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여느 날과 다름없이 어제는 금요일이라 남편이 주안상을 열심히 차려 신나게 과음을 했다. 이번 주도 우리 고생이 많았다며 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에 1차를 달리고 매운 거 먹었으니 산뜻하게 달걀을 풀어 치즈 넣고 두껍게 말아서 호프집 스타일 달걀말이로 2차를 갔고 마지막은 깔끔하게 육포와 나초, 아이스크림을 꺼내 같은자리에서 1차, 2차, 3차를 냅다 달렸다. 3년 전, 5년 전 이야기까지 꺼내며 밤 열두 시까지 하하호호 깔깔 웃어젖혔다.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집에서 혹 아랫집까지 들리게 웃은 건 아닌지 걱정이 지나가는 찰나 어제 설거지를 하고 잤는지 그냥 잤는지 아리송한 상태로 눈을 떴다.
오늘은 제발 숙취 없이 주말을 맞이하게 해 주세요. 없는 신앙심이라도 끌어모아 신에게 빌며 몸을 일으킨다. 그러면 부스스한 머리와 어디선가 나는 진한 알코올 향이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준다.
그러다 문득 어지러운 주변을 돌아보다 생각했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사는 걸까? 혹 이대로 10년이 흐르면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될 텐데 그때까지 이렇게 사는 건 아닐지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이십 대 초반 술 먹는 할머니가 될 거라며 호기롭게 즐거워하던 내가 술 먹은 지 이십 년이 다되어서 이런 생각을 한 거 보니 철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걱정되는 마음에 같은 자세로 널브러져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우리 십 년 뒤에도 이렇게 술 먹으면서 놀까?”
“응. 그러겠지?”
진지한 내 대답에 해맑게 대답하는 남편이 야속했다.
“아니. 그럼 계속 오빠는 배 나온 술 먹는 할아버지가 될 거야?”
“나 배 안 나왔는데? 흐읍!”
그러면서 숨은 왜 참는 건데.
마흔이 다 돼가는 나이에 내시경 한번 해보지 않은 것도 걱정인데. 술을 이렇게 주야장천 퍼마셔도 괜찮은 건가. 행복하고 좋긴 한데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강조하는데 절대 술 먹는 할머니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을 즐기며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서 보기 좋다. 하지만 이렇게 배 나오고 건강하지 않게 술 먹는 할머니는 되고 싶지 않았다.
'술 먹는' 형용사는 괜찮은데 '배 나오고 건강하지 않은' 형용사는 저 멀리 던져 벼리고 싶었다. 사실 술 먹다와 건강하다는 함께 할 수 없는 단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같이 쓰고 싶은걸 어쩐담. 하필 깨달은 게 술 먹은 다음날이라는 게 애석하고 진실성 없지만 이렇게라도 깨달은 나에게 대견하다고 하고 싶다.
그러니 유산소 운동을 하자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숨이 가빠질 만큼 헥헥거릴 수 있는 운동! 그리고 떳떳하게 술을 마시자.
물론 운동을 주 3회 한다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건강하게 술 먹고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건강하지 않을까. 이쯤 되면 나는 정말 술 먹기 위해 산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래 인정한다. 나는 술을 먹기 위해 요가를 하고 식이조절을 하고 유산소 운동을 결심한다. 그게 뭐 어때서.
나는 술을 먹는다 고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 참 그래서 말인데 다음 주는 무슨 안주랑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