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라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내가 태어난 곳이다. 유년시절 벌교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온 가족이 서울로 올라온 것이 벌써 40년 전이다. 벌교 인구는 현재 1만 2천 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 작은 마을이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무대가 되어 유명해졌다. '꼬막'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꼬막이 그리도 지겨웠다.
오늘 지도 검색을 하면서 내가 살던 곳이 바닷가와 그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읍내에는 비릿한 바다내음이 가득했다. 벌교역 앞에는 '꼬막'과 '짱둥어'같은 해산물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넘쳐났다. 우리 집 밥상에도 해산물이 그득했다. 지금 생각하면 건강한 밥상이지만, 그때는 해산물의 비릿한 맛이 그렇게 싫었다. '짱둥어탕'은 가시가 많아서 목에 가시가 걸리면 한동안 고생하고는 했다. 특히 꼬막은 '꼬막탕', '꼬막조림', '꼬막전', '꼬막비빔밥' 등 질리도록 먹었던 것 같다.
내가 선택해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된 후로는 꼬막은 먹지 않았다. 그냥 꼬막이 지겨웠던 것 같다.
<꼬막 정식 /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아빠표 꼬막비빔밥
(내가 글친구라고 생각하는) 브런치 작가님이 쓰신 꼬막비빔밥에 대한 글을 보다보니, 유년시절 기억 속 입 맛이 되살아났다. 30여 년 만에 꼬막을 타의가 아닌 자의로 찾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꼬막을 주문했다.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피조개)... 꼬막 종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고향의 뻘을 품은 꼬막을 빡빡 손질한다. 비린내를 잡기 위해 파, 생강, 소주 약간을 넣고 보글보글 데치는 기분으로 삶는다. 양파, 파, 당근, 청양고추, 마늘을 다각다각 썰어 간장과 고춧가루를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 고소한 참기름을 휘리릭 두르고, 깨를 솔솔 뿌려 아이들에게 내놓았다. 꼬막과 양념장만 있는 단촐한 꼬막비빔밥이다.
나는 음식을 만들 때 유튜브를 많이 참조한다. 실패를 걱정해서다. 꼬막비빔밥은 생각나는대로 만들었다. 고향이 이식해준 기억 속 입맛을 따라 만들었다.
'아빠표 꼬막비빔밥은 아이들에게 어떤 맛일까?', '잘 먹을까?' 은근히 걱정됐다. 생각보다 잘 먹는다. 초6, 초4인아이들은 맛있다면서 양 볼에 비빔밥을 한가득 우겨넣고 먹는다.
"아빠 고향이 벌교라는 곳인데, 여기가 꼬막으로 유명해!" 슬쩍 아빠 고향을 자랑해본다.
아이들은 아빠 고향이 어딘지 관심 없다는 듯 표정이다. 그저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맛있는 꼬막비빔밥 먹는데 집중할 뿐이다.
아빠가 지겨워서 안 먹던 꼬막을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소개했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꼬막비빔밥, 자주 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