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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Dec 01. 2020

#9. 글쓰기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글쓰기의 비법은 딱 한 가지이다. 생략하는 것이다.
로버트 스티븐슨, <보물섬>의 작가



먼 옛날 왕이 있었다. 사랑하는 백성들이 모두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석학들에게 연구를 지시했다. 전국에서 모인 석학들은 세상의 모든 방식을 연구했다. 12권에 달하는 저서를 만들어서 왕에게 보고했다. 왕은 바쁜 백성들이 언제 읽겠냐며  ‘더 줄여 오라’고 했다. 석학들은 12권의 책을 한 권으로 줄였다. 왕은 다시 줄여오라고 명령했다. 석학들은 종이 한 장 분량으로 압축했다. 왕은 다시 한 줄로 줄이라고 다시 명했다. 석학들이 마지막으로 줄인 한 줄의 문장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였다. 왕은 독자인 백성들을 위해서 쉽고 이해하기 좋은 컨텐츠가 필요했던 것이다. 



신입사원 때는 한 두가지 일만 주어진다. 내용이 조금 복잡해도 천천히 이해하면서 따라갈 수 있다. 복잡한 보고 내용을 천천히 볼 시간이 있다. 상사가 되면 처리해야 하는 일이 늘어난다. 하루가 빡빡하다. 임원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보낸다. 하루에 결재하고 점검해야 하는 보고서 양이 상당하다. 회사에서 나오는 경영전략, 경영환경 분석, 산업분석 자료도 항상 숙지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당신의 상사이다. 많은 양의 보고서는 상사에게 부담이 된다.


기업들도 한 때는 양으로 승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인정받던 시절이다. 보고서도 양으로 승부했다. 필자의 회사에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최고 경영층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참고 자료를 핸드카트 가득 작성시킨 임원이 있었다. 직원들은 엄청난 양의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 매일 야근해야 했다. 경영층에게 보고하지도 않을 보고서를 만들어 냈다. 혹시 필요할지 몰라서 만드는 것이었다. 대량의 보고서를 양산하고, 야근을 많이 하면 일 잘한다고 인정받던 시기였다. 일의 질이 아니라, 일의 양으로 평가를 받던 시기였다.


지금은 달라졌다. 양이 아니라, 컨텐츠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알아버렸다. 보고서의 양이 아닌 보고서에 담긴 컨셉이 중요하다. 단순한 근면성보다 창의적인 게으름이 인정을 받는 시대이다. 보고서 양을 많이 작성할 필요가 없다. 아니 많이 작성해서는 안되는 시대가 되었다.


양의 시대에는 생산자 중심으로 작성하였다. 읽는 상사 입장이 아니라, 글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정보를 작성하면 됐다. 질의 시대로 이동하면서 관점이 달라졌다. 철저하게 글의 소비자를 고려해야 한다. 글의 소비자인 상사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압축해야 한다. 필요한 정보와 불필요한 정보를 선별해야 한다. 과감하게 정보를 버려야 한다.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글쓰기 주제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보고서 양이 줄었다고 만만하게 보면 안되는 것이 직장인의 글쓰기이다.  



대통령의 글쓰기에서도 간결함이 중요하다.           

                   

○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강원국 작가의 <대통령의 글쓰기>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글을 잘 쓰는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연설문을 담당하는 강원국 비서관에게 글쓰기 노하우 33가지를 전수했다. 그중에 6번이나 간결한 글쓰기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단순함이 기술을 넘어선다. 


아이폰은 복잡한 기능을 버튼 하나로 담아낸다. 디자인도 단순하다. 최소한의 모델만을 생산한다. 다양한 모델을 양산하지 않는다.  단순함의 극치미를 보여주는 아이폰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삼성 스마트폰에 비해 다소 불편해도 아이폰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열광하는 팬들이 있다. 기술을 넘어서는 단순함에 매력이 있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들을 첫 화면에 담기 위하여 애를 쓴다. 구글은 다르다. 구글의 첫 화면은 단순함 그 자체다. 검색창이 화면 중앙에 위치할 뿐이다. 고객들이 구글로 몰려온다. 단순함에 끌리는 것이다.


단순한 상품과 컨텐츠에 사람들이 끌리는 것이다. 우리의 글쓰기를 어떻게 간결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단순하게 만들 수 있을까? 3가지를 같이 생각해보자.   




