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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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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Oct 23. 2016

#2. 뜻밖의 재회 (2)

2014.08.27.~08.28.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부로 들어서니 운동장처럼 널찍한 공간을 우람한 성벽이 둘러싸고 있다. 본디 방이나 강당, 복도 등이었을 성벽 내부의 공간들은 수세기 전에 벌어졌던 전쟁의 내용이나 이 성의 용도, 당시의 칼과 권총, 소총 등 무기 및 아프리카의 옛날 생활 모습 등을 소개한 전시관으로 바뀌어있었다.

 미로처럼 복잡한 성 안을 헤매다 성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하여 위쪽으로 올라왔다. 군데군데 설치된 대포들이 성의 본 의미를 상기시킨다. 성 왼쪽으로 우람한 자태를 뽐내는 테이블 마운틴, 정면으로 마천루들이 솟아있는 케이프타운의 심장이 시야에 들어오고 바다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외치는, 옅은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교란시켰다.

 목표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기를 사진에 담고 녹이 슨 종탑 옆을 지나 성 아래로 내려와 출구로 향했다. 들어올 때 보았던 거대한 성문은 닫혀있고, 그 성문 아랫부분의 작은 문만이 열려있다. 문 옆의 표지를 보니 입장은 3시 30분 마감이다. 성벽을 따라 들어왔던 길 쪽으로 향하는데 아까 길을 알려준 군인 아저씨와 마주쳤다. 마감시간이 되니 정리하려 돌아가는 모양이다. 씽긋 인사하고 밖으로 나섰다.


 손에는 나침반이 들려 있다. 성에서 나오고부터 나침반에만 의지한 채 북쪽으로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목적지는 바다였다. 케이프타운은 항구도시이다. 항구도시에 왔으면 당연히 항구를 봐야 할 것이 아닌가!

 시내로 들어서니 곳곳에 ‘부둣가’라고 적힌 표지가 보이는군. 복잡한 시내를 지나고 시원하게 뻗은 대로를 걸었다. 해가 지려고 하고 있다. 지도로 봤을 때는 그리 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상하네.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부두에 다다랐다.

 관람차가 시선을 붙잡고 거대하고 길쭉한 옥색 지붕의 하얀 건물이 시선을 가둔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니 굉장한 규모의 쇼핑몰이 눈앞에 펼쳐졌다. 옷가게, 신발가게, 보석가게, 대형마트, 각종 식당, 디저트 음식점, 서점, 시계 수리점, 아프리카 전통 물품 판매점 등 수많은 가게들이 깔끔하게 자리하고 있었으며 층을 연결하는 상당수의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9번 게이트’ 따위의 것들이 적힌 표지판이 그 건물의 넓이를 가늠하게 해주었다.

 십분 이상을 헤매다가 ‘1번 게이트’로 나왔는데 바다가 보였다. 다행이다. 이러다가 해지기 전에 바다를 못 보는 줄 알았다.

 처음 만난 대서양은 사나웠다. 높은 파도가 땅을 삼킬 듯 밀려오다 스러졌다. 서쪽으로 잠기는 태양을 바라보고 멀리까지 날아오는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 방울로 옷과 얼굴을 조금 적신 뒤 방금 빠져나온, ‘빅토리아 부두’라고 적혀있는 문을 통해 다시 건물로 들어가 또 한참을 헤맸는데 이번에 닿게 된 문 밖으로는 선박들이 보인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가지각색의 배들과 오른편에 보이는 불 들어온 관람차, 하얀 갈매기들과 활기찬 거리, 그 모든 것이 시야에 들어오는 곳에 늘어져있는 식당의 테이블.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이들이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다. 한껏 고조된 케이프타운의 저녁이 피부로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상당히 어두워졌다. 이런, 아프리카에 도착한 첫날부터 범죄에, 그것도 피해자로 연루되고 싶지는 않다. 최대한 빨리 돌아가야겠다.


 “표는 구했나요?”

 들어서자마자 어니 씨가 질문을 던졌다.

 “네, 이제 비자 신청서랑 숙소 예약증이랑 여행 사유서가 남았네요.”

 “비자 신청서는 여기 있어요. 숙소는 그냥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아무 호텔이나 정보 인쇄해서 가져가면 돼요.”

 “쉽네요, 알겠습니다.”

 비자 신청서를 받아보니 그다지 적을 내용도 없었다.

 그나저나 졸려 죽겠다. 새벽 4시는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시차 적응이 필요하다.

