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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희 May 15. 2023

결국 오고야 말았습니다.

 정말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평생 안 보고 살고 싶었다. 차라리 그의 존재자체를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그 와 평생 함께 해야 한다면 장수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이 이야기는 꼭 매년 이맘때쯤 잊지 않고 나를 찾아오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다. 시작은 항상 눈에서부터 온다. 어렸을 때는 멋모르고 눈이 가렵기 시작하면 안 가려울 때까지 검지손가락으로 눈을 뽑을 것처럼 위아래로 사정없이 비다. 그러다 결국 양 눈이 다 충혈되고 팅팅 부어서 눈 밑에 주름이 몇 겹 생기고 다크서클이 늘어질 때까지 그냥 긁었다. 할 수만 있다면 눈알을 다 뽑아서 차가운 얼음물에 담가서 박박 씻어서 다시 끼워 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눈을 비볐다. 눈이 가려울 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이십 년을 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너는 특이하게 눈 밑에만 주름이 되게 심하네?”     



 그때 나는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동안은 아니더라도 나이 들어 보인다는 생각은 안 하고 살았는데 내가 이렇게 눈을 계속 비비다가는 눈 밑에 더 흉측한 주름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끝없이 무서웠다. 순간의 가려움을 이기지 못해 내 눈을 사정없이 비벼댄 결과가 눈밑에 다크서클과 주름이라니. 이십 대에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삼십 대, 사십 대는 어쩌란 말인가. 비싼 피부관리를 해주지는 못할망정 내 손으로 직접 주름을 만들다니.      


 평소 겉모습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내가 눈 밑 주름이라는 말에 꽤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후로 나는 매년 나타나는 그 녀석에게 지지 않기 위해 꽤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일단 가려움이 시작되려는 징조가 보이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안약이나 안과치료를 병행한다. 가려움이 시작되려고 하면 눈을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린다던가 다른 것에 집중하기 위해 굉장히 애를 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눈을 비비지 않겠다는 의지하나로 악문다.      


 이런 알레르기 따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길래 알레르기 없는 몸으로 태어날 수 있었을까. 눈이 가렵다가 가라앉기 시작하면 이제 그다음타자가 나를 반긴다. 바로 콧물과 재채기. 눈이 가려운 건 내 몸만 해치면 되는 것이지만 콧물과 재채기는 다른 사람에게서 질병을 옮기거나 혐오감을 안겨줄 수 있다. 게다가 콧물과 재채기도 눈 가렵기 뺨치게 제어가 되지 않는다. 가만히 있다가도 맑은 콧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사방에 침을 다 튀길 만큼 재채기를 연달아하고 나면 자괴감까지 느낀다. 그나마 코로나시대 이후로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상대방에게 해가 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재채기 후 마스크 안에서 올라오는 나의 침냄새 또한 무지하게 괴롭다.


 알레르기는 영어 알러지의 독일어식 발음에서 유래되었으며 면역반응의 일종으로 과민반응을 의미한다. 인체는 면역체계가 해로운 물질을 파괴하는 면역반응을 보이며 몸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몸에 해가 되지 않는 물질에 대한 면역반응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알레르기이다. 즉 보통사람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 물질이 특정한 사람에게만 여러 가지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나 특별한 사람이다. 알레르기가 나를 한껏 괴롭히고 있을 때면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생각난다. 님은 왔습니다. 아아 싫어하는 나의 님은 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왔습니다..... 비록 사랑하는 님이 간 것이 아니고 싫어하는 님이 왔지만 이렇게 각색하니 너무나 찰떡이다.  


 눈과 코는 연결되어 있어서 눈에서 알레르기가 오면 코까지 오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그래서 안과에서 알레르기 진료를 받고 꼭 이비인후과도 따로 가야 한다. 안과 가는 것도 꽤 힘든데 이비인후과를 따로 또 챙겨 다녀야 한다니. 눈이 가려운 것도 비극이지만 콧물에 재채기까지 알레르기는 정말 최악이다.


 올해는 제발 오지 말아 달라고 밤마다 빌었지만 역시 그분이 오고야 말았다. 이제 시작했으니 아주 한여름이 되어야 그분이 사라질 텐데 그때까지 어떻게 버텨본담.


이 글을 읽는 모든 알레르기 환자들 파이팅.



https://m.oheadline.com/articles/Bmg9oV9OyG_6O8l783jjBg==?uid=fafdf5a0a74c4bcd905e6b4169c91f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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