첫째, 글쓰기에서 군살을 빼자 


체중이 나가면 듬직해 보여서 좋다고 한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적정 체중'이라는 것이 있다. 키에 맞는 적정한 몸무게가 있다는 것이다. 체중이 너무 많이 나가면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의학의 발전을 통해서 알고 있다.  


직장에서도 글쓰기의 양이 많을수록 좋다고 한 시절이 있었다. 양이 많을수록 성실함이 드러나는 글이라고 착각을 했다. 지금은 글쓰기에도 적정한 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많은 양의 글은 쓰는 사람에게도, 읽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에게도 독이 된다. 글쓰기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상사가 보고 내용을 빠르게 전달받기 위해서는 몇 자를 쓰면 될까. 뇌는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정보 덩어리가 3~4개에 불과하다. 이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쓸 수 있는 시간은 4~5분에 불과하다. 한 번에 읽기 좋은 분량은 평균 1000자 정도라고 한다. 글을 많이 쓴다고 해서 상사를 설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분량이어야 상사가 읽기 편하다.


초안이 완성되면 마음먹고 글쓰기 다이어트에 들어가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처럼 짧고 간결하게 수정하는 것이다. 군더더기가 있다면 과감하게 삭제한다.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접속사는 과감하게 삭제한다.  퇴고는 삭제와의 싸움이 되어야 한다.  



둘째, 파워포인트의 노예에서 탈출하자. 


대한민국 직장인은 수많은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글쓰기를 시켜보면 다들 어려워한다. 필자의 생각에는 파워포인트 때문이다. 최근 직장 보고서들을 보면 대부분 파워포인트로 작성한다. (다만, 데이터를 다루는 재무와 같은 특성 부서는 엑셀을 선호한다.) 파워포인트는 시각적 정보를 중심으로 작성한다. 보기 좋다는 뜻이다. 의사소통 측면에서 효율적인 장점은 있다.  


문제는 간단한 보고조차 파워포인트로 한다는 것이다. 모양과 디자인을 꾸미는데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형식에 치중하다 보니 내용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진다. 컨텐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과 디자인에 더 신경을 쓴다.


최근에는 파워포인트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회사가 늘어났다. 2016년 현대카드는 사내에서 파워포인트 보고서를 금지시켰다. 두산그룹과 퍼시픽아모레도 동참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파워포인트보다는 워드 보고 또는 메일 보고를 권장하고 있다. 아마존(Amazon)도  파워포인트를 없애고  '6쪽 보고서'  방식을 채택했다. 화려한 파워포인트 디자인 이면에 내용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를 막을 수 있도록 글로 쓴 보고를 채택하고 있다.  


파워포인트의 형식에 집착하지 말고, 내용에 집중해보자. 사실 형식에 집착한 보고서는 바로 알 수 있다. 실행할 때 드러난다. 제대로 실행이 되지 않는다. 내용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보고서가 실행이 되기 위해서는 탄탄한 내용이 기본인 것이다.   



셋째, 단순하게 써라 


'단순한 것이 최고가 되는 방법이다.' 복잡하게 글쓰기를 하려는 당신에게 간곡하게 이야기한다. 단순하게 써라. 필자는 그룹에서 아이디어 혁신대회 심사위원을 한 적이 있다. 짧은 기간에 많은 양의 글쓰기들을 심사해야 했다. 어떠한 출품작들이 본선에 올라갔을까. 그렇다. 단순해야 한다. 너무 복잡한 내용은 심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단순한 글이었다.  


화려한 글쓰기는 문학에서나 필요한 것이다. 직장에서는 심플하게 쓰면 된다. 짧게 쓰면 된다. 사실 필자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다. 후배가 최근에 필자의 글을 보고 이야기해주었다. 필자의 글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단순하게 쓰기로 다시 마음먹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보다는 쉽고 단순한 표현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용이 부실한 두꺼운 보고서를 좋아하는 상사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보고서를 마무리하면서 불필요한 내용이 없는지 철저하게 점검하자. 애매한 내용은 안쓰는 것이 좋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만 고르고 골라서 쓰자. 양을 채우는 글쓰기가 아니라. 내용을 채우는 글쓰기를 하자. 그러면 상사를 설득하는 글쓰기에 다가설 것이다. <끝>



※ 이 글은 완성이 아닙니다. 열려있는 결론입니다. 어떠한 아이디어나 조언이라도 좋습니다. 언제든지 댓글이나 이메일로 말씀해주세요. 당신과 같이 이 글을 완성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quarter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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