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FT와 시장조성자
HFT(High Frequency Trading), 소위 고빈도매매라고 불리는 알고리즘을 활용한 고속 트레이딩 비즈니스의 영역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사실 이러한 고빈도매매의 대부분은 마켓메이킹(Market Making) 비즈니스다. 시장조성, 이른바 마켓메이킹 비즈니스는 외환딜러처럼 시장에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 즉 양방향 호가(Two-way Quotation)를 제출하여 유동성(Liquidity)을 제공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매수-매도 스프레드(Bid-Ask Spread)를 수익의 원천으로 삼는다.
가령, 어떤 시장조성자가 거래소에서 어떤 주식 100주에 대해 매수 호가를 9.99불, 매도 호가를 10.01불에 제출하면 투자자들은 그 순간 시장에서 9.99불에 가지고 있던 주식을 매도할 수 있고 이 때 다른 사람이 와서 이 주식을 10.01불에 매수하면 시장조성자는 이러한 시장조성에 대한 대가로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의 차이인 0.02불을 가져가게 된다.
# 마켓메이킹 비즈니스와 주문 취소
마켓메이킹 비즈니스는 결국 현재 시점의 수요와 공급을 체크해 어느 가격 레벨에 유동성을 공급할지 결정한다. 만약 마켓메이커가 양방향 호가를 9.99/10.01에 제시했는데 많은 투자자들이 주식이 오를 것 같아 10.01불에 매수하고 아무도 9.99불에 매도하지 않는 상황이 되면, 마켓메이커는 어떻게 행동할까? 당연히 마켓메이커는 현재 시장조성을 하고 있는 가격이 매우 낮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호가를 올리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마켓메이커는 불필요한 재고 위험(Inventory Risk)와 역선택(Adverse Selection)의 문제로부터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목할 점은 마켓메이커가 시장조성 비즈니스를 영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주문을 취소해야 할 것인가이다. 위의 예시처럼 누군가 10.01불에 100주를 시장가로 매수하게 되면, 마켓메이커의 입장에서는 지정가 매도 주문이 체결된 셈이다. 이제 마켓메이커는 호가를 올리기 위해 9.99불에 내놓았던 지정가 매수 주문을 취소하고 새롭게 10.00/10.02에 양방향 호가를 제출한다. 이후 다른 누군가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 100주를 10.00불에 매도하게 되면 마켓메이커의 재고는 사라진다. 또한 이러한 시장 상황을 다시 재반영하기 위해 마켓메이커는 호가를 낮추고자 기존에 나와있던 10.02불 지정가 매수 주문을 취소한다.
결국 종합해보자면 마켓메이킹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이러한 아주 단순한 형태의 시장 조성 전략조차도 자신이 제출한 지정가 주문의 50%를 취소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마켓메이킹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주문을 취소하는 이유는 어떠한 사기 행위를 벌이기 위해서도, 허수 호가를 보여주기 위함도, 스푸핑(Spoofing) 때문도 아니며 순전히 그 자신이 마켓메이커이기에 실시간 수요공급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여기에 현실 세계의 복잡성이 추가되면 마켓메이커의 주문 취소율(Cancellation Rate)은 더욱더 커진다. 한국이야 거래소가 하나지만 미국에는 11개의 증권 거래소가 있으며 여기에 다크풀과 기타 유동성 풀까지를 합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많다. 마켓메이커 입장에서는 비즈니스를 확장하고자 여러 거래소에 동시다발적으로 유동성을 제공하는데, 여기에도 위와 같은 경제적 원리가 적용된다. 시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계속 매수만을 한다면 마켓메이커는 가격을 계속 올려야 하고, 반대로 가격이 빠지는 추세라면 이에 반응해 마켓메이커도 호가 범위를 계속 낮춘다. 결국 어떤 한 거래소에서 10.01불에 100주 시장가 매수가 발생하게 되면, 마켓메이커는 11개 거래소에 제출한 지정가 매수 주문 11개와 지정가 매도 주문 10개를 전량 취소한다. 이 때의 주문 취소율은 무려 95.5%. 그런데 과연 이러한 주문 취소가 사기이거나 허수 호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이러한 주문 취소는 마켓 메이커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대응하기 위한 당연한 행동이다. 마켓메이킹 또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경제성이 없다면 마켓메이커는 시장에 참여하여 유동성을 제공할 유인을 잃게 된다.
# 공부의 중요성, 아주 힐러리어스한 힐러리
몇 년 전에 힐러리 클린턴이 고빈도 매매는 유해하므로 여기에 아주 강려크한 규제 및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대선 공약을 발표했을때, 업계 전문가들은 아주 배꼽을 잡고 웃었던 적이 있다.
이는 그저 HFT 비즈니스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지도 못한 채 정치적 포퓰리즘에 편승하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HFT에 기반한 마켓메이킹 비즈니스는 사실 전통적인 브로커리지 비즈니스를 전자 트레이딩의 방식으로 자동화한 것 뿐이다. 투자자들이 알아야할 점은 이러한 알고리즘 마켓메이킹 비즈니스로 인해 투자자들이 같은 포지션이라 하더라도 이전보다 더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고 포지션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대형 투자 은행들이 잠식하고 있었던 크나큰 유통 마진을 축소시켜 시장을 보다 투명하고 유동적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알고리즘 마켓메이킹 비즈니스인 것이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 보면 핑크 시트(Pink Sheets)로 거래하는 소형주의 수수료가 주가의 절반에 해당하는 50%에 육박했던 점을 감안하면, HFT로 인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거래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시장이 훨씬 더 투명해졌음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결국 HFT의 주문 취소는 마켓메이킹 비즈니스를 영위하기 위한 당연한 행동이며, 오히려 이러한 행동은 매수자와 매도자 간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이지 결코 시장에 혼란을 주려는 행동이 아니다. 모든 비즈니스에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리스크가 있다. 마켓메이커 또한 그들만의 리스크를 테이크하고 이러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다. 결국 본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시장미시구조, 공부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