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여행이 가고 싶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움직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급격히 쌀쌀해진 날씨와 여기저기 물들기 시작한 단풍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큰 케리어를 끌고 복잡한 출국절차를 밟아 좁은 비행기 안에 몸을 구겨 넣고 몇 시간을 가야 하는 알아볼 것도 많고 챙길 것도 많은 번거로운 해외여행 말고 그냥 큰 백 가방에 옷 한 벌과 속옷, 양말을 던져 넣고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아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국내 여행이 가고 싶었다.
평소에 일 년에 4~5번은 국내여행을 다녔던 우리 부부였지만 지난 1년 동안 남편의 출장으로 미국을 왔다 갔다 하느라 국내여행을 가본 게 언제인지 손에 꼽을 만큼 기억이 흐릿해져 갔다. 문득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남편에게 미국에서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으니 국내여행이라도 가서 글을 쓰고 싶다고 졸랐다. 그렇게 무작정 아껴두던 연차를 주말에 붙여 쓰고 2박 3일 강릉여행을 떠났다.
일요일 아침에 출발해서 점심때쯤 강릉에 도착했다. 사람은 밥심이라고 했던가. 도착하자마자 초당마을로 향해 든든하게 초당순두부로 배를 채웠다. 배가 부르니 배를 꺼트리기 위해 하슬라아트월드에 갔다. 주말이라 주차할 곳이 부족해 멀리 떨어진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파른 언덕을 헥헥거리며 걸어 올라갔다. 신기한 작품과 예쁜 조형물에 둘러싸여 사진도 찍고 넋 놓고 2시간 동안 생각 없이 구경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바다냄새도 좋았고 미국에서처럼 머리 아프게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도 그냥 좋았다. 늘 익숙하게 보던 장소가 아닌 눈에 익지 않는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온다는 건 평소 생각해 오던 고민과 걱정들을 모두 잊어버릴 수 있게 만들어주고 새로운 맛과 새로운 풍경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에는 술과 고기와 야채를 사서 숙소에서 바비큐도 해 먹었다.
밤바다와 보름달 앞에서 먹는 고기와 소주는 정말 끝내주게 좋았다. 비록 글을 쓰러 왔다는 생각 따위는 잊어버린 지 오래지만 소재를 핑계 삼아 여행오기를 참 잘했다.
다음에는 또 무슨 소재를 핑계 삼아 여행을 떠나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