 신청서를 신속하게 정리하고 중고장터에서 구한 10만 원짜리 넷북에 전원을 넣은 뒤 큼지막한 글씨로 3분 만에 여행 사유서를 작성했다.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저에게는 살면서 꼭 가봐야만 하는 장소가 몇 군데 있습니다. 그중 두 군데는 나미비아의 나미브 사막과 해안도시 스바코프문트죠. 제게는 다시없을 이번 기회에 아름다운 나미브 사막과 그곳에서 뜨는 별들을 보고, 스바코프문트에서 생애 첫 스카이다이빙의 추억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번 나미비아 여행은 제 인생의 큰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딱히 더 생각나는 게 없구먼. 좋아, 출력. 숙소의 프린터를 이용해 인쇄했다.

 다음으로 인터넷을 켠 뒤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의 호텔 리스트를 띄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예약하고 확인증을 인쇄해 가야겠다. 적당히 아무 홈페이지나 들어가서 취소 수수료가 없는 호텔의 방 하나를 예약한 뒤 예약 확인증을 인쇄했다. 다 끝난 것 같은데 뭔가 찜찜하다. 아, 아프리카 나가는 표가 있어야 한다고 했지. 말로 설득하기는 귀찮으니까 작성해놨던 여행계획서도 한 부 인쇄했다.


 아침 9시 20분, 롱 스트리트를 따라 쭉 걸으니 꼭대기에 피라미드가 올라가 있는 높다란 빌딩이 보인다. 입구에는 [삼각형 하우스]라고 건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보통 카드를 찍고 입장하는 모양인데 입구에서 입장 시간, 이름, 국적, 목적을 적고 서명하니 직원이 들여보내 줬다. 엘리베이터로 21층에 올라간 뒤 나미비아 영사관의 문을 열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나미비아 관광 비자를 받으려고요. 서류는 여기 있습니다.”

 다짜고짜 11장짜리 여행계획서와 준비해 온 서류들, 여권, 버스표를 내밀었다. 앉아있던 여자는 만족스럽게 서류들을 훑어보더니 여권의 비자 면을 면밀히 살폈다.

 “좋아요, 여기 이 부분이랑 버스표 복사해서 가져오세요.”

 이건 예상치 못 한 부분인데.

 “죄송한데 혹시 복사 어디서 할 수 있을지 조언 좀 해주시겠어요? 케이프타운에 처음 와서 지리를 잘 모르거든요.”

 그녀는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 입을 다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서류를 가지고 어디론가 가더니 잠시 뒤에 직접 사본을 가지고 돌아왔다.

 “원래는 직접 해 오셔야 하는 거예요. 비자 신청비는 470랜드인데 지금 80랜드 주시고 월요일에 찾으러 오실 때 390랜드 더 주시면 돼요. 월요일엔 아침 9시부터 12시 사이에 오세요.”

 그녀는 친절히 비자 신청 확인증 뒷면에 찾으러 오는 날짜와 시간, 지참할 비용을 적은 뒤 나에게 건넸다.


 “하, 도저히 못 찾겠다.”

 시내를 배회한 지 약 2시간째, 어제 우연히 들렀던 숍라이트에서 장을 보려고 롱 스트리트, 웨일 스트리트, 롱 슈퍼마켓 스트리트, 숏 슈퍼마켓 스트리트를 전전하다가 결국 소득도 없이 점심시간이 되었다. 마트 찾는 것은 포기하고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는 치킨 및 햄버거 체인점인 ‘헝그리 라이언’에서 32랜드에 사치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같이 주문한 입맛에 맞지 않는 진저비어 ‘스토니’를 반쯤 먹다 버렸다.


 케이프타운 시내를 크게 가로지르는 대로인 웨일 스트리트는 그 오르막의 끝엔 알록달록한 집들이 아기자기 모여 있는 보캅 구역이, 내리막의 종점엔 ‘컴퍼니스 가든’이라는 이름의 정원 입구와 ‘슬레이브 로지’라는 이름의 노예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으며, 오르막의 마지막 부분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테이블 마운틴으로 향하고 내리막이 끝난 이후엔 케이프타운 역으로 향하는 대로가 등장한다. 또한 중간 부분에는 여행자들의 숙소들과 시내 관광 투어 버스 정류소가 있는 롱 스트리트가 교차하고 있어 시내에서 움직이다 보면 꼭 몇 번씩은 마주하게 되는 길이다.

