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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트대디 Mar 04. 2021

퀀트 커리어? 석박사가 아니라도 쫄지말자, 하지만

제프리 라이언(Jeffrey Ryan)은 금융공학 분야에서 20년 이상의 경력을 쌓았고, 세계적인 헤지펀드인 시타델(Citadel)에서만 7년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R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해봤다면 알 수도 있는 quantmod라는 패키지 또한 이 사람의 손에서 탄생하였다.


20년이라는 세월은 커리어 관점에서 꽤 긴 시간이다.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퀀트들을 만나고 또 인터뷰해왔다. 만약 퀀트로써 성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답해줄 수 있는 어떤 이가 있냐고 묻는다면, 아마 라이언이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적임자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가 만약 퀀트가 되기 위해서는 사실 석박사가 필요 없다고 말한다면 믿기겠는가? 실제로 그는 퀀트가 되기 위해서는 석박사가 필수적이지는 않다고 말한다. 자신과 같이 일했던 최고의 사람들 중 몇몇은 오직 학사 학위밖에 없으며, 퀀트 커리어에서 중요한 것은 석박사 학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 및 어떤 문제던지 내가 다 씹어먹겠다 하는 공격성, 즉 어그레시브함(Aggressive)이라고. (어쩌면 오히려 학부생이기 때문에 이런 어그레시브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가방끈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지니 말이다.)

또한 그는 최근 들어 그 수가 엄청 많아진 1,2년짜리 단기 금융공학 석사과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그러한 프로그램들이 좋은 사람들을 배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과정을 수료한 사람들이 실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준비가 되어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석박사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실무라는 정글에 진입하는 순간 모든 것이 0으로 리셋된다. 학사, 석사, 박사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평평한 운동장인 셈이다. 물론 석박사 경험이 있다면 남들보다 리서치 과정에 대한 경험이 조금 더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 학계에서 경험한 과제들은 사실 아주 예쁘게 생긴 2차원 정사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것과 같다. 이와 달리 실무는 12차원에 존재하는 키메라를 때려잡아야 하는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석박사 학위가 있어도 실무에 오면 처음부터 학습 곡선을 스스로 타고 올라가야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또한 학계와 실무가 다른 점은, 학계에서는 논문 결과가 잘 안 맞는다고 해도 길거리에 나앉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무에서 리서치 결과가 맞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손실로 귀결된다. 금융시장에서는 공부한 것으로 실제 돈을 벌어내야 한다. 못 벌면? 'OO 씨는 아쉽게도 내년에 우리와 함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라는 쓸쓸한 메시지만 받게 될 뿐이다. 연구가 수익 창출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 이 업계의 생리이다.



그렇다면 만약 퀀트 커리어를 쌓고 싶다면 그의 조언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그가 석박사가 필요 없으니 아예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석박사 과정은 그 나름대로의 엣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금융공학 석사 가면 거기서 알아서 떠먹여 주겠거니~하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책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하다가는 오히려 산전수전 다 겪어본 경험이 있는 잔뼈 굵은 학부생들에게 패배하기 십상이다. 만약 이미 석박사행을 택했다면 그곳에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의 생산성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끌어올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어디 가서 명함이라도 내밀어볼 것이 아닌가. 등록금도 어디 한두 푼인가. 차 한 대 뽑아서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뜨리는 격인데 말이다. 석박사 있다고 모셔가는 시대는 진작에 끝난 지 오래다.


학부생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쫄지 말자. 어차피 이 바닥은 양자역학이나 입자물리학 같은 걸 다루는 곳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돈을 다루는 곳이며, 실제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또한 석박사를 못 가서 공부를 못한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구글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인터넷에는 공부할 책과 논문들, 유튜브 영상, 블로그, 기사들이 넘쳐난다. (물론 이것들을 소화하려면 영어는 필수다.) 여건이 안 돼서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라 찾을 의지가 없어서 공부를 안 하는 것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문과라서, 나는 컴공이 아니라서'라는 이유로 수학이나 코딩에 대한 공부를 하지 못한다는 것도 사실은 공부를 하기 싫기 때문에는 아닐까. 퀀트란 결국 경제, 경영, 심리학, 사회학, 철학, 수학, 산업공학, 컴퓨터공학 등 여러 학문들이 융합되어 있는 일이다. 따라서 문과냐 이과냐 혹은 전공이 뭐냐 등의 말들은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건 의지와 패기이다. 그 패기가 어쩌면 앞서 말한 어그레시브함이다. 자기 주도 학습이라는 것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바로 이 어그레시브함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에너지를 만든다. 모든 것은 결국 동기부여의 문제이다. 스스로 개척해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더더욱 퀀트로의 커리어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따라서 퀀트로의 커리어를 목표로 한다면 이와 관련된 프로젝트들을 직접 해보는 경험들이 중요하다. 결국 실무라는 것은 문제 해결 과정의 연속이다. 문제 설정부터 자료와 데이터 수집, 참고문헌 공부, 실제 구현을 통한 결과 도출이라는 프로젝트 사이클을 경험해보는 것이 많이 도움이 된다. 굳이 새로운 프로젝트일 필요도 없다. 어차피 주니어 퀀트들이 하는 일도 책과 논문 등에 있는 전략들을 스스로 구현하여 복제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며,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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