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금융시장과 시장 미시구조

by 퀀트대디

# 오픈 아웃크라이에서 전자 트레이딩의 시대로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파생상품 거래소 중 하나는 바로 1848년에 설립된 CBOT(Chicago Board of Trade)이다. 미국 원자재 상인들의 비영리 협회로부터 시작된 이 거래소는 원래 그들 사이의 상업적 합의를 이끌어내거나 계약과 관련된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장소였다. 이후 이 거래소에서는 처음으로 선도 거래가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하여 거래소의 시장 참여자들은 특정 상품을 특정 만기에 특정 가격으로 거래할 것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또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선도 거래에 대한 유통시장의 등장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현대적 의미로써의 선물 거래소가 가졌던 가장 초창기의 형태는 바로 이 때 잡히게 된다.


트레이더들은 '피트(Pit)'라고 하는 장소에 모여 오픈 아웃크라이 방식으로 거래를 했다. 여기서 말하는 오픈 아웃크라이(Open Outcry)란 쉽게 말해 인간의 발성을 사용해 호가를 쩌렁쩌렁하게 외치며 거래 의사를 타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가끔 해외 시황 뉴스에 나오는 이런 모습들이 전부 오픈 아웃크라이 방식이다.

m1004667*1024xx3000-1691-0-69.jpg 오픈 아웃크라이 방식의 거래 (출처: Bloomberg)

이런 거래소들은 1880년대 후반까지도 아직 제대로 된 청산결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했었다. 물론 청산결제 시스템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기능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은 정산 차금 결제 방식은 아직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시장 참여자들의 롱숏 포지션이 서로 상계되어 그 차이만 정산되는 일은 거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브로커들은 반대 포지션을 테이크해줄 다른 브로커를 찾아다니거나, 종종 러너(Runner)라고 불리는 주니어 브로커들이 거래 상대방을 찾기 위해 거래소 곳곳을 말 그대로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그래서 이때의 셀사이드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업무적 특성 때문에 사람을 채용할 때 체력과 풍채, 발성을 굉장히 중요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 현대적 의미의 거래소는 더 이상 19세기 거래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오픈 아웃크라이 방식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제 장내 시장에서의 대부분의 거래는 전자 형태의 플랫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호가 및 체결과 같은 모든 시장 이벤트들에는 마이크로초 단위의 타임스탬프가 찍히고 있으며, 뉴욕과 시카고 사이의 광섬유 케이블은 고빈도 매매 회사와 거래소를 연결하고 있다. (아, 시카고 피자 먹고 싶네.) 이러한 고빈도 매매 스타일의 트레이딩이 정말로 가격 효율성을 높여주는지 여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이제 거래소에서 발생하는 거래의 상당 부분이 퀀트 펀드 혹은 고빈도 매매 플레이어들의 몫이라는 점이다.

img_6278d43e66e73.png 2017년 기준 자산군별 알고리즘 트레이딩의 비중 추이 (출처: Goldman Sachs, Aite Group)


# 시장 미시구조란?

결국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거래소라는 플랫폼이 점점 더 전자화, 고도화되면서, 이전까지는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던 틱 데이터와 같은 훨씬 더 마이크로한 거래 데이터의 발생과 수집이 이제 제도권 영역에서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에 따라 퀀트들은 또 하나의 금융공학 영역을 개척하게 되는데, 이 분야가 바로 시장 미시구조이다.


단어의 어원을 보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시장 미시구조(Market Microstructure)는 금융시장의 미시경제적 구조와 관련이 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시장 미시구조 이론의 적용이 굉장히 좁은 영역의 상호작용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사실 시장 미시구조 이론은 2010년 5월에 발생했던 미국 증시 급락 사건, 이른바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와 같은 이벤트, 그리고 그 이후 다른 시장에서도 발생했었던 급작스러운 시장의 폭락과 같은 다소 거시적인 이벤트들에 대한 발생 원인을 설명하는 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금융시장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주요 이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장 미시구조 이론의 특징은 시장에서의 가격과 그 가격의 형성 과정(Price Formation Process)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보다 거시적으로 접근하는 일반적인 퀀트 모델은 가격이라는 것을 입력 변수로 간주하여 탑다운 방식의 하향식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시장 미시구조 이론은 이와 반대이다. 시장 미시구조 이론은 그것과 대조적으로 가격이라는 것을 시장 내에서 발생하는 시장 참여자들 간의 복잡한 상호 과정의 결과물로 인식한다. 즉, 거래(Trade)라고 하는 시장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원초적인 메커니즘에 집중하는 바텀업 방식의 상향식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시장 미시구조 이론은 앤트맨처럼 금융시장의 양자 세계로 들어가 우리가 그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기만 했던 가격이라는 것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만들어지게 되었는가를 탐구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 미시구조 이론에서는 일반적으로 가격의 형성 과정, 거래소의 역할, 시장 참여자들의 종류와 그들의 행동 패턴, 유동성(Liquidity)과 변동성(Volatility), 정보의 비대칭(Asymmetric Information)과 주문 흐름의 불균형(Order Flow Imbalance) 등과 같은 주제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여기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앞에서도 언급했던 틱 데이터(Tick Data)이다. 틱 데이터가 가지고 있는 여러 통계적 성질은 시장의 유동성과 변동성, 그리고 주문 흐름의 불균형을 모델링하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다.


이러한 시장 미시구조에 대한 이해는 비단 마켓메이킹을 수행하는 시장조성자나 고빈도로 매매를 수행하는 트레이더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수행하는 투자자들에게도 중요한데, 그 이유는 결국 시장에서 실제 포지션을 쌓는 일이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라는 것을 필수적으로 수반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패시브 투자나 가치 투자 보다 상대적으로 포지션의 회전율이 큰 퀀트 투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매매 체결 방식의 효율성을 높이고 거래 비용을 관리하려는 노력은 퀀트 투자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핵심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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