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만에보는 멕시코 역사 이야기
잘 알고 있다. 다른 나라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솔직히 지루한 일이다. 전공자들도 오랜 시간을 들여서 연구하는 것이 그 국가의 역사 공부이다. 그래도 멕시코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역사를 알아야 멕시코의 오늘을 이해할 수 있다.
멕시코 역사는 숫자 하나를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300'이다. 스페인 식민지 역사가 300년이다. 일제 36년을 경험한 우리는 아직도 일본의 잔재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금귤(금귤), 고로케(크로켓), 다시(국물), 스까다시(기본안주), 기스(흠집), 앵꼬(연료부족), 만땅(가득), 나시옷(민소매옷), 미싱(재봉틀), 땡땡이 무늬(물방울 무늬), 십팔번(애창곡), 간지난다(멋지다), 종지부(마침표), 가라(가짜) 등 아직도 수많은 일본식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 식민지 역사가 300년이니 오죽했겠는가. 멕시코 역사는 스페인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멕시코는 그들 고유 언어를 잃어버렸다. 스페인어가 공용어이다. 종교는 스페인에서 들어온 카톨릭이 대부분이다. 300년 동안 멕시코 인종도 사라져깄다. 멕시코 원주민 여성과 백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메스티소(Mestizo)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멕시코 역사를 3등분 해본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기준으로 구분하면 이해가 쉽다. 이렇게 나누는 역사학자는 없다. 내 맘대로 분석법이다.
첫 번째가 식민지 이전 시대이다. 멕시코 국립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고대 사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페인 식민지를 거치면서 훼손되고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도 일제 강점기가 300년이나 유지되었다면 삼국시대, 고려, 조선의 역사가 대부분 유실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멕시코는 기원전 2만 년경부터 인간이 거주한 흔적이 있다고 한다. 남겨진 역사적 유물들을 연구해보면 올멕 문명, 마야 문명, 아즈텍 문명이 발전해왔다.
멕시코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가장 많이 접한 것이 아즈텍 문명이다. 1200년대에 북방에 살던 민족들이 멕시코로 이주한다. 이들이 아즈텍인들이었다. 아즈텍 부족 전설에는 독수리가 선인장 위에 앉아있는 땅에서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전설이 있었다. 이동하던 중 선인장 위에서 뱀을 먹고 있는 독수리를 보고 신의 뜻으로 생각하여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 그것이 지금의 멕시코시티 위치이다. 이러한 아즈텍 건국신화가 멕시코 국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몬떼수마는 1502년부터 1520년까지 아즈텍을 통치한 제9대 황제이다. 몬떼수마와 아즈텍 인들은 '턱수염을 가진 백인 신이 와서 제국을 통치할 것이다'라는 신탁을 가지고 있었다. 두려움과 기대를 가지고 백인 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1519년 스페인에서 에르난 꼬르떼스가 멕시코에 상륙했다. 턱수염을 가진 백인 에르난 꼬르떼스가 실제로 나타난 것이다. 꼬르떼스는 아즈텍 인들의 신탁을 알고 있었고 이를 멕시코 정복에 이용했다. 꼬르떼스가 이끄는 군대는 아즈텍 내분과 신화를 이용하여 전투를 벌인 끝에 멕시코 원주민들을 정복했다. 1521년에 마지막 황제 꾸아우떼목(Cuauhtemoc)을 처형하고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켰다.
아즈텍인들은 나중에 꼬르떼스가 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정복자들이 원주민들을 쉽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멕시코 원주민들의 총과 대포에 대한 공포심 덕분이었다. 그들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한 최첨단 신무기였다.
스페인은 멸망된 아즈텍 도시 '테노치티틀란' 위에 멕시코시티를 건설했다. 최근 멕시코시티는 도시를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땅을 파면 아즈텍 문명의 유산이 발견된다고 한다. 멕시코시티 지하에는 아즈텍의 도시 테노치티틀란이 그래도 잠들어 있다. 도시의 지하 전체가 문화유산이다.
1521년 이후 약 300년간 스페인 식민지 시대가 계속되었다. 스페인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가톨릭교가 보급되었다. 멕시코 원주민과 스페인인 사이에 혼혈이 진행되었다. 300년간 멕시코 문화 지우기가 시행되었고, 스페인의 문화가 자리 잡았다.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가 30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되면서 멕시코는 인종적으로 크나큰 변화를 일으켰다. 백인, 원주민, 흑인 간의 결합으로 탄생한 혼혈이 멕시코인의 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현재 메스티소Mestizo로 대변되는 혼혈인들은 멕시코 전체 인구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비중은 더욱 높아져서 멕시코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요컨대 멕시코는 미국처럼 토착민과 이민자가 함께 공존하는 다원성의 사회를 이룬 것이 아니라, 원주민과 이주자가 하나로 융합하여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사회와 인종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용광로’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나라인 셈이다.
<멕시코,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 이준명 저
학교 다닐때 세계사에서 메스티소(Mestizo)와 물라토(mulatto)가 시험문제로 자주 나왔던 기억이 난다. 메스티소(Mestizo)는 유럽 백인과 아메리카 토착민의 인종적 혼혈인을 지칭한다. 물라토는 백인과 흑인의 혼혈을 말한다.
메스티소는 '혼합', '혼혈'을 뜻하는 라틴어 믹스티키우스(mixticius)에서 유래했다. 백인과 원주민의 피가 섞어 태어난 아이라는 것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주인 여인들을 겁탈하기도 하고, 아내로 맞이하기도 했다. 무려 300여명의 메스티소 자녀를 가진 백인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멕시코 인구의 60% 이상이 메스티소다. (멕시코 인구 통계를 정확하게 믿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멕시코에서 사람들을 보면 피부색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검은 쪽에 가까운 사람도 있고, 완전히 백인으로 보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미국과 달리 피부색에 의한 차별이 없었다. 피부색이야 어찌 되었든 모두 멕시코인이라는 연대 이식이 있다. 물론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백인이 멕시코 부의 80%를 차지한다는 통계가 있다. 부와 교육이 대물림 되면서 빈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한국어도 지역에 따라 사투리가 있듯이, 스페인어도 국가별로 다른 특색이 있다. 첫 번째는 특유의 발음이다. 각 국가별로 C, S, ll 발음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멕시코도 본토 스페인과는 다른 발음들이 있다.
두 번째로 각 국가 특성에 따라 다른 표현들이 발달한다. 상대방과 이야기를 할 때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한국어에서는 ‘네?’ 또는 ‘잘못 들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영어는 ‘pardon?’이라고 한다. 멕시코에서는 ‘Mande?(만데)’라는 말을 쓴다. 회사나 거리에서 정말 많이 들을 수 있는 단어다. 스페인어를 처음 배울 때는 ‘Mande’가 ‘먼데(뭔데)’로 들려서 좀 한국어와 비슷하다는 생각에 재미있게 공부했던 단어다.
mande는 mandar(명령하다)의 명령형 동사 변화를 한 것으로 말 그대로 해석하면 Mande!는 ‘명령하세요’ 라는 뜻이 된다. 식민지 기간 중에 스페인 정복자/농장주들이 명령하고 지시를 할 때, 못 알아들으면 ‘다시 명령해주세요(mande)’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언어에 녹아있다고 한다. 식민지 문화가 언어에 영향을 미쳐서 지금까지도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좀 씁쓸하기도 했다. 당연히 정복자 지위였던 스페인에서는 ‘Mande!’는 표현을 이렇게 사용하지 않는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 독립 전쟁, 프랑스혁명, 나폴레옹 전쟁의 영향을 받아 멕시코 토착민 사이에도 독립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멕시코에서도 1810년 9월 15일 미겔 이달고 신부를 중심으로 스페인 타도를 외치는 멕시코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다. 10여 년에 걸친 혼란 끝에 1821년 9월 15일, 독립 지도자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가 멕시코시티에 입성하였고, 멕시코 독립을 선언했다.
독립 이후 혼란은 계속되었다. 특히 1836년 멕시코령 테하스는 텍사스 공화국으로 독립을 했다. 그 후, 미국이 1845년 텍사스를 합병하자, 1846년에는 텍사스를 둘러싸고 미국과 멕시코-미국 전쟁이 발발한다.
미 기병대는 멕시코시티를 단숨에 점령했다. 패자인 멕시코는 텍사스, 뉴멕시코주, 캘리포니아주 등의 땅을 미국에게 헐값에 팔았다. 결국 멕시코는 멕시코-미국 전쟁을 통해 멕시코는 국토의 절반에 달하는 땅을 미국에 빼앗긴 것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콜로라도,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7개 주가 1846년 멕시코 미국 전쟁을 통해 미국으로 귀속된 지역이다.
1876년 포르피리오 디아스는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에 취임했다. 디아스 대통령은 30년 이상 강압적인 독재를 펼쳤다. 외자를 도입하고 경제를 성장시켰지만, 비민주적 국정 운영으로 국민의 반발을 샀으며 국내 각지에서 소요가 발생했다.
1907년 대공황 영향이 멕시코에 미치자 노동쟁의가 발발했고, 이러한 와중에 1910년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었다. 디아스는 상대 후보인 프란시스코 마데로를 체포 감금했고 이것이 트리거가 되어 ‘멕시코 혁명’이 시작되었다.
판초 비야, 에밀리아노 사파타, 베누스티아노 카란, 알바로 오브레곤 등이 이끈 혁명군은 끝내는 정부군을 물리치고 1917년에 혁명 헌법을 반포하면서 멕시코 혁명은 끝이 난다. 이때 혁명군이 군가로 사용했던 것이 <라쿠카라차(La Cucaracha)>이다.
<라쿠카라차>의 뜻은 바퀴벌레라는 뜻의 스페인어이다. 멕시코인들이 비참한 처지에 놓여있는 자신들을 바퀴벌레에 비유한 것에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바퀴벌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지녀 잡아 죽여도 끝없이 등장하는 농민혁명군을 비유하는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전에는 동요나 민요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멕시코의 역사가 담겨있는 노래였다. 한국의 1894년 갑오 동학 농민 혁명이 <새야새야 파랑새야>라는 민요를 남긴 것과 결이 같다고 생각하니 더욱 숙연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6sn8bIzWacw
멕시코 역사를 두꺼운 책 한 권으로 정리하는 학자도 있고, 평생을 연구에 바치는 학자들로 있다. 이러한 멕시코 역사를 5분 만에 정리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멕시코를 스쳐가는 여행자, 주재원의 입장에서 필요한 몇 가지만을 정리해보았다.
그래도 멕시코 친구들,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이야기할 때 이 정도만 언급해도 상대방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을 경험했다. 속성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집고 가는 쪽집게 과외라고 생각해주면 감사하겠다. 멕시코 역사에 대해 한 가지라도 알면 멕시코 친구들과의 대화가 풍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