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은 왜 실패하는가
10.26 사태를 재구성한 이번 영화는 군부 독재 시절 그 막후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또한 왜 김재규는 그날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한다. 이 영화는 1990년부터 약 2년 동안 동아일보에 연재된 논픽션 기획물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명배우들의 미친 연기력 덕분에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매우 강한 여운을 선사했다.
정말 인상적인 씬들이 넘쳐났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뇌리에 깊게 남았던 대사는 바로 마지막 부분에서 박 대통령을 향한 김 부장의 쓴소리였다.
"각하께서는 혁명을 왜 일으키셨습니까?"
사실 이 대사는 영화 초반부 미국에서 박 부장이 김 부장에게 했던 대사와 수미상관적 구조를 이룬다. 박 부장은 김 부장에게 대체 우리가 왜 혁명을 일으켰는지를 물어보는데, 그가 이러한 질문을 했던 이유는 현재 자신들의 모습이 혁명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 생각했던 모습과는 매우 달랐음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대사는 그들 모두가 그들이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변해버린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들은 처음과 많이도 변해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막걸리 사발 한 잔을 거나하게 들이켠 후 과거를 추억하며 그때가 좋았었다는 회상을 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변한 것일까?
# 타성(惰性) : 그 지독하리만치 중독적인 편향
그들이 변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더 이상 변하지 않아서이다. 즉, 그들은 혁명을 생각하던 당시의 초심을 잊어버린 채 서서히 타성에 젖어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어떤 격정적 의지가 마음속에서 샘솟아 올랐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열기는 서서히 사그라들며, 예전에 초심이 자리하던 공간에 결국은 타성이 단단하게 못 박혀버린다. 인간의 뇌 구조는 각종 인지적 편향에 정말로 쉽게 휩싸일 수밖에 없도록 설계가 되어있는데, 이러한 타성도 인간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편향 중 하나이다. 인간의 행동과 기제에도 관성이라는 게 작용을 하여 자신이 원래 하던 대로 계속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심리적으로 편하기 때문이다. 즉, 타성은 인간에게 있어서 아편과도 같은 존재이며 우리는 그만큼 쉽게 타성에 젖어든다.
이러한 심리적 편향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새해를 맞이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새로운 목표와 계획을 세우지만 결국 연말이 되어 한 해를 돌아보았을 때 그것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사람의 비중은 채 10%도 안 된다. 가령 운동을 하러 피트니스센터에 가면 정말 신기하게도 엄청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사람들이 미어터지는데 주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한산 해지는 이런 패턴 말이다. 이런 패턴을 지수로 하는 금융상품이 있다면 정말로 돈을 벌기가 쉬울 것이다. 피트니스센터의 비즈니스 모델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심리적 편향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한다. 이밖에도 영어회화 학원 및 각종 환급과정 등 결국 꾸준함만이 빛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상품들은 인간의 게으름을 수익의 원천으로 삼는 가장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들이다.
# 상위 10%를 만드는 심리적 항상성
상위 10%와 하위 90%를 구분 짓는 것은 출중한 두뇌가 아닌 꾸준함이라고 한다. 꾸준함은 단순히 똑같은 행동을 의미 없이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이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쇄신하는 것이다. 결국 타성에 젖어 심리적으로 편해지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처음의 의지와 열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가 성패의 열쇠인 것이다. 그들의 혁명이 결국 선혈이 낭자하는 총성으로 귀결된 것도 처음의 마음을 잊어버린 채 그다음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었다.
사실 성공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 내면에 대한 채찍질을 굉장히 잘하는 사람들이다.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보고 나의 초심이 무엇이었는가, 그것을 내가 현재 잊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의지의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 나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매 순간 점검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러한 심리적 항상성(恒常性)이 있어야 한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제프 베조스, 마윈 등 우리가 흔히 아는 성공한 사람들은 이러한 심리적 항상성의 대가들이다. 그들은 항상 그다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며 현실에 안주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인생의 성패는 꾸준함에 달려있다. 하지만 이 꾸준함이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어떤 피상적인 것에 대한 지속이 아니다. 이것은 계속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의 영속성이다.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기에 구조적으로 매우 쉽사리 이러한 편향에 빠지기 쉬우나 한편으로는 이를 극복하고 더 나아지고자 노력하는 부류도 있다. 넷플릭스 화제의 다큐멘터리 「창의적인 뇌의 비밀」의 원작 도서 「창조하는 뇌」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혁신은 '옳은' 것의 문제가 아니라 '다음은 무엇인가'의 문제다. 인간은 늘 미래 지향적인데 거기에는 절대 정착점이 없다. (중략) 이러한 문제에 정답은 없으며 중요한 것은 변화 그 자체다."
- 창조하는 뇌 中
결국 우리는 무식하리만치 꾸준하게 다음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문해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초심을 유지할 수가 있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변화를 거부했던 유럽의 중세 시대가 그 방증이다. 이 시기 인류의 혁신은 잠시 정지해있었다. 초심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 그 방법은 바로 계속해서 자기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생은 매우 역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