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호기심

영재.

by 콰드로페니아

나는 새로운 먹거리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편이다. 오랜만에 들린 버거집에 새 메뉴가 나왔다든지, 매주 가는 카페에 시즌을 겨냥한 새로운 음료가 나오면 반드시 먹어봐야만 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도전해 본 음식들 대부분은 다시 먹지 않는다. 인기 메뉴가 꾸준하게 팔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 커서 매번 타율 낮은 도전을 반복한다. 이런 숱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먹거리가 있다. 바로 파란색의 음식들이다. 파란빛을 띠는 먹거리는 내 안의 호기심 레버를 끝까지 올려놓는다.


파란색 음식은 식욕을 감퇴시킨다고 알려져있다. 독이나 곰팡이, 상한 음식이 띠는 색이 푸른색이어서 그런지, 우리는 파란색의 음식들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정확한 과학적 근거는 찾아보지 못했지만,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파란색을 다이어트에 활용한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에서 파란 카레나 파란 라멘을 다이어트 음식으로 먹는 사람도 있다. 파란색 음식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은 한결같다. 토하는 시늉을 하거나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 음식들에 끌린다. 그 사진을 보고 나의 식욕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그 맛이 너무나 궁금할 뿐이다. 해외여행을 할 때는 신기할 정도로 파란색의 먹거리를 더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식사류보다는 음료나 간식류가 대부분이었다. 영롱한 푸른빛이 감도는 음료부터, 물감을 풀어 놓은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새파란 젤리까지 파란 음식의 스펙트럼은 무척 넓었다. 마트에서 파란색 먹거리를 마주칠 때마다 망설이지 않고 쇼핑 카트에 담곤 했다. 여행을 할 때 괜히 생기는 용기도 한몫했다. 다양한 파란색 음식들이 내 호기심을 자극한 덕분에, 한국에서보다 더 빈번하게 독특한 맛을 느껴볼 수 있었다. 같이 장을 보는 친구가 뭘 그런 걸 사냐고 핀잔을 주어도 개의치 않았다.


나는 파란 음식의 맛이 어떨지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파란색에서 과연 무슨 맛이 날지 직접 먹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파란색 먹거리들을 사먹는 것 외에도, 호기심은 내가 하는 선택의 주요한 원인이 되곤 했다. 남들을 따르는 것보다는 나의 느낌, 특히 나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선택지를 따를 때가 더 좋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라고 하던 것이 나에게는 좋은 적도 있었다. 그들이 무언가가 별로라고 말하더라도 판단은 내가 하고 싶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직접 경험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데 며칠 전 문득 내 호기심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좋아하는 영화의 감독이 10년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신작 영화의 티져는 조금 유치해보였지만 이전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감독의 기량이 여전히 기대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 영화를 먼저 본 친구가 엄청나게 실망스럽다는 혹평을 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대단한 영화 전문가도 아니었는데 그의 혹평만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금새 사라졌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듣는 음악의 목록을 살펴 보니 몇 년 전에 즐겨 듣던 플레이리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잠재력 있는 신인의 라이브를 찾으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어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음악이라고 해봐야 이전부터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신보뿐이다.


새로운 경험에 피곤함과 귀찮음을 느끼는지, 아니면 새로움에 쉽게 도전하지 못할 만큼 겁쟁이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탓에 파란 음식을 지나치지도 못하는 나였는데…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파란색 음식을 사 본 기억이 없다.


호기심은 나의 자부심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호기심을 밀어붙여 경험해 보고야 마는 나의 성향이 남들과 구별되는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이것 봐라. 너네들은 고민만 하고 마는데 나는 다 경험해봤다? 나는 너네들보다 폭 넓은 경험의 데이터 베이스를 가지고 있다고!’ 그런 장점을 갖고 있던 내가 호기심을 방치하는 사람이 되었다니. 나의 주관을 잃고 남들과 똑같아 지는 것 같아 슬펐다. 경험에서 오는 재미와 성취감 대신, 안일하고 게으른 판단을 하는 내가 조금 한심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경험에 발벗고 나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힐난하다 보니 괜히 열이 받았다. ‘아니, 내가 변하면 얼마나 변했다고 이렇게 혼자 끙끙앓고 있나.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하는 판단이 그렇게 한심한가’ 고민했다. 어쩌면 경험해보지 않고 하는 판단이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일 수도 있다. 무조건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못 박아둔 채, 변한 나 자신에 대해 푸념만 하는게 훨씬 더 한심한 태도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겸연쩍어졌다. ‘그래 뭐, 사람이 살다가 좀 변할수도 있지. 이렇게 혼자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야? 어휴. 좁은 시야를 가진 나 자신아,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자.’


<라쇼몽>으로 유명한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재밌는 말을 인용하고 싶다. “인생은 한 통의 성냥갑과 닮았다. 너무 가볍게 여기면 위험하지만, 너무 진지하게 취급하면 바보같다.” ‘인생’을 ‘호기심’으로 바꿔보면 나에게 딱 맞는 말이 되겠다. 호기심을 해결하는 태도는 나에게 있어 분명하고 중요한 성향 중 하나다. 그러나 이걸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그것만큼 우스운 일이 또 없다. 따지고보면 내 호기심이 그렇게 사그라든 것도 아니다. 이전보다 행동으로 덜 옮길 뿐이지 궁금한 것들은 여전히 많으니까. 이제는 호기심이 적어졌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다. 무작정 행동으로 옮기기보다 한번쯤 멈추어 고민해보는 점잖은 자세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긍정적이겠다.


내일은 눈여겨보던 파란색 젤리를 사러 가야겠다. 매번 먹던 하리보도 맛있지만, 그 파란색 젤리는 아직 맛보지 못했으니까.


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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