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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Mar 10. 2021

고시잡지는 아버지의 편지를 품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생살이에서 실현하지 못한 것을 아들이 이루어주기를 바랐다.
게오르규 <다뉴브 강의 축제>


1995년 나는 군인이었다. 부대에서는 동계훈련을 다녀왔다. 군장을 정리하고 샤워를 한 후 내무반에서 쉬고 있었다. 내무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중대장이 들어왔다.


"김 병장! 집에서 전화 왔다. 행정실에 가서 전화받아라."


사람에게는 직감이라는 것이 있다. 좋지 않은 전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았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것이었다. 부대에서 휴가를 미리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계셨다. '유독가스에 의한 뇌손상'이라고 했다. 중환자실에 계신지 5일 만에 일반병실로 내려왔다. 의사는 뇌손상 범위가 커서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살아나더라도 회복은 어렵다고 했다. 식물인간에 가까운 전신불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정상적이었던 인생이 끝난 것이다. 그때 아버지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정기 휴가 10일을 병원을 지켰다. 군인 신분이라 부대로 복귀를 해야 했다. 부대로 들어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머니와 고등학생인 동생을 남겨두고 부대로 복귀를 해야 했다. 부대로 돌아와 개인물품을 정리하는데 사물함(관물대)에 그동안 아버지가 보내신 열댓 권의 '고시잡지'가 빼곡하게 쌓여있었다.


그때의 잡지는 아니지만 이런 잡지였다


아버지는 내가 검사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셨다. 그래서 내가 원치 않았던 법대로의 진학을 고집하셨다. 큰아들이 일단 법대를 가면 공부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현실은 달랐다. 대학생이 된 후에 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공부는 뒷전이었다. 동아리 활동과 술로 대학 2년을 보냈다. 아버지는 나를 볼 때마다 고시공부를 하라면서 나무라셨다. 너무 답답했다. 아버지를 볼 때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부자의 마지막 대화는 고시공부에 대한 것이었다. 나도 아버지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진로를 두고 부자간에 언쟁을 벌였다. 아버지를 피해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로 도망가자.' 입대를 하는 것이 만족스러웠던 몇 안되는 사람이었지 않을까 싶다. 군생활에서는 아버지의 잔소리(고시공부해라!)가 없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군에 있는 것이 자유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버지의 소포가 오기 시작했다. 뜯어보니 '고시잡지'였다. 다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까지 하실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매달 오던 아버지의 소포를 뜯어보지도 않고 사물함에 처박아두었다.


그 고시잡지였다. 이제는 답답함보다는 애틋함이 몰려왔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아들이 검사가 되기를 원하셨을까?' 한 번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질문이다. 그저 아버지의 강요가 싫어서 피하려고만 했다. 제대로 마음을 열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 고시잡지를 한 번 열어보자!'


소포봉투를 뜯어서 고시 잡지를 손에 잡고, 휘리릭 넘겨보았다.

'어?' 잡지 사이에 은행에서 바꾼 듯한 신권이 들어있었다. 잡지의 말미에는 아버지가 쓰신 편지가 한 장씩 들어있었다. 혹시나 해서 다른 고시잡지도 허겁지겁 뜯어보았다. 매달 보내주신 고시잡지에는 사이 사이에 넣어두신 용돈과 편지가 들어있었다. 감정이 북받쳐 내무반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아들이 군에서라도 마음을 바꾸시기를 그렇게도 바라셨구나. 고시가 뭐라고 이렇게 간절하게도 원하셨을까?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대학을 나오지 못한 아버지는 법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셨다고 한다. 법을 알지 못해 당했다고 생각하시고 아들은 검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주기를 원하셨다고 한다. 철이 없던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리 없었다.


우리 부자(父子)의 마지막 대화는 불편했다. 내가 아버지를 피해 군대로 도망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기억속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리고 다시는 아버지와의 대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10년을 침대에 누워 투병하시다가 내 품에서 돌아가셨다.






나의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생살이에서 실현하지 못한 것을 아들이 이루어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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