 보캅 구역을 훑어보고 케이프타운 전경을 잠시 감상한 뒤 웨일 스트리트를 따라 내려왔다. 슬레이브 로지에서는 노예무역과 노예의 생활 및 해방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었는데 입장료는 30랜드였다. 슬레이브 로지를 나와 컴퍼니스 가든에 들어서니 국립 도서관이 보여 들어갔다. 자료열람실과 참고문헌실을 포함하여 여러 방들을 돌아다녔는데 어떤 규칙으로 자료가 정리되어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공항의 금속 탐지기 같은 검사기로 가방을 검사하고 출구를 나선 뒤, 한동안 공원을 산책하다 끝에 다다르니 국립 박물관과 플라네타륨이 있었다.

 “박물관이랑 플라네타륨이 보고 싶은데요.”

 “40랜드이고 플라네타륨 상영은 2시예요.”

 시계를 보니 12시 30분이다. 딱 좋네, 1시간 반 동안 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오, 치나, 치나.”

 플라네타륨 입구 쪽에 견학을 온 것으로 보이는 교복 차림의 어린 학생 수십 명이 옹기종기 모여 떠들고 있다가 내가 지나가니 수군거렸다. ‘치나’는 중국 혹은 중국인에 대한 비하적인 어감을 가진 표현이라고 하는데 그냥 못 들은 체했다. 신기한 듯 손짓하며 얘기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플라네타륨 벽에 붙어 있는 자료들을 훑었다. 오랜만에 보는 2009 세계 천문의 해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지금 있는 장소를 지구 단위, 달 궤도 단위, 내행성계 단위, 태양계 단위 등등에서부터 우리 은하 단위, 은하단 단위, 관측 가능한 우주 내에서의 단위까지 12개의 전광판으로 표현해 놓은 것도 인상적이다.

 플라네타륨 구역에서 벗어나 박물관으로 들어서니 고래관, 상어관, 돌고래관, 파충류관, 포유류관, 조류관, 고대 인류관 등 구역이 나뉘어 있고 천장에는 거대한 고래의 뼈 모양들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전시되어 있었으며, 돌고래의 울음소리가 쉬지 않고 전시관 내에 울려 퍼지고 있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다지 오래 있고 싶지는 않은 장소였다. 한 시간 정도를 배회하다가 1층 매표소 옆의 쉼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플라네타륨에 입장해서 적당한 의자에 앉아 누웠다. 영상은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여주며 지구의 자전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후 주극성과 출몰성, 전몰성에 대한 내용 및 지구의 공전을 이용한 별까지의 거리 측정 방법, 남반구에서 쓰이는 길잡이 별자리로는 남십자성과 오리온자리, 전갈자리가 있다는 것, 오리온자리는 여름엔 해와 함께 뜨고 겨울에는 밤에 볼 수 있으며, 반대로 전갈자리는 겨울엔 해와 함께 뜨고 여름밤에 볼 수 있다는 것, 오리온자리가 뒤집힌 모양으로 보이는데 북반구에서는 바로 선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과 기본적인 관측 장비로는 그다지 무겁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성능을 보여주는 7 X 50 쌍안경이 좋다는 것 등 다양하고 유익한 설명이 이어졌다. 남반구의 천문대 플라네타륨에 누워 중고등학교 의무 교육 과정 수준의 영상을 보는 우주과학 전공생이 되어보니 기분이 독특했다. 그나저나 너무 졸렸다. 아직도 시차 적응이 덜 됐나.

 눈을 뜨니 설명이 끝나 있다. 푹 잔 기분이다. 밖을 나오니 3시, 근처의 국립 미술관을 들렀다. 입장료는 30랜드로 전시물 대부분이 남아프리카 예술가들의 작품이었다. 음각의 판화가 인상적이었으며 그 밖의 자극적이거나 다양한 조형물 및 미술 작품이 가득했다.


 오전에 그렇게 찾으려고 해도 안 보이던 숍라이트를 달링 스트리트 옆에 튀어나온 작은 거리인 팔리아멘트 스트리트에서 발견했다. 계란 여섯 개와 인도네시아의 라면인 미고랭처럼 생긴, 크기가 우리나라 봉지라면의 반절 정도 되는 치즈 맛 현지라면 세 봉지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공용 주방에서 물을 끓였다.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동양인 한 명이 주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나에게 시선을 보냈는데 순간 묘한 교감이 이어졌다.

 “식사하세요? 저 김치 있는 데 좀 드실래요?”

 한국어였다. “혹시 한국인이세요?”라는 질문도 없이 그는 너무나 당연하게 한국어를 건넸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어떠한 부자연스러움도 느끼지 못 한 채 대답했다.

 “김치 있으세요? 주시면 저야 매우 감사하죠.”

 아프리카에 온 지 하루 만에 만난 한국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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