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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 드리우는 파이썬의 어두운 그림자

by 퀀트대디

만약 현재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지만 코딩을 할 줄 모른다면?

그 사람은 미래에 코딩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뺏길 수 있는 리스크를 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리스크가 하루아침에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룡이 순식간에 멸종했듯이 곧 이는 불현듯 찾아올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어떤 직무인가를 불문하고 코딩 능력에 대한 니즈는 점점 금융권 전반으로 스며들고 있다.


최근 시티, 제이피모건, 그리고 골드만삭스 같은 주요 외국계 은행들은 주니어 트레이들과 투자 매니저들에게 파이썬을 배우도록 종용하고 있는 추세이며, 채용 사이트들만을 보더라도 최근 들어 코딩을 필수요건으로 제시한 공고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코딩에 대한 니즈는 비단 금융권 IT 직무뿐만이 아닌 프론트 오피스와 미들 오피스에서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일례로, 골드만삭스에서는 트레이딩 데스크를 위해 일일 손익을 관리하는 프로덕트 컨트롤러가 엑셀, VBA, 그리고 파이썬을 결합해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으며,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보다 열정적인 리스크 매니저들은 시장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파이썬에 대한 능숙함을 제고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코딩 능력에 대한 니즈가 미들 오피스에까지 스며들고 있다는 얘기이다.


프론트의 경우는 이미 예전부터 이러한 추세가 형성되어왔기 때문에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시스템 트레이딩 전략 부서의 퀀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능한 코딩 실력자들을 채용하기 위해 혈안이었으며, 일례로 모건스탠리 뉴욕의 파생상품 트레이더 채용공고에는 '아주 유능한 프로그래밍 스킬 보유자'를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또한 시티은행에서는 시니어 주식 트레이더를 채용하기 위한 조건으로 최소 2년 이상의 프로그래밍 경험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프로그래밍을 통해 프론트 오피스에서 사용하기 위한 편리하고 효율적인 위험관리 도구들을 스스로 개발하여 업무의 효율성과 수익성 향상에 보탬이 되고자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프로그래밍과 거리가 다소 멀어 보이는 기업금융, M&A 같은 IBD 포지션들은 어떨까? 안타깝지만 사요나라다. 이쪽 분야에서도 코딩을 모르는 것에 대한 리스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 미국, 유럽 쪽의 IBD 인턴 및 채용공고에는 코딩에 대한 일언반구 언급도 없으나, 놀랄만한 점은 최근 도이치뱅크 호주 지점은 내년 채용연계형 인턴을 뽑는 공고에 C++, 파이썬 혹은 VBA와 같은 코딩에 대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추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글로벌 전역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금융권은 어떻게 될 것인가? 흥선대원군의 후손들답게 아직 제도권 금융에서는 이러한 선진문물과 문화를 쉽사리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휴먼의 매뉴얼한 노가다 비용이 아직까지는 싸기 때문일까. 오히려 인터넷을 돌아다녀보면 스마트해지고 있는 개인투자자들이 파이썬과 알고리즘 트레이딩에 대해 더욱더 적극적으로 배우고 이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으며, 결국은 한국의 금융권도 역치를 넘어선 순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경영진의 목표는 수익의 최대화와 비용의 최소화인데, 코딩이라는 것이 같은 돈을 주더라도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코딩 없이도 충분히 일을 잘 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코딩이라는 스킬을 장착하는 것은 토르가 묠니르에서 스톰브레이커로 바꾸는 것처럼 매우 강력하다. 경영진들이란 돈이 된다면 원숭이라도 가져다 쓰는 사람들이며, 그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그들이 이러한 변화를 마다할리는 없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은 필연적이다.


메시지는 명백하다.

코딩을 모르면, 점점 금융권으로의 문은 좁아질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의 시간적 여유는 아직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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