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하나시티즌 VS 수원삼성
K리그는 처음입니다만
6개월 전 이사한 집에서 수원월드컵 경기장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가끔 주말에 경기장 쪽에서 들리는 함성에 오늘은 무슨 콘서트나 행사가 있나 보다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런데 지난주에 남편이 대뜸 돌아오는 주말에 월드컵경기장으로 축구경기를 보러 가자고 했다. 평소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에 열광하던 우리였지만 K리그는 처음이었다. 경기장이 바로 코 앞이니 슬슬 걸어가서 구경하고 오자는 남편의 꾐에 나도 모르게 귀가 팔랑거렸다. 마침 그 주말에 우리는 아무 일정도 없었고 봄 날씨에 어디든 나가고 싶었던 마음에 월드컵경기장은 어떤 곳인가 구경이나 해보자는 심산으로 긍정의 사인을 보냈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K리그는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직장 동료가 수원삼성블루윙즈 열심회원이었기에 어깨너머로 명성을 익히 들어왔었다. 어깨너머로 듣는 소식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설렁설렁 걸어서 경기 시작 10분 전에 치킨과 맥주 두 잔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경기장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차지하고 있는 대전하나시티즌팬과 수원삼성팬의 그 웅장함과 단합력은 가히 대단했다. 일명 홈구장 응원석에 차지하고 있는 수원삼성 블루윙즈의 파란 물결은 2002년의 붉은 악마를 응집해 놓은 것만 같았다. 그 상대편에 자리하고 있는 대전하나시티즌의 팬들은 원정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가 적어 보이긴 했으나 그들의 응원력과 단합력 또한 수원삼성블루윙즈를 맞먹는 수준이었다.
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K리그에 열정적이라고?
나는 정말 K리그의 키읔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처음 마주한 K리그는 내가 좋아하는, 응원하는 축구팀을 2시간 내내 선수들과 함께 뛰며 쉬지 않고 응원을 하는 어느 정도 이상의 애정이 있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정말 힘든 일이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뜨거운 햇볕에 갑자기 부는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선수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응원을 해야 했다. 경기가 후반전에 들어서도 그 누구 하나 힘듦을 티 내지 않고 다 같이 으쌰으쌰 하며 뜨거운 청춘이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보기 좋았던 경기가 후반을 넘어가면서부터 이상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엎치락뒤치락 이대로 무승부로 끝나는 거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을 때 후반전 15분에 대전하나시티즌이 선제골을 넣고 이어서 6분 후 수원삼성의 동점골이 터졌다. 그 후로 양 팀은 채찍질을 하듯 응원이 더욱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반 경기가 1분 남았을 때 수원삼성의 어이없는 실수로 대전하나시티즌의 추가골이 터졌다. 그 후 추가골이 나왔다는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추가시간 5분이 주어지고 또 한 번의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 2분 만에 대전하나시티즌의 세 번째 골이 터졌다. 그러자 수원삼성팬들은 실망을 넘어서 분노를 내기 시작했다. 바로 수원삼성을 응원하지 않고 대전하나시티즌을 응원하면서 이상한 분위기로 경기가 막을 내렸다. 결국 수원삼성은 프로축구 개막 후 1 무 3패로 꼴찌를 달리게 되었다.
내가 2시간 동안 열심히 응원한 팀이 실망스러운 경기를 하고 부진한 성적을 냈다고 한들 이렇게 화를 내고 심지어 상대편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게 나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K리그의 키읔도 모르는 내가 단 한번 경기를 봤다고 그들만의 문화, 그들만의 표현방식을 속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떠나는 선수들의 버스를 막고 감독에게 책임을 운운하며 변화를 요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들은 축구선수와 팬을 넘어서 그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묘하고 신기한 관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우리는 묘한 장면을 보았지만 앞으로 수원삼성이 바로 우리 집 앞에 있는 축구팀인 만큼 다른 팀보다 더 좋은 실력을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경기장을 나왔다. 그러면서 다음 경기도 꼭 보러 가자고 남편과 약속을 했다. 이러다 언젠가 내가 파란 옷을 입고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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