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원 발령
김 선 과장 명 : 멕시코법인 (2014.8.15일부)
솔직히 실망했다. 커리어로 주재원을 염두에 두면서 기왕이면 미국 법인이나 유럽 법인으로 가기를 희망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미국의 뉴욕, LA, 라스베이거스 같은 유명한 도시들도 가보고 싶었다. 로마와 그리스처럼 유구한 역사가 가득한 유럽에서 주재원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멕시코라니'
멕시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전무했다. 마약 마피아로 인해 무서운 나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주재원으로 간다는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호감이 없는 사람과 억지로 연애하는 기분으로 주재원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멕시코에서 주재원 5년은 후딱 흘러갔다. 쫓기듯 주재기간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했다. 멕시코는 그렇게 내 인생에서 잊혀지는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멕시코가 아른아른거린다. 멕시코 관련 기사가 뉴스에라도 나올라치면 고향 소식이라도 만난 듯 반갑다. 유튜브에서 멕시코 콘텐츠를 보면 반가운 마음에 클릭해본다.
얼마전 한국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아이들과 어묵을 먹는데 스페인어가 들려왔다. 한국에서 들리는 스페인어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반가운 마음에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멕시코 사람이 어묵을 먹고 있었다.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얼마 안 되지만 어묵 값을 같이 계산했다. '한국인 친구의 선물'이라고 생각해달라면서 서투른 스페인어로 인사를 나누었다. (아내는 스페인어를 못한다면서 아이들과 나를 남기고 도망갔다.)
멕시코 추억들이 더욱더 진한 향기로 다가온다. 멕시코 기억을 다시 담고 싶어졌다. 그래서 멕시코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을 글로 쓴다. 나는 왜 멕시코를 추억하는가? 나는 왜 멕시코를 제2의 고향처럼 반기는가?
해외에 가면 처음에 고생하는 것이 현지 식재료와 음식문화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특유의 향채냄새에 한동안 고생했다. 멕시코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주재원과 가족들이 현지 음식 문화에 쉽게 적응했다. 양질의 고기, 신선한 야채, 열대 과일을 저렴한 가격에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음식 천국이 따로 없었다.
멕시코 대표 음식으로 '따꼬(Taco)'가 있다. 또르띠아라는 얇은 옥수수 전병, 밀전병에 고기와 같은 속재료를 넣어 쌈처럼 먹는 음식문화다. 한국인이 고기를 먹을 때 상추쌈을 싸 먹는 것과 결이 닿아있다. 따꼬는 한국에서도 은근히 생각이 난다. 밀전병 사이로 고기와 살사 소스가 어우러지던 맛을 생각하면 아직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한국인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음식이다.
한국의 소울 푸트 해장국이 멕시코에도 있었다. 멕시코에서도 술자리는 있었다. 술 마신 다음날 아침 얼큰한 해장국 한 그릇이 간절했다. 그러다가 '메누도'라는 멕시코 해장국을 만났다. 소 내장, 멕시코 고추, 양파, 마늘, 야채를 넣어 푹 끓인 국이었다. 얼큰한 국물 한 숟갈이 들어가면 속이 확 풀렸다. 이국땅에서도 숙취로 힘들 때 속을 달래주었던 멕시코 음식이다. (멕시코시티에서는 '빤시따'라고 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속정은 있어도 겉으로 잘 내색하지 않는다. 유교사회를 거치면서 성인이 감정을 속으로 갈무리하는 것에 익숙하다. 양반들은 점잖아야 한다는 정서가 있다.
멕시코는 달랐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아침에 만나면 허그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사람을 반기는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았다. 한국에 복귀해서도 한동안 동료들에게 허그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한국의 동료들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 동료들에게만 했다.)
멕시코에서 5년 동안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았다. 멕시칸들은 자기의 일처럼 손을 걷어붙이고 도와주었다. 물론 일부 나쁜 사람들도 있었지만, 따뜻하게 한국인 친구를 대해준 멕시코 친구들 덕분에 멕시코가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영어는 30년을 공부했다. 그래도 외국인을 만나면 울렁거렸다. 머리가 하얘졌다. 외국인 VIP 앞에서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하다가 엉망이 되었던 기억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불킥하게 된다.
스페인어는 달랐다. 멕시칸을 만나서 스페인어 몇 마디만 해도 그렇게 반가워했다. 팀원들은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팀장을 좋아해 주었다. 소통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언어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던 언어다. 멕시칸들과 대화가 즐거웠다.
업무상 멕시코 노동조합 위원장과 교섭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통역의 도움을 받았다. 2년 차가 되면서
조금씩 스페인어로 현지인 위원장과 대화에 참여했다. 멕시칸 위원장이 스페인어를 더듬더듬하는 한국인 주재원을 그렇게 좋아해 주었다. 조금 껄끄러운 이슈들도 필자의 어눌한 스페인어 설명을 들으면 노조위원장이 살짝 양보해주기도 했다.
'군에서 제대할 때 부대 방향으로 오줌도 안 싼다'는 이야기를 한다. 멕시코에서 귀국을 할 때는 멕시코는 다시는 안 가고 싶을 줄 알았다.
요즘 가족들은 멕시코애서의 추억을 자주 이야기한다. 즐겨 먹었던 멕시코 간식, 깐꾼(Cancun)의 아름다웠던 해변, 멕시코 친구들을 이야기한다. 멕시코에서 살았던 기억이 싫지는 않았나보다.
멕시코에 있을 때 소득세와 연금을 납부했다. 아주 소액이지만 은퇴 후 멕시코에 가면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있다.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나를 위해 연금을 준다는 곳이 있다고 하니 왠지 더 고향 같은 기분이다.
퇴직을 하면 멕시코로 일 년 살기를 하러 가고 싶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멕시칸 아저씨와 어수룩한 스페인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살사소스 가득 머금은 따꼬 한 입하고 싶다.
※ 영상 참고 자료
백종원 씨가 따꼬를 정말 맛있게 먹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CbjwLQxdYqQ
4:40초경 백종원 씨가 메누도를 한 입 먹어보고, '아따'. '어우 끝내준다', '이건 한국이에요'를 외친다.
https://www.youtube.com/watch?v=0JHevd49P4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