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사실 나는 MBTI에 열광하는 연령이 아니다.
그러기엔 나이도 많고 심지어 어린 친구들이 열광할 때도 ‘그게 뭐’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었다. 평소에 내 성격이 유난스럽고 우유부단하며 나에게 엄격하고 남을 유독 더 신경 쓰는 피곤한 성격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한 2년 전쯤 아는 동생의 권유로 해봤던 MBTI의 결과는 그냥 잊혀 가는 것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어린 친구들과 함께하는 기회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는 그 세대에게 핫한 MBTI로 흘러갔다. 대화 초반에는 나의 결과를 예전에 스샷 해놓았던 것을 떠올려 찾아보고 나서야 이야기에 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뭐랄까.
이야기를 할수록 그냥 엇비슷한 두루뭉술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과학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꼰대는 그랬다. 2시간 남짓 MBTI 이야기로 밤을 불태우고 나니 내 머릿속은 나는 인프제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이렇게 나를 여기에 끼워 맞추게 되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을 할 때쯤엔 이미 인프제를 10번은 검색해 보고 난 뒤였다.
무서운 MBTI 너란 녀석.
모든 검색 결과에 무한 긍정을 표현하며 아 나도 유료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미칠 때쯤 난 이미 맹신론자가 되어버렸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도대체 MBTI란 뭘까.
MBTI를 검색해 보면 나오는 사전적 의미는 일상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자기 보고식 성격유형 지표로써 마이어스(Myers)와 브릭스(Briggs)가 융(Jung)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한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를 말한다.
이제 생각해 보니 MBTI는 열광하는 연령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팔랑귀가 있느냐 없느냐로 나뉠 수 있는 거 같다. 파면 팔수록 재밌고 혹은 상대방과 트러블이 생겼을 때 ‘얘는 J라서 이렇구나’ 또는 ‘아 얘는 N이라 이럴 수 있어 ‘라는 넓은 표용심을 가지게 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구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활의 모든 척도를 MBTI에 빗대어하는 건 오류가 있겠지만 무엇이든지 적당히 하면 살아가는데 좋은 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16가지 유형 중 가장 희귀한 소수 유형인 인프제는 남들이 보기엔 답답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유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나름대로의 이유가 다 있고 남을 너어어어무 생각하기에 이런 성격이 돼버린 거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MBTI는 좋은 유형, 나쁜 유형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단지 나랑 맞는 유형, 안 맞는 유형이 있을 뿐.
사람들이 MBTI로 인해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소통하는 데 있어서 조금의 이해심을 올릴 수 있는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인프제를 검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