 탔던 사람 중 한 명이 불타는 것 같은 빨간 머리의 여자 한 명과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키가 나보다는 조금 작았고, 어깨에 미치지 않는 단발을 한 백인이었다. 전문가는 아니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염색을 한 것 같지는 않았고 원래부터 빨간 머리인 것 같았다. 그들은 식사를 하고 있는 내 앞으로 왔다.

 “그녀가 당신과 함께 다닐 거예요.”

 그녀를 데려온 현지인이 소개했다.

 빨간 머리 여자는 싱그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티아예요.”

 나는 오물대던 밀전병을 삼키며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리처드예요.”



'#1. 이렇게 죽는 건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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