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면 브런치 작가가 된 지 딱 100일이다. 처음부터 큰 성과를 바라고 시작한 일이 아니기에 어딘가에 글을 꾸준히 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무심코 적은 에세이에 어느 작가님이 담백해서 읽기 좋다는 답글을 달아주셨다.
글이 담백하다는 말은 무엇일까. 이렇게 짜릿하고 좋은 말이 또 있을 수 있을까. 담백하다는 건 깔끔하고 맛있는 깊은 국물을 먹었을 때나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나의 글이 이런 평가를 받으니 너무 좋았다.
그 후로 나는 담백하다는 말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더니 세 가지 의미가 있었다.
1.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2. 아무 맛이 없이 싱겁다.
3.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
유의어로는 깨끗하다, 단순하다, 산뜻하다 등이 있다. 세 가지 의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첫 번째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였다. 이렇게 완벽하게 기분 좋은 말이라니. 생각 같아선 그 댓글을 써준 작가님에게 차라도 한잔 대접하는 오지랖이라도 부리고 싶었다.
그 짧은 댓글로 적어도 일주일은 행복해질 테니 말이다.
하루에도 브런치에는 수십만 개의 글이 쏟아진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올린 순간에도 브런치 나우에는 새로운 글이 올라가서 내 글이 자꾸만 아래로 떨어진다. 그 글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탁월한 재능이 있거나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담긴 글이 아니고서야 금방 잊히고야 만다. 나는 아직도 하루에 방문하는 통계는 50 아래이며 구독자 수도 두 자릿수에 불과하고 이렇다 할 특별한 성과 없이 브런치를 계속하고 있다. 처음에야 글 쓰는 게 신이 나서 열심히 올렸지만 이쯤 되니 이렇게 아무 성과 없이 계속 글을 올리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사실 나에게도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 원대한 꿈이 있기는 했다. 글을 꾸준히 올리는 것은 물론이며 글이 차곡차곡 쌓여 브런치 북을 내고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문의가 쇄도하며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서가 2~3개쯤은 들어오는 허무맹랑한 꿈. 브런치를 시작한 지 100일이 된 지금.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돌이켜보니 허무맹랑한 꿈이라도 꾸어보니 좋았고 어딘가에 주저리 글을 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과를 내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던 글을 누군가 읽어주고 마음에 들었다며 라이킷을 눌러주는 수고로움을 보여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내 꿈을 향해 정면으로 가고 있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꼭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지 않아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나 혼자 신명 나게 글을 쓰고 다음 날 다시 읽어보면 그렇게 두서가 없고 재미도 없어서 이걸 어떻게 올리지.라는 비참한 생각이 드는 날이 많다. 하지만 담백하다는 말 한마디로 오는 행복이 더 크기에 글을 올릴 수 있는 무식한 용기가 자꾸만 샘솟는 게 아닐까. 언젠가는 허무맹랑한 꿈이 아닌 꿔볼 만한 꿈으로 바꿀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오늘도 읽어주셔서 행복했다는 말을 쓸데없이 길게 했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