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란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있어야 하는 존재이고 친하게 지내는 정도는 늘 변하며 수적으로 많다고 적다고 좋고 나쁨을 가늠할 수 없고 가족만큼 가깝지만 절대 가족은 될 수 없는 복잡한 관계다.
나에게는 초, 중, 고동창 친구들이 다 같다. 이 말인즉슨 그만큼 시골에서 자랐다는 말이다. 작은 시골이라 초등학교가 한두 개뿐이고 그 친구들이 모여 중학교가 되고 또 한두 개뿐인 중학교가 모여 고등학교가 되었다. 소도시에 자란 남편은 나의 이런 관계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장단점이 있다. 일단 이렇게 되면 우리 엄마, 아빠, 내 동생, 심지어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얼굴을 모르는 친구는 없다. 어디 사시는지 무슨 일을 하시는지 등등 사소한 일까지도 알 수밖에 없다. 친한 친구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상관없이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친구들과 떨어져 처음 대학교에 왔을 때 많이 두려웠다.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것에 대해서. 늘 같은 친구들과 같은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새로운 곳 새로운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것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었다. 모두들 20살의 새로움을 앉고 낯설었겠지만 나는 그들보다 버퍼링이 더 오래 걸렸다. 게다가 너무 오랜 친구라서 할 수 있는 격식 없는 대화(예를 들어 욕 같은 것), 소홀함 등등을 무시할 수 없다. 늘 그 자리에 있어줬던 친구였기에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거기 있을 거 같은 느낌 때문인지 바쁘고 힘들수록 소홀해지기도 하고 막대하기도 했다.
그래서 였을까. 솔직히 이제는 정확한 이유도 기억나지 않는다.
왜 우리가 인연을 끊게 되었는지. 차단을 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꿈에 그 친구가 나오는 날이면 다음날 하루가 굉장히 공허했다. 어느 날 그냥 어떤 장문의 문자보다도 갑자기 통화를 하고 싶었다. 문득 안녕?이라고 인사를 하게 되면 예전 코찔찔이 못난이 시절부터 욕하고 뛰어다니던 그때 그 감정으로 안부를 물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물론 그 친구의 안부는 물어보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입을 통해서 들은 것이 아니기에 듣고 싶었다. 잘 지내는지. 사소한 잘잘못을 따지고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안부가 궁금했다. 나이를 이제 많이 먹었고 우리는 어린 시절을 통째로 함께 했었는데 이제는 그러질 못한다는 게 많이 서글퍼졌다.
이런 마음이 들었다는 건 이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때가 된 것일까. 하지만 아직도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냥 차단을 해지했을 뿐.
무엇이 너와 나의 관계를 이렇게 까지 만들었는지는 이제 생각할 필요가 없다. 무엇으로 우리가 다시 이야기를 할 건지를 생각해야 한다. 30년을 알고 지낸 친구보다 몇 개월 알지 못한 친구가 더 편할 때가 있다. 하지만 30년을 알고 지낸 친구가 월등한 비율로 마음을 편하게 하고 나를 이해해주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한마디를 해도 열 가지를 알아듣는 똑똑한 친구.
나는 그런 친구가 많다. 이제는 잃었던 친구 한 명도 되찾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