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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May 23. 2021

멕시코의 도시들(1)

① 아즈텍 문화와 스페인 문화의 융합 멕시코시티

여행은 도시 여행의 합이다.


아이들과 함께 국내 도시를 방문했다. 부산, 경주, 통영, 순천, 춘천, 속초, 강릉... 각 도시만의 특색이 있었다. 볼거리가 있고 먹거리가 있었다. 도시만의 역사가 녹아 있었다.  


멕시코도 그랬다. 아이들과 여행을 가면 도시로 향했다. 그 도시를 중심으로 멕시코를 하나씩 알아갔다. 

멕시코 시티(Ciudad de México), 산루이스뽀또시(San Luis Potosí), 과나후아또(Guanajuato), 산미겔데아옌데(San Miguel de Allende), 과달라하라(Guadalajara), 살띠요(Saltillo), 레이노사(Reynosa), 로스까보스(Los Cabos), 사까떼까스(Zacatecas), 뿌에블라(Puebla), 칸쿤(Cancún)...


다시 멕시코 여행의 추억을 돌이켜보니, 도시 여행의 합이었다.



해발 2,500m위의 수도


멕시코 도시 이야기를 하면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곳이 멕시코시티다. 멕시코의 수도로, 멕시코 고원 위에 위치해 있다. 광역인구가 2천만명이 넘는 거대 도시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수도권(METRO) 인구가 많은 도시다. 


세계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에 있는 수도는 볼리피아의 수도 라파스이다. 해발 3200~4100m에 걸쳐있다. 멕시코시티도 높은 곳에 있는 수도로 유명하다. 해발 2,500m에 위치해 있다. 적응이 되지 않은 주재원들의 경우에는 건강상의 불편함을 호소헸다. 조금만 운동을 해도 쉽게 피로를 느끼고,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아이들은 코피를 쏟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주재원과 가족들에게 '고산휴가'를 주어서 정기적으로 낮은 곳으로 이동하여 건강을 회복할 시간을 주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K차장은 특히나 힘들어했다. 결국은 주재원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조기 귀임을 했다.



도시 지하에 아즈텍 문명의 역사를 감춘 멕시코시티


멕시코시티의 현재 자리는 아즈텍 시대에는 텍스코코 호수 위의 섬에 있는 테노치티틀란이라는 도시였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호수를 메워 멕시코시티를 건설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아즈텍 문명의 잔재를 지우려고 했다. 아즈텍 신전이 있던 자리는 허물고 카톨릭 성당을 지었다. 아즈텍 왕궁터에 스페인식 건물을 세웠다. 멕시코시티 지하에는 아즈텍의 문명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고 한다.  


도시 곳곳에 아름다운 스페인식 카톨릭 성당들이 있다. 5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성당들이다. 여행을 도와주었던 가이드 이야기에 의하면 아즈텍 신전이나 왕궁의 돌을 허물어 성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피지배 국가의 문화 말살이 철저하게 이루어졌고, 그 결과가 아름다운 성당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멕시토시티 전경 (Shutterstock)


지진에 취약한 도시


멕시코시티 지형은 지진에 취약하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호수 물을 빼고 멕시코시티를 건설했다. 이 때문에 지형은 습하고 부드럽다. 일종의 ‘젤리’같은 형태다. 지진파가 부드러운 지형에 닿으면 진파가 갇히게 된다. 지질 전문가들은 멕시코시티 지형을 ‘젤리가 담긴 그릇’에 비유하기도 한다. 1985년 멕시코시티 대지진(규모 8.2)은 도시를 초토화시키고 1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017년 주재기간 중이었다. 9월 19일 오후 1시경 진도 7.1의 지진이 멕시코시티에서 발생했다. 사무실에 근무하던 직원들은 거리로 뛰쳐나왔고,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던 주재원들은 놀라서 테이블 밑으로 숨어들었다. 아파트에서 지진을 경험한 부인들은 한동안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게 한 멕시코식 콩스프


한국을 1년 넘게 못 가니 한국 음식들이 그리워졌다. 순대국, 해장국, 청국장, 짜장면...이렇게 평범한 음식들이었다. 기아차의 몬테레이 진출로 한식당이 생기기는 했지만 선택의 폭이 넓지 못했다. 


2015년 멕시코시티에 출장을 갔다. 멕시코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타결하고 저녁식사를 했다. 현지식이었다. 환갑을 넘긴 위원장은 살사소스를 곁들인 따꼬와 고기를 주문해 주었다. 그리고 멕시코시티의 지역음식이라면서 스프 하나를 추천해주었다. 거무틱틱한 스프 하나가 내 자리 위에 올라왔다. 식욕을 당기게 하는 비주얼은 아니었다.


추천한 위원장 성의를 봐서 한 입 떠먹는데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어머니가 끓여주시면 팥죽 그 맛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피곤해보이면 팥을 삶고 갈아서 팥물을 내셨다. 옹심이를 동글동글 말아서 팥죽을 만들어주셨다. 가끔은 밀가루 반죽을 밀어 팥칼국수를 만들어주셨다. 입맛이 안돌다가도 팥죽 한 그릇을 먹으면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나의 힐링푸드는 어머니표 팥죽이었다.


이역만리 멕시코 땅에서 팥죽과 비슷한 맛을 보게 될 줄 몰랐다. 멕시코 노조 위원장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머니표 팥죽 맛이 난다고 이야기를 했다. 노조 위원장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음식이고 좋아하는 음식이어서 추천했다고 했다. 나이를 넘어, 인종을 넘어, 국적을 넘어 음식 하나를 가지고 따뜻한 공감을 나눌 수 있었다.


2019년 주재원을 마치고 복귀하면서 노조 위원장과 작별의 의미로 식사를 했다. 위원장은 4년전 일을 기억하면서 이 스프를 주문해주었다. 나이차가 나는 멕시코 친구의 섬세한 배려에 감동했던 마지막 식사였다.  


첫번째 사진 : 팥죽 맛이 나던 멕시코시티식 콩스프

두번째 사진 : 오른쪽 사람이 팥죽 맛이 나는 콩스프를 추천해준 위원장이다. 

(필자 일행 뒤에서 생면부지의 현지인이 V자를 취하고 있는 것을 이번에 사진을 정리하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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