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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불, 리스크, 그리고 금융공학

by 퀀트대디
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 퓌거 作

# 프로메테우스의 불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티탄 신족이자, 미래를 내다보는 선지자(先知者)였던 프로메테우스. 그는 그 어떤 신보다도 인간을 사랑했기 때문에 신들만의 물건으로 여겨졌던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선물한다. 이러한 사건은 결국 제우스의 분노를 샀고, 프로메테우스는 평생을 코카서스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는 문명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초기 인류는 새처럼 날개도, 맹수처럼 날카로운 이빨도 가지지 못했던, 한 마디로 아무런 능력이 없던 가장 약한 종(種)이었다. 그랬던 인류가 이제는 불을 사용하고 이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이전의 원시 시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마침내 문명이라는 것을 이루기 위한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 리스크에 대한 지배

경제학자인 피터 번스타인(Peter L. Bernstein)은 이러한 프로메테우스의 불 이야기를 상당히 참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리스크(Against the Gods)'에서 인류의 역사는 한마디로 '리스크의 역사'이며, 인류 역사는 근본적으로 어떻게 리스크를 측정하고 이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생각의 발전 과정을 따라 진행되어 왔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불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컨트롤하려는 사고와 의지를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현대와 과거를 구분 짓는 혁명적인 견해를 하나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리스크에 대한 지배(Mastery of Risk)」다.

리스크를 지배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인류의 미래는
신의 변덕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우리는 자연 앞에서 더 이상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 피터 번스타인의 『리스크』 中에서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고 인간 세상에 발생하는 모든 불확실성을 신의 탓 혹은 운명에 따른 결과라고 여겼다. (사극을 보면 항상 무언가 부정적인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이 처음 하는 말이 바로 '하늘도 무심하시지!'이지 않은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불확실성은 컨트롤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런 운명론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와 근대 역사를 거치면서 인류는 이제 숫자를 사용하여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확률(Probability)과 통계(Statistics)에 대한 관념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나아가 이제 인류는 위험을 관찰하고 측정하고 감수하고 줄이려는 여러 행동들을 하기 시작하면서 현대 사회로의 진입을 시도했다. 바야흐로 신들의 권좌와 영역에 도전하는 인류의 대대적인 레지스탕스(La Résistance)가 시작된 것이었다.


# 리스크와 금융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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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금융공학이라는 것은 프로메테우스의 불(리스크)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인류의 도구이다. 이전까지 다루지 못했던 불확실성이라는 녀석을 우리는 금융공학을 사용해 점점 인지하기 시작하였고, 이제 불확실성은 측정이 가능한 리스크로 변환되었다. (어떻게 보면 금융공학이라는 것은 불확실성이라는 입력값을 넣으면 리스크라는 결괏값이 산출되는 함수와도 같다. 그 함수를 개발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지만 말이다.)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들을 수 없었던 것을 들을 수 있게 된 인류는 이제 불확실성에 대해 수동적이었던 기존의 관습과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자. 인간의 공포심은 그것의 실체가 아닌 실체의 불가시성(不可視性)에 의해 더욱 커지는 법이다. 영화 미스트(The Mist, 2007년 作)가 공포감을 불러오는 이유는 괴물이 출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괴물의 실체가 안갯속에 가려져 있어서 무엇이 발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괴물이 보인다면 그것의 약점은 무엇인지 혹은 어떤 것에 취약한지를 생각해볼 수 있게 되고 무섭긴 하겠지만 좀 더 능동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맹목적으로 광신도 아줌마를 믿을 필요도 없고, 다가올 위험에 대해 미리 대비를 할 수도 있다.
안개를 걷어내고 상황을 직시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도구, 그것이 바로 금융공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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