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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희 May 09. 2022

흰머리가 납니다



“어? 실장님 여기 새치 있어요. 제가 뽑을래요”     



같이 일하는 직장동료가 내 자리에 와서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던 중 새치가 있다며 업무를 멈추고 내 머릿속을 고르기 시작했다.    

  

     

“뽑았다. 어? 여기 하나 더 있다. 잠깐만요”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새치 뽑기는 그 옆에 한 개 더, 그 옆에 한 개 더를 하다 보니 잠깐 사이에 다섯 개나 뽑았다. 그런데 이게 불과 일주일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이쯤 되면 이게 새치가 아니라 흰머리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마흔이니까 올 때도 됐지. 그래. 나에게도 드디어 때가 된 건가. 찹찹한 마음이 들었지만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무시했다. 그리고 며칠 뒤 유독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 이리 묶었다 저리 묶었다를 해보고 그루 뽕도 말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타던 가르마 반대편의 머리 한 움큼을 들어 올린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베란다 구석에 있던 박스를 들어 올려 바퀴벌레의 근원지를 찾아낸 것처럼 평소 들춰보지 않던 머릿속이 내가 모르는 새에 오분의 일에 해당하는 지분의 흰머리가 무수히 박혀 있었다. 언제 이게 이렇게 흰머리가 난거지. 분명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매일 만지고 빗고 감는 머리카락이 나도 모르는 새에 하얀 머리카락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나에게 무관심할 수가 있나. 


더 소름 끼치는 건 그 외에도 평소 잘 살피지 않던 오른쪽 귀 뒤쪽에도 한 움큼의 흰머리가 있었다. 연달아 두 번의 비명을 지른 후에야 나는 내 머릿속을 이리저리 다 뒤지며 머리카락 전체의 오분의 일이 하얀 머리카락이라는 현실을 직시했다.     


평소 남편의 흰머리를 보며 항상 놀리던 나였는데. 이제 내 차례가 된 건가. 하. 그렇다면 흰머리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라는 말보다는 다른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흰머리가 나는 이유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1. 노화

2. 유전

3. 스트레스

4. 건강 이상

5. 흡연     



10년 전부터 엄마의 흰머리 염색을 해주면서 나는 나이 들면 그냥 하얀 머리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귀찮게 매번 독한 염색약 냄새를 맡아가며 색을 입히는 것이 거추장스럽다고 말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하얀 머리로 뒤덮이도록 두자. 그게 얼마나 얄팍한 생각이었는지 흰머리가 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흰머리를 자각한 순간부터 거울을 보는 순간 내 시선은 그 하얀 머리카락만 보였다. 전체가 흰머리가 아니고서야 듬성듬성 흰머리는 그렇게 지저분해 보일 수가 없었다. 저걸 뽑아 말아. 계속되는 갈등 속에 거울보기를 포기해야만 마음을 비울 수 있다. 이렇게 몇 년을 있어야 온통 흰머리가 될 수 있는 건지. 차라리 한 번에 확 하얀 머리가 되지 않는 이상 내 머리는 지저분한 듬성듬성 흰머리로 보일 것이다. 


왜 그렇게 엄마가 귀찮게 시기에 맞춰 염색을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울적한 마음에 엎드려 있는 나에게 남편이 다가와 말했다.



"내가 염색해줄까?"



아 이제는 그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나는 흰머리가 생기는 중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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