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산책이란. 늦은 저녁. 남편과 술을 2차 3차까지 부어 마시고 난 후. 부풀어 오른 배를 부여잡고 잠이 오지 않아 동네를 어슬렁거릴 때 말고는 없었다. 벚꽃놀이나 좋은 경치를 보러 갔을 때 말고는 산책을 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 우리에게 어느 날 강아지 한 마리가 왔다.
유기된 강아지를 호기롭게 임시 보호하겠다고 해놓고 보내지 못했다. 이 녀석을 보낼 바에야 평생 산책을 하고, 나이 들어 이 녀석을 먼저 떠나보내고 그리워할지언정 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처음에는 건방지게 산책을 내가 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 녀석이 나를 산책시켜줬다. 이 녀석은 산책하러 가면 세상 바쁘다. 풀냄새도 맡아야 하고 지나간 친구 똥구멍 냄새도 맡아야 하고 사람들에게 이쁨도 받아야 하고 똥, 오줌도 처리해야 한다. 그러니까 정작 산책을 하는 건 나다. 나는 이 녀석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주변 경치도 보고 석양도 보고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뒤섞여 하고 싶은 글이 떠오른다. 그러면 바쁜 이 녀석을 불러 새워놓고 잠시 핸드폰 메모장을 급히 펼친다. 그리고 끊임없이 적는다. 그러면 이 녀석이 얼른 가야 한다고 바쁘다고 나를 또 이끈다.
속 편하게 지금 산책 따위를 할 시간이 없다고 말이다. 내가 눈치 없이 혼자 산책을 했다.
매일 하루 한 번 이 녀석 덕분에 나는 산책을 당한다. 그리고 글을 쓴다. 어쩌면 지금 내가 쓰는 모든 글이 이 녀석 덕분에 탄생한 걸까. 이 정도면 나중에 책을 냈을 때 자문을 받은 명단에 이 녀석 이름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름을 써주는 것 따위야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오래오래 나에게 산책을 시켜